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 들렀다. 참 오랜만이다. 생각해 보니 코로나 이후로처음 온 것 같다. 그동안발길이 뜸했던 이유가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고 온라인으로 책을 구매하거나 도서관이 집근처에 이웃해 있기도 해서다.
이곳은 집에서전철로 세정거장 거리여서근처에 일 있어 왔다가참새 방앗간처럼 들르거나 산책 겸 걸어서아무 때나 불쑥 들어와 새 책내에 취해 충동구매도 서슴지 않는 곳이다.
안으로 들어서니분위기가 사뭇다르다.먼저 눈에 띈 건서가한쪽에긴책상이 놓여책 볼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오늘은 어르신 두 분이 앉아서 한가롭게 책을 읽는다.
습관이 참 무섭다. 안으로 들어오자발길이시집 코너로향한다.이곳에 오면 먼저가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은 시집코너가 보이지 않는다. 시집이 빼곡했던 자리엔 자격증 관련 실용서와 중고생용 문제집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소설코너를 돌아 에세이가 꽂힌 서가 주변을 둘러보지만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할 수 없이직원에게 물었더니 따라 오라며 나를 서가 맨 뒤쪽 구석으로 안내했다. 구석으로밀린 시집 코너는 전에 비해 자리가절반도 되지 않는다.
시는 안 읽어도 공부는 해야 하니까. 생각은그랬지만 왠지실용서에밀려 구석으로 밀린 시집을보니시집을 낸 시인도 아니면서 맘이 좀 그랬다.눈이 가는 시집 몇 권을 뽑아 책상자리로 갈까 하다 어차피 이 구석엔 사람들 발길이 뜸하기에 그대로 서서 몇 편 들춰보다 시집 두 권을 사들고 돌아왔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스탠드 불빛 아래서 마음 가는 대로 시 몇 편을 골라 읽었다. 읽다 보니 어떤 시는 새초롬하기도 하고 또 어떤 시는 다감하게 속내를 드러내 보이며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왜 시를 읽고 시를 써보는 걸까. 내게 그리 상냥하지도 않고 때론 서름서름하기만한데 왜 오랫동안 붙잡고 사는 걸까. 시를 읽어도 살고시를 안 읽고 살아도 사는데 큰 문제는 없다.하지만 이왕 사는 거 밥 하고 청소하는 일도 시가될 수 있다면 삶이 조금은 덜 팍팍하지 않을까.
친애하는 사물들
요즘 우울하십니까
다정한 호칭으로 불러 드릴까요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구름과 집 사이를 걸으며
훗날 훗사람이 되더라도 좋아요
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
우리가 분위기를 사랑하면
밤에도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 피어나고
살구나무에 살구비누가 열리죠
재스민 향기가 어두운 두 개의 콧구멍을 지나면
지구를 이승이라 불러 줄게요'
그래도 희망이 외로워진다면
고요는 도망가지 말라하고
우리는 열두 겹의 자정이 되자고요
오래전에 썼던 시다. 곰곰 생각해 보니 이 시는 내가 썼다 기보다 책등에 적힌 시집 제목이 아름다워 요리조리 낱말 퍼즐을 짜 맞춘 셈이다. 낯선 말에 살과 뼈를 붙여 세워 내 맘대로 숨을 불어넣으면 그럴듯한 연시戀詩 한 편이 되겠다 싶었다.
아마 그즈음이공모전몇 군데 시를 보냈다가 보기 좋게 다 미끄러져 기분이 너덜너덜한 채로 서점에 왔다가 이런 객기를 부렸던 것도 같다.
지금도 여전히 시를 읽고 쓰면서 살아간다. 시를 안 읽고 안 쓰고 사는 것보다 나을 거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