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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흔 Dec 22. 2023

17  신영애 시인의 '목련 열병식'

목련 열병식

신영애 시인


혹한기 연단을 마친 훈련병들

꽁꽁 싸 맨 젊음을

기대 속에 내맡기고 있다


냉기 가신 바람이 초리마다 머문 축을 부풀리는 봄

터뜨리지 못한 진통이 꼼틀대고

보송보송한 솜털이 혈기를 다독인다


조금씩 여물어가는 눈빛

부박한 겉옷 속에서

아직 피어나지 못한 꽃봉오리

함성 지를 그날을 기다리며

내일을 향한 축제가 한창이다


받들어 총


시집<나비가 전하는 말>.120쪽의 시




발상이 재밌다. 봄날 솜털이 보송한 목련 꽃망울을 보고 훈련병들을 떠올리다니.


있는 사물에서 없는 대상을 끌어와 그럴 듯한 틈을 만들어내는 시인의 사유가  독특하다.


한 겨울에 이 시를 감상하니 봄이면 발길이 멈춰지던 그 집 앞이 떠오른다.


밥에 늬처럼 아파트숲 사이 덜렁 한 채 있던 낡은 주택. 담장 너머로 늙디 늙은 목련이 봄마다 수백 마리 백로떼를 불러들인 것처럼 장관이었는데, 이제는 기억 속으로 사라져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지난 가을 집이 헐리고 그자리에 높은 새 건물이 지어지면서 목련도 가차없이 베어졌다.


사람 사이에 살던 나무가 사라지고 허퉁하니  왠지 나무는 그 이상의 무엇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시를 보니 문득 그 집앞 그 목련이 솔고시 생각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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