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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흔 Oct 12. 2023

03  집요해서 애잔한


6시다. 핸드폰 알람을 끄고 일어나 눈두덩에 붙은 잠을 찬물 세수로 털어내고 주섬주섬 운동복 챙겨 입고 나가 숲 속 데크길을 한 시간 걷고 들어오면 큰 애가 출근하고 현관문 열고 나가는 큰 애의 뒤통수에 대고 잘 다녀오라  하고,  미지근한 물세례를 받고 나와 깔깔한 입맛으로 아침을 대충 먹고, 오늘 할 일을 확인하고, 신문을 펼치고...,


하루를 여는 나의 루틴이다. 놀랄 일도 아닌데 놀란다.  어쩜, 어제와 똑같을까. 판에  박힌 그림퍼즐이다. 오늘 아침 산책 길의 표정도 어제와 별반 다른 게 없다. 어제와 같은 속도로 걷고, 어제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을 오늘도 만나고 어제처럼  산책로엔 잎이 지고 있고, 몸이 기억하는 회로에 따라  돌아가는 전혀 새롭거나 특별할 것 없는 일상들. 달라진 게 있다.  눈 뜨면 하루가 휘리릭 지나 벌써 10월이다. 10월을 인디언 어느 부족은 나뭇잎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큰 밤을 따는 달이라고 했던가. 글쓰기, 독서도 안 하고도 무에 그리 바쁜지 다람쥐 쳇바퀴 돌며 맞은 10월, 부디 내일을 향한  회복탄력성을 찾아가바라며 이 문장을 옮겨 적는다.




"작년에 올라봤으면서

또 오르고 있네요.


한심하다 싶으면서도

되풀이하 듯 당신에게로 향하는

나와 닮은 듯하여

애잔함을 지울 길이 없어요.


식물이나 인간이나

집요한 구석이 있습니다.


그 집요함이 우리를 살게 하지만요."


김기연 작가의  <낯선 당신 가까이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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