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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흔 Apr 01. 2023

02   수락산에서

수락산에서

장명흔



남편과 말다툼하던 

끓는 맘  재우려 무작정 거닐다

나도 모르게 발길은

수락산으로 향한다

어젠

이 산책로에서 다람쥐를 보고

좋아하는 아이 손을 잡고 걸었는데

우두커니 혼자인 나는

아직 내려가지 않은

사람들 발자국 소리에

화들짝  놀란 새가슴이 되어

자주 오르내린 길을 헤매고 있다

코끝에 흥건한 아까시향으로  

간신히 마음 달래고

오름길을 따라 염불사에 이르니

다가올 초파일 연등이 소롯이

꽃잎을 열어 향을 피우고

풍경소리 낭랑한 대웅전 앞

손 합장하고 고개를 숙이니

내 옹졸함 들여다보신 듯

부처님 미소가 온 마음을 풀어놓는다

생전에 천상병 시인이

자주 오르내린 산책로에서

순한 마음으로 발도장을 찍으며

똬리 틀고 들어앉은 부질없는

욕심을 덜어내듯 숨 헐떡이며 올라간

깔딱 고개 위

한눈에 들어오는 사람 사는 모습이

이리도 초라할 줄이야!...

그래서 아이 맘으로 살다 간 천 시인은

이곳 수락산에서

아름다운 소풍을 꿈꾸며 떠나갔을까



어제는 옛날에 살았던 아파트 뒷길이 그때 자주 오르내렸던 산둘레길을 걸었다. 산책로는 그대 론데 산 초입부터 너무 많이 변해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모처럼 갔으니 그리 급할 것도 없고 오랜만에 와 보는 길이어서  쉬엄쉬엄 걸었다. 걷고 걸으니  이쪽에서 10년 남짓 살면서 아웅다웅 했던 옛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그 가운데 삶의 편린 같은 이 시가  떠올랐다. 생도 미완성인 것처럼 이 시도 맘에 안 차 서랍 속에 넣어뒀다가  어느 순간엔 버리려 했다가 무슨  미련이 남아 선지 도로  먼지 속에 내쳐 두었었는데, 이렇게 꺼내 햇빛 쬐어줄 날이 올 줄이야. 삶이 참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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