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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흔 Dec 19. 2023

16   이창훈 시인의 '가만히'

가만히

이창훈 시인

 

 

...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는 일

가만히 누군가를 바라보는 일

 

아무것도 보지 않고 조용히 눈 감은 채

가난의 유리창 너머

나무에 부는 바람과 새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

가만히 자고 있는 아이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

가만히 어둠을 뚫고 나오는 별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는 일

 

밥을 먹을 때도

거실에서도

화장실에서도 얼굴과 몸을 닦을 때도

....

 가만히 보이는 것들을 보고

가만히 들리는 것들에  귀 기울이고

가만히 그러나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가만히 너를 느끼는 것이

 

매일  사랑이 찾아오는 기적은

멀리 있는게 아니라

아마도?

 ....

 

시집< 내 생의 모든 길은 너에게로 뻗어 있다>.111~112쪽의 시.



<시시콜콜>겨울이 오면서 앉은뱅이책상을 쓰고 있다. 책상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보잘 것 없는 2인용 낡은 밥상. 그 앞에 가부좌 틀고 앉아 있으면 그럭저럭 하루의  분주함도 정리가 되면서 마음이 차분해진다.

책상앞에서 ​뭘 하겠다는, 뭘 써야겠다는 생각 없이 그냥 가만히 앉아 있을 때도 많다. 이럴 때 '가만히' 라거나 '그냥'이라는 말이 얼마나 좋은지, 맞춤한 말인지 모른다.  밤,이라는 시간과도 잘 어울리며 이상하게 새침하면서도 온화함이 있다.

몸이 가만할 때는 머리속맑아지면서 섬세해진다.

어둠 속에서  서서히 빛이 보이고 그래서 밤이 조금은  만만 하고, '소음'도 더러는 '소리'로 들리곤 한다.


 이 시도 그렇게 다가온다. 부러 밑줄 그어야 읽히는 시가 있는가 하면 가만 있어도 술술  읽히며 스며드는 시가 있다.  이 시처럼 무심함에서 비롯돼 우리에게 가만히 안겨주는 그 어떤 평화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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