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은 작가
그는 잠깐 귀를 기울여 밖을 주의한 후에 가만히 손을 넣어 소금 자루를 쓸어 만졌다. '이것을 팔면 얼만가......팔원 하고 팔십 전! 그러면 밀린 집세나 마저 물고.... 한 달 살까? 이것을 밑천으로 무슨 장사라도 해야지. 무슨 장사......?' 하며 그는 무심히 만져지는 소금덩이를 입에 넣으니 어느덧 입안에는 군물이 스르르 돌며 밥이라도 한술 먹었으면 싶게 입맛이 버쩍 당긴다.
- 강경애 <소금> 62p 민음사
강경애의 단편소설 <소금>의 화자인 봉염의 어머니가 슬픔과 회한에 젖어 중얼거린다. 그녀는 가족과 함께 고향을 떠나 용정에서 중국인 땅을 얻어 농사를 지어 근근이 먹고 산다. 어느 날 남편은 지주(팡동)가 왔다는 연락을 받고 그를 만나러 갔다가 죽게 된다. 그 길로 아들 봉식은 가출해 공산당이 되고 결국 광장에서 처형된다.
남편은 공산당에 의해 죽고 아들 봉식은 공산당이라서 죽고 딸 봉염과 어린 딸 봉희는 열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봉염 어머니는 삶의 의미를 찾을 길 없다. 어째서 이렇게 먼 이국땅까지 와서 소금 밀수를 하며 삶의 끝에 이르렀나 회한이 든다. ‘소금이란 맛을 나게 한다. 아무리 좋은 음식인들 소금이 들지 않으면 맛이 없다’며 봉염 어머니는 가족들이 생각날 때면 소금으로 장을 담가 반찬을 해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그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상상하며 잠시 행복한 기분에 젖는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곁에 없고 자신은 죽지 못해 살아가는 존재다. 소금이 들지 않은 음식과 같이 심심하게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밀수로 들여온 소금을 집안에 숨겨두고 소금을 팔아 무엇을 해서든 먹고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이야기는 일본 순사가 봉염 어머니의 집 문을 두드리며 끝난다. 먹고 살길이 막막하고 소금을 구할 길 없어 이 없어서 고통스러운 삶이었지만, 그런 삶 속에서도 자신을 연명하도록 만드는 유일한 희망은 소금이었다.
1934년에 발표된 강경애의 <소금>은 일본의 수탈을 견디다 못해 고향을 버리고 이주한 봉염 어머니와 가족들이 간도에서 겪어야 했던 수난사이다. 작가는 작품 속 봉염 어머니를 통해 일본 식민지하의 여성이 겪어야 했던 삶의 고통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목숨마저 지키기 어려운 삶을 이어가는 인물들을 조망하며 일제강점기의 생활사를 드러낸다. 일본의 수탈이 얼마나 잔혹했는지, 그것이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써 시대정신을 제대로 구현한 작품이라는 평을 받는다.
우리의 소금은 바닷물을 끓여서 소금을 만드는 자염 방식으로 생산되었다. 소금은 중요한 세금 자원이었고, 국가는 소금세를 부과하며 염전을 관리했다. 민간 생산도 있었지만, 대체로 국가가 독점하거나 허가를 통해 제한적으로 생산을 허용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자염 방식과 염전에서 태양열로 증발시키는 방법, 갯벌에 바닷물을 부어 증발시키는 천일염전 등을 통해 소금을 생산했다. 한반도에서 천일염이 도입된 것은 일제강점기였다.
화학공업에 들어가는 소금을 충당하기 위해 일제는 한반도에 천일염전 설치를 구상한다. 대한제국에 통감부를 설치하고 1907년 인천 주안과 부산 남구 용호동에서 대만에서 들여온 천일염 제조법을 실험 본다. 시험장은 성공적이었고 이후 1908년에는 평안도 광양만까지 천일염전을 확대한다. 그 이후 1944년까지 일제가 한반도에 조성한 천일염전의 면적은 1천8백27만 평에 달한다.
수천 년간 바닷물을 끓여 자염 방식으로 소금을 만들어온 우리 민족에게 바람과 햇볕을 이용해 만드는 천일염은 낯선 생산 방식이었다. 1910년대 이후 일본은 우리나라 서남해안 지역(신안, 무안, 영광, 고창, 태안 등)에 대규모 태양염전을 개발했다. 특히 자연조건이 뛰어난 서해안 갯벌을 중심으로 염전을 집중적으로 확장했다.
염전 자체는 일본의 자본으로 개발되었고 총독부 위임 관리업자(또는 일본인 기업)가 소유했다. 소금 생산, 유통, 판매를 전면 통제했으며 생산자는 정부에 강제적으로 소금을 납품하고 가격도 정해졌다. 생산된 모든 소금은 총독부가 매입했으며 철저히 국가 통제하에 유통되었다. 유통 단계에는 허가된 유통상만 참여할 수 있었으며 조선인은 배제되거나 제한적으로만 참여하는 구조였다. 조선인의 자유로운 소금 거래는 금지되었고 대부분 이익은 일본 자본이 가져갔다. 소설 속 봉염 어머니를 통해서도 소금을 구하기 어려운 현실이 드러난다. 민중은 비싼 가격에 구매하거나 불법 밀염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천일염은 만들기 쉽고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일본은 조선 전역에 천일염 생산소를 세워 조선의 소금을 수탈했다. 이렇게 생산된 조선의 소금은 일본의 화학공업과 무기산업의 원료로 사용되었다.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를 꿈꾸던 일본에 소금은 꼭 필요한 자원이었다.
천일염이 정착된 이후 전통적인 소금 채취방식인 바닷물을 끓여 만드는 자염은 사라졌다. 일제 강점기하의 천일염 생산이 정착된 면도 있지만 자염 생산을 위해서는 연료가 필요했고 해방 이후 산림 훼손을 이유로 자염 생산을 막았다. 그나마 남아있던 자염 생산은 1960년대 염업 임시조치법 이후 완전히 중지되었다. 전통 방식의 소금 생산 방식을 상실한 점은 우리의 아픈 역사가 되었다.
작품 속에서 소금은 삶의 필수 조건이지만 동시에 인간을 갉아먹는 고통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단순한 조미료를 넘어서 생존과 저항의 의미를 담았다. 삶의 필수품이지만 쉽게 가질 수 없는 소금을 통해 작가는 민중의 고단한 삶과 식민지 현실을 드러낸다. 일제 치하의 착취는 물론 가족의 해체를 통해 인간의 절망을 그렸다.
소금은 인간성을 상실하고 비참한 현실을 드러내는 고통의 결정체이면서 동시에 침탈된 인간성 앞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주인공의 의지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어려운 시대를 관통하면서도 우리의 정신은 말살되지 않고 강인하게 살아남았음을 보여준다.
※ 참고문헌
강경애 <소금> 62p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