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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흔 Mar 22. 2023

01   녀석도 어쩌면 지금 '힘든 때'인지 몰라.

요일마다 만나는 방과 후 교실 아이들은  갈 때마다 친구들과 수다 떠드라 왁자지껄하다. 어제는 그런 녀석들에게  보여그림책 <힘든 때>을  들고 갔다.


먼저 책표지를 보여주자  몇몇 아이들이 책제목을 큰 소리로 읽었다. 그러자 힘든 때?라고 고개를 갸웃하는 아이도 있고, 성마르게 읽어 달라고 재촉하는 아이 등쌀에 얼른 첫 장을 펼쳤다.


"오늘 아침에 엄마한테 왜 강아지를 사 줄 수 없냐고 물었어요."


낮은 톤으로 첫 문장을 들러주 술렁거리던  분위기가 잦아들면서  이내 조용해졌다.


책 속 아이는 엄마와 아빠한테 강아지를 사 달라고 조른다. 아이에게 돌아오는 엄마 아빠의 대답은 '힘든 때'라서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이는 '힘든 때'라는 말을 이해할까. 엄마 아빠가 말하는 '힘든 때'는 어떤 상황을 뜻하는 걸까.


도란도란 모여 앉은 아이들은 여느 때와 다르게  사뭇 진지해져 이야기에 집중했다.


 아이는 여름 바닷가 대신에 공원 수영장에 가고, 맛있는 쇠고기 요리 대신 먹기 싫은 콩 스튜를 자주 먹게 된 것도 다 힘든 때라서 그렇다고 받아들인다.


"아빠는 무언가를 잃어버려서 화가 난 거래요. 나는 아빠에게 전기난로 뒤쪽을 찾아보라고 했어요.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난 거기에서 찾아냈 거든요."


바바라 슈크  하젠이 글을 쓰고 칼데콧 상을 네 번이나 수상한 트리나 샤르트 하이만이 그린 흑백 그림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한 가족의 힘든  상황을 더 잘 보여 주는 듯하다.


  아빠가 직장을 잃게 되고 더 이상 강아지를 사 달라고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아이는 우연한 기회에 굶주린 양이를 길에서 데려와 기르게 된다.


  형과 누나들 사이에서 앞자리에 앉겠다고 늘 자리 다툼하던 아이가 오늘은 한 구석에서 조용하다. 녀석는 평소 장난질이 심해  돌봄 선생님한테도 자주 주의를 는 녀석이다. 이 녀석은 15명 아이들 중 가장 어린 1학년 꼬마다.




 

 녀석이 책 한 권을 다 읽어가던 참에  갑자기 질문을 했다. 처음 있는 일이다.

 "직장'이 뭐예요?"

느닷없는 질문에  맥이 끊기긴 했지만, 곁에 있던 2학년 누나가 그것도 모르냐는 듯한 표정으로 아빠들이 다니는 회사를 말하는 거라고  대신 답을 해 줬다.


녀석이 그 답을 이해했는지 못 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여느 때와 다르게 책 읽는 내내  무표정하던 그 녀석한테 눈길이 가곤 했다.


녀석도 어쩌면  지금 책 속 아이처럼 엄마 아빠랑 함께 가고 싶은 곳도 갖고 싶고, 먹고 싶은 걸 참고 누르며 <힘든 때>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스쳤던 것도 같다.


살다 보 일상은 좋은 날보다 힘든 순간이 더 많다. 힘든 날이 이어지면 삶이 지옥 같다가도  참고 견디면 꼭 좋은 날이 올 거야 하면서  마음으로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 고 스스로 위안 삼기도 한다.


그래서 신은 우리가 견딜 만큼의 고통을 준다고 했나 보다.


 삶이 참 그렇다. 아이들 삶도 어른과 크게 다르지 않아 이런 그림책을  들고 가는 날은 더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건  아이들  삶의 한 자락에도 필요하다고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책 속 아이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질 수  없기에 그 상황을 받아들이며  바르고 단단하게 성장하리란 믿음을 작가는 책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건 아닐까.


한동안은 주워온 고양이를 강아지라 부르는 주인공 아이와 그 아이 이야기에 사뭇 진지해 있던 우리 반 꼬마 녀석의 표정머릿속에서 어른 거릴 것 같다.



그날 밤 두녀석들이 생각나 그려본 책속 장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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