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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흔 Apr 17. 2023

01   정호승 시인의 시 '혀'


정호승 시인

 

어미개가 갓난 새끼의 몸을 핥는다

앞발을 들어 마르지 않도록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온몸 구석구석을 혀로 핥는다

병약하게 태어나 젖도 먹지 못하고

태어난 지 이틀 만에 죽은 줄도 모르고

잠도 자지 않고 핥고 또 핥는다

나는 아이들과 죽은 새끼를

손수건에 고이 싸서

손바닥만 한 언 땅에 묻어 주었으나

어미개는 길게 뽑은 혀를 거두지 않고

밤새도록 허공을 핥고 또 핥더니

이튿날 아침

혀가 다 닳아 보이지 않았다.

시집 <이 짧은 시간 동안>. 13쪽의 詩​



시구절을 따라가다 '죽은 줄도 모르고'에서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갓난 새끼를 밤새 핥고 핥아주는 어미 개의 모습이 너무나도 처연하게 다가와서다.


비슷한 기억 속 풍경  하나. 아버지는 우리 집 어미 소의 산달을 미리 아셨던가 보다. 전날부터 외양간 청소를 하고 바닥에 고슬고슬한 짚을 깔고 밤새도록 외양간 불을 훤히 켜 놓으셨다. 혹시라도 어둠 속에서 새끼를 낳다 일어날 수 있는 불상사를 미연에 막기 위해서였겠지.


다음날 새벽 우리 집 외양간에 식구가 늘었다. 어미 소가 아주 작은 송아지를  낳았다. 어미 소는 갓 낳은 송아지를 긴 혀로 연신 핥아주아버지는 송아지를 수건으로 깨끗하게 닦아 주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어미 소가 긴 혀를 입안에 감춰 두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또 하나.

 혀는 음식 맛을 느끼게 하감각기관이지만 혀가 개나 소에겐 인간의 손처럼  다정하게  쓸어주거나 어루만지는 따뜻한 손길이 돼 주기도 한다는 것을.

 한량없고 숭고한 어미 개의 애무가 새끼의 죽음을 미리 알아차리고 혀가 닳도록  핥고 또 핥은 건 함께 살아보지도 못하고 떠나보내야 하는 어미 개의 애끓는 마지막 인사가 아니었을까 싶어 시 읽는 내내 마음 한편이 먹먹하고  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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