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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흔 Apr 03. 2023

집밥 같은 친구

친구와 점심을 먹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 먹는 밥이다. 친구는 중학교 때 친구로 고등학교는 친구는 상고로 나는 인문계로 가는 바람에 헤어졌다가 결혼하고서 다시 만나게 됐다.


 우리는 둘 다 외식을 자주 하지 않는 편이다. 건강생각을 한다거나 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서로 사는 거리도 그렇고 친구나 나나  재택 근무하는 얘들이 있다 보니 그렇다.


우리는 한식집에 들어가 매운 순두부 찌개와 곤드레 나물밥을  먹었다. 순두부는 집에서도 자주 먹는 음식인데도 이상스레  밥처럼 물리지 않는다. 우리는 잘 차려진 밥상에 수다를 곁들여 밑반찬까지 싹싹 비우며 맛있게 먹었다.


곰곰 생각해 보면 친구나 나는 바깥 보다 집이 편한 사람들이다. 지금은 멀리 떨어져 살지만 얘들 어릴 때는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여서 두 집을 오가며 복닥 복닥 놀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아이들  풀어놓고 밥 먹고 차 마시며 노닥거리며 살았다. 이제는  얘들이 다 커 성인이 됐으니 그때를 생각하면 참 아련한 추억이다. 그만큼 잘 살아왔고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린 밥집을 나와 찻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고 보니 코로나 때문에 딱 3년 만인 것 같다. 하도 오랜만이라 얼굴 잊어버릴 뻔했다며 끝도 갓도 없는 수다를 떨었다. 나라걱정?, 애들 얘기, 함께 늙어가는 재미없는 남편 흉보기 노후 얘기, 그저 그렇고 그런 얘기에도 공감하며 참 많이 웃었다.


친구는 오랜만에 밥다운 밥을 먹었다며 얼굴이 화등잔만 해졌다. 내 손으로 하지 않으면 끓인 밥에 김치 하나라도 진수성찬이라며  맞장구쳤다. 서로  융숭한 대접을 받은 기분이라 했다.  푸짐하게 차려진 나물밥상을 보자 돌아가신 엄마 생각도 나고 아마  친구도 입 달게 먹었던  따뜻한 엄마의  밥상을  떠오렸을 거다.


" 오늘 우리가 먹은 밥이 집밥이야 바깥밥이야?

"ㅎㅎ 우리한텐 집밥이지!"

" 맞네.  집밥."

친구는 손뼉까지 치며  언제 또 집밥 한번 거하게 먹자며 크게 웃었다. 정말이지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우리 이제 더 자주 보면서 살자"

친구랑 헤어져  집으로 오는 전철 안에서 생각에 잠긴다. 친구는 광명 나는 서울에서도 북쪽 끝에 산다. 그래서 우린 중간 지점인 고속터미널에서 만난다.  이제는 얘들 다 키우고 작정하면  열일 제쳐 놓고 자주 볼 수도 있지만 우린 둘 다 참  느긋하고  무던하다.


가끔 연중행사처럼 만나도 어제 본 듯하다. 오늘도 그랬지만 우리는  만나면 지나간 얘기보다 현재 살아가는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 그렇다고 친구나 나나 별 뾰족하게 사는 것도 아니어서 그리 대단한 얘깃거리도 없지만 나이들어가는 우리에겐 오늘이 소중하다.


 친구와 내가 더 돈독해진  계기가 있다. 친구는 가끔 그때를 떠올리곤 한다. 그러니까  그게 얼른 해도 7,8년 전 일 같다.


 설날 아침이었는데 핸드폰에서 다급한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차례 지내다 친정엄마가 갑자기 쓰러졌다며 서울로 모셔갈 건데 아는 병원 있음 알아봐 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나도 눈앞이 캄캄했고, 오죽 급하면 나한테까지 전화했을까 싶어 병원 관련 쪽 사돈에 팔촌 되는 지인들까지  찾아보다 마침 한방 병원 쪽에 아는 지인이 있어 사정해 바로 입원하실 수 있게 됐고 4개월 병원에서 집중치료를 받고 나오셔 현재 건강하게 살고 계신다.


그 일이 있은 후 친구는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나를 챙긴다.  한 번은 친구의 어머니가 가을 추수했다며 쌀 한 가마니를 택배로 보내셨다. 전화를 드렸더니 곁에 있으면 손이라도 덥석 붙잡을 듯 반가워 하셨다. 친구는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숨이 막힌다며 들추곤 한다. 그렇게 서두르지 않았다면 골든타임을 놓쳐  엄마는 반신불수로 사시거나 그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을 맞았을 거라며 가슴을 쓸어내리곤 한다.


 친구도 아마 나랑 같은 생각이리라.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하루하루가 더 소중함을 아는 나이로 접어들고 있다 는 것을. 나는 이 친구가 좋다.


이 친구 앞에서는 밥 먹다 밥알을 흘려도 남부끄럽지 않고  구멍 난 내 양말을 보고도 내가 민망해할까 봐 못 본 척 슬쩍 넘어가 주는 친구,  낡고 해진  티쪼가리에 후줄근한 청바지를 입고  나타나도 나를 창피해하거나 게의치 않는 마음 편안한  친구는 세상에 둘도 없는 집밥 같은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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