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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흔 Dec 25. 2023

"형님 진지 드셨어?" 라는 말

형님, 진지 드셨어?"

엘리베이터 안이다. 11층 아줌마가 9층에서 타는 아줌마를 보고 반색하며 하는 말이다. 극존칭과 반말 섞인 말투가 참 재미있다. "형님"이라는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을 보며 나는 두 사람의 나이차와 관계?를 어림잡아본다.

 

11층 아줌마는 9층 아줌마보다 족히 열 살은 어려 보인다. 11층 여자의 한 옥타브쯤 올라간 목소리가 호들갑스럽기도 하다. 승강기 안에서 두 여자의 일상사 얘기가 오가고 11층 아줌마의 눈웃음에 입꼬리가 올라간다. 친인척관계는 아닌 것 같다. 아파트 입주 멤버라도 되는 걸까. 두 사람의 오가는  대화로 보아 오래 알고 지낸 사이 같다.  형제간보다 낫다는 위 아래층 이웃사촌지간.

 

내 귀가 촉을 세운 건 두 사람의 관계보다 "진지 드셨냐?" 인사말이다. 진지라는 말, 참 오랜만에 듣는다. 요즘은 연세 지긋한 어른께도 진지'라는 말보다 '식사'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오간다.


 우리 아파트엔 어른들이 많다. 나도 이사 온 지 10년이 훌쩍 넘었으니  서로 문지방을 넘는 사이는 아니지만 엘리베이터나 단지 내에서 만나면 가벼운 눈인사와 목례 정도는 오간다.

'안녕하시냐'는 말 대신 '진지 드셨냐'는 말이 반가우면서도 내심 포근하고 정겹다. 말에서 온도가 느껴진다.

 

 콧물쟁이 어린 시절, 동네 어른들은 고샅에서 눈을 마주치면 으레 '진지 잡수셨어요' 아침 인사였다. 그땐 몰랐지만 그 말속엔 밤새 안녕'을 포함한 이웃을 걱정하는 마음이 들어 있었다. 80년대 칼라티브이가 처음 나오고 안방에서 티브이 화면으로 비치는 화려한 세상은 요지경 속이었다. 그 시절 꽤나 인기 있었던 프로 중 '그때를 아십니까'에서는 낭랑한 아나운서의 내레이션으로 못 먹고 못 살던 그전 시절을 추억인양 흑백필름에 담아 보여 줬다.


 설이나 추석 명절날 푸짐하게 차린 밥상 앞에 모인 식구들의  해낙낙한 모습들, 추수를 끝내고 수북하게 쌓인 볏가마니 앞에서 환하게 웃던 농사꾼의 모습, 겨울이면 집집마다 굴뚝에 뭉게뭉게 올라오는 연기만으로도 따뜻했다. 온 식구가 두레반상에 모여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청국장을 숟가락 부딪혀가며 먹던 모습, 은 그야말로 훈훈했다. 그때 그 시절엔 그랬다. 불량배처럼 껄렁껄렁한 동네 오빠한테도 "밥은 먹고 다니냐, 골골 어르신에게도 진지 드셨냐'는 인사말만으로도 온정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그 밥정도 흑백 티브이와 함께  사라졌다.

 

요즘은 어떤가. 그 시절에 비하면 먹을거리가 흥전만전하고 집밥이 아니어도 식당 등 외식문화가 보편화 돼 이제는 한 끼의 밥이 그리 중요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디서건 아무 때고 간편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도 있다. 전에 비하면 그만큼 먹고 사는 일이 쉬워져 더할 나위 없는 풍족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런데 나는 왜 이웃이 건네는 '진지 드셨냐'는 말 한마디 마음이 더워지는 것일까. 빙 둘러앉은 두레반 상까지는 아니어도 그 시절 뜨끈한 '집밥'이 떠올랐던 것은 아닐까. 변변찮은 찬이어도 식구들끼리 밥상 앞에 둘러앉아 얼굴 보며 먹는 음식에 식구들의 온기를 함께 나누었던 정서 말이다.

 

 '밥'이란 말에 담긴 온도와 정서는 늘 옳다. 한솥밥을 먹는 식구처럼 끈끈함과 따듯함으로 이어준다는 것, 그러고 보면 '밥'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요즘 세상에도 사람살이의 모양만 다를 뿐 밥벌이의 고단함은 같을 테니까. 오랜만에 듣는 이웃 간의 인사가 솥뚜껑 사이로 끓어 넘치는 밥물처럼 따듯하다. 이상하리만치 몸에 훈김이 돈다. 너무 먹어서 탈인 세상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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