약국에서 염색약을 사 왔다. 염색할 때가 한참 지난 것 같다. 그렇다고 머리 염색을 규칙적으로 하는 건 아니다. 흰머리가 눈부시게 올라온 걸 보니 얼추 6,7개월은 지난 듯하다. 누가 반긴다고 이렇게 속속들이 밀고 올라오는 걸까.
희한하게도 흰머리는 다른 사람 눈에 잘 띄는 이마며 가르마 쪽, 얼굴 가생이로 유독 하얗게 포진한다. 유독 하얘서 어찌 보면 초췌하고 늙수그레하기 짝이 없다.
내 나이 쉰아홉, 나라에서 한 살 깎아줬으니 공식적으론 쉰여덟이다. 곰곰 생각해 보니 흰머리가 서른 중반부터 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때도 이마며 정수리 쪽에서부터 희끗희끗하기 시작했다.
젊은 나이에 벌써부터 늙어가는 갑다고 우울해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위로한답시고 늦둥이 키우느라 힘들어서 나는 새치일 뿐이라고 다독거렸다. 사실 그때 큰 애 낳고 둘째를 어렵사리 가져 낳아 키우느라 힘들기는 했다. 모르긴 해도 이게 엄마 때문이지 싶다.
돌아가신 엄마가 젊어서부터 머리가 빨리 샜다는 얘길 들었던 것도 같은데, 머리 쇤 젊은 엄마의 모습은 내 기억에는 없다. 다만 생각나는 것은 엄마는 언제부턴지는 모르겠으나 돌아가시기 전까지 염색약을 달고 살았다는 사실.
숱도 많은데 엄마는 왜 그렇게 뽀글이 파마만 하셨을까. 한번 하면 웬만해선 안 풀리고 오래가는 가성비 때문이었을까. 엄마는 거울 속 갈대처럼 희어지고 푸석 푸석한 머리를 보며 혼잣말을하곤 했다.
"어이구, 꼭 헌 집 홀엄씨 같네. 죽을 날 받아논 할망구 같어."
하며 염색할 때가 되면 흰머리를 보고 정색하며 극도로 예민했다. 엄마는 딸들이 있는데도 도움받지 않고 뒷머리까지 혼자서도 염색을 잘했다. 염색을 하고 나면 독한 염색 내를 풍기며 뽀글뽀글한 머리가 칠흑처럼 까맸다.
그러고 보면 언니 둘은 아버지를 닮았는갑다. 두 언니들은 다 일흔을 목전에 두고서야 처음 염색을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거기다 두 언니들은 얼굴도 동안이다. 언니들은 실제 나이보다 한참 아래로 보인다. 언니들 사이에 두 오빠들이 껴 있어 나랑은 나이 차가 12살, 8살 차가 나지만 나랑 셋이 있음 내가 늘 손해다.엄마 말마따나 일찍 철든 때문이었을까.
에효, 나는 뭐가 급해 철이 빨리 들었을까. 엄마는 나더러 철이 일찍 들어 때때로 언니들보다 수말스럽고 어른스럽다했다. 수말스럽다는 전라도 말로 착하고 얌전하다는 정도로 쓰이는 사투리다. '수말스럽다'는 칭찬에 인색했던 우리 엄마가 가끔, 아주 가끔 우리 형제들에게 선물처럼 해 주는 표현이다.
그래도 세상은 공평한 것 같다.*~*
두 언니들은 머리숱이 그다지 많지 않다. 젊었을 땐 몰랐는데 작은 언니는 정수리가 훤하다. 조카 결혼식 땐 부분 가발을 쓰고 혼주석에 앉았다. 동안이던 언니도 요샌 머리 때문에 신경이 쓰이고 거울 앞에 서면 나이가 보인단다.
머리 감을 때나 빗질할 때 빠지는 머리카락 한두 올에도 날이 바짝 선단다. 여름에 만났을 때도 두 사람 관심사는 건강과머리카락 얘기였다.
언니들, 머리카락 빠지는 게 뭐 대수냐고. 나도 자고나면 말 좀 보태 한 움큼씩 빠진다고 대수롭잖게 말을 꺼냈더니 나더러 가진 자의 여유라며 두 언니들이 나를 쏘아봤다.
언니들이 들으면 또 혈압 오르는 말이겠지만, 우리 모두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는데 머리카락이라고 별 수 있겠냐 싶다.
나는 엄마 딸이 맞다. 엄마의 곱상하고 예뻤던 미모 빼
고 머리숱 많고 머리가 일찍 쇤 걸 닮았으니틀림없는 엄마 딸이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도 종종 듣는 소리가 있다. 형제들이 모이면 웃자고 하는 소리니 죽자고 심각하게 받아치지는 않지만 기분은 그리 유쾌하지 못하다. 언니 오빠 들은 나만 보면 동네 굴다리 밑에서 주워온 애라고 놀려 먹곤 했다. 어릴 땐 그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곤 했다.
이 생각이 지금도 떠오르는 건 나도 은근 뒤끝 있는 사람인가. 그건 그렇고 머리는 엄마 덕을 톡톡이 봤다. 머리숱이 많아 지금까지도 파마는 안 하고 커트만 한다.이마가 훤해 부분가발을 쓴다는 미용실 원장님은 내 머리를 손질할 때마다 부러워한다.
"두상도 납작하거나 죽은데 없고 둥글둥글한 데다 머리숱까지 많으니 돈 많은 갑 부럽지 않은 인생 갑이에요"
머리숱 덕분에 이리 기분좋은 소리를 들을줄은 몰랐다. 다만 그 말에 난 돈 많은 갑이었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중얼중얼거렸다. 사실은 지금도 그 생각이 바뀐 건 아니다.
염색을 하는 일이 실은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그래서종종 미용실 원장의 손을 빌리기도 한다. 한 번은 귀찮아서 염색을 안하고 아예 흰머리가 될 때까지 참아야지 했다가 더 늙수그레해 보여서 바로 미용실로 간 적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염색을 하며 살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생각해 보면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