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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흔 Jun 17. 2023

02   오규원 시인의 '새와 집'

 

 

 

 

새와 집

 

                  오 규원 시인

 

 

딱새 한 마리가 잡목림의

산뽕나무 가지에 앉아 허공에서

무엇인가 찾고 있다 딱새의 그림자도

산뽕나무에서 내려오지 않고

가지에 그냥 붙어 있다.

박새 한 마리도 산뽕나무 뒤편

붉나무 가지들 두 발로 잡고 잇다.

그러나 산뽕나무 저편 팥배나무에서

문득 날아오른 새 한 마리는

남쪽의 푸른 하늘에 몸을 숨기더니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새가 몸을 숨긴 그 하늘 아래는

집을 짓고 사람들이 산다

 

2002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시 105쪽의 시.




요즘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방학이 어떤지 모르겠다. 유년시절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에여름방학 과제가 한결 같았다. 일기 쓰기, 식물채집,  곤충채집, 방학생활 중 즐거웠던 일을 그려서 내라는 미술 숙제는 약방의 감초처럼 껴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방학 내내 실컷 놀다가 방학이 끝나갈 즈음에 벼락치기 숙제를 해갔다. 지금 이렇게 글쓰기를 할 수 있는 건 그때 밀린 일기를 지어서 쓰느라 잔머리를 굴렸던 덕분 이기도 하리라. 그중 곤충채집은 감히 엄두도 못 냈다. 그나마 식물 채집은 작은 언니 도움으로 여러 번 해갔던 기억이 아슴아슴하다. 풀꽃을 좋아하게 된 것도 그 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도 제일 했던 게 그리기 숙제다. 그림을 잘 그려서 라기보다  크레파스와 도화지 한장이면 그리 어려운 게 없다. 그리고 특별히  재미있었거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없어도 아무 생각 없이  새, 나무, 숲, 하늘,  옹기종기 모여 사는 우리 동네를 대충 그려도 그림이 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소꿉놀이 하듯 도화지 가득 그려 넣다. 


도화지에  발새발 그린  크레파스로 덧칠 멋진 풍경화가 되었다.  풍경화라고 해봐야 순전히 알록달록 덧칠 크레파스빨이겠지만 색을 입은 나무나 새가 그럴듯해 보여 뿌듯해하며 엄청 좋아했던 것도 같다.

 

시가 왠지 그렇다. 숲 속 나무들의 이름을 출석 부르듯 일일이 불러주는 시인의 다정함, 그 속에 사는 박새, 딱새, 이름 모르는 새, 바다 같은 하늘이  한 장의 도화지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그 도화지에는 숲 속 미물들의 세상이 깃든 하나의 나라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내가 그렸던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이  또  다른 세상으로 보이지 않을까.


고요한 언어에 숨결을 불어넣은 풍경화는 시인의 마음이다. 삿된 생각이 없는 동심이다. 누가 그랬던가. 시인은 세상에서 가장 상처받기 쉬운 사람이라고.


결 고운 언어로 그림을 그리는 시인은 때 묻지 않은 동심을 가장 늦게까지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연두가 지쳐 초록으로 넘어가고 있는 이 즈음 읽는 오규원 시인의 시는 오늘 아침  숲 속 산책길에서 느낀 호젓하고 상쾌한  고요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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