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소금과 전쟁

김경환 작가

소금과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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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런저런 이유로 전쟁을 한다. 인류가 출현한 이후 전쟁을 멈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종교, 이념, 인종, 영토, 자원 등 다양한 이유로 크고 작은 전쟁이 벌어진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물질이 있다. 바로 소금이다. 지금은 워낙 흔해서 소금 때문에 전쟁하진 않지만, 불과 몇 세기 전 만 해도 소금을 얻기 위한 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소금과 민중의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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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경제전문기자이자 칼럼니스트 에드 콘웨이는 저서 <물질의 세계>에서 이렇게 언급한다.

“만약 하버-보슈 공정이 개발되지 않았다면 1차 세계대전은 훨씬 빨리 끝났을지 모른다.”

하버-보슈 공정은 질소와 수소를 고온·고압 조건에서 철 촉매를 이용해 암모니아를 대량 합성하는 방법으로, 인류의 식량 문제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문제는 이 공정으로 비료뿐 아니라 폭약(질산염)도 만들 수 있었다는 점이다. 1차 세계대전은 주로 참호전으로 전개되었는데, 프랑스와 영국 등 연합국은 칠레 질산염으로 제조한 포탄을 독일에 퍼부었고, 독일을 비롯한 동맹국은 합성 질산염으로 만든 포탄으로 응수했다.


화학적 방식으로 질산염을 얻기 전에는 자연에서 얻었다. 중국인들은 바위와 벽돌에서 소금을 채취했는데, 불을 붙이면 폭발해 화약(火藥)이라 불렀다. 서양인들은 오래된 지하실의 돌벽에서 소금을 긁어 유황과 섞어 화약을 만들었다. 이를 ‘돌의 소금’이라는 뜻의 라틴어 솔트피터(saltpetre)라 불렀다. 인류는 질산칼륨을 얻기 위해 썩은 고기, 오래된 변소, 새똥 더미를 뒤져야 했다. 그러다 화학 작용을 통해 질산염을 대량생산하게 되면서 전쟁의 양상이 바뀐다.


소금은 폭약 제조에 쓰이는 것은 물론 제약, 철강, 제지, 건설, 화학 산업 등 600여 개의 산업에 쓰인다. 소금 없이 인류의 역사도, 문명도 존재하기 어렵다. 이처럼 소금이 중요한 가치를 지닌 물질이다 보니 국가가 관리하는 전매제가 생겨났고, 세금을 가혹하게 매기면서 민중 봉기가 일어난다.


전매제는 국가만 소금을 팔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중국의 소금 전매제는 기원전 7세기 춘추시대로 거슬러간다. 발해를 끼고 있어 소금 생산이 유리했던 제나라는 소금 전매제를 시행했고, 재정 확보에 크게 기여했다. 전국 단위로 더욱 강력하게 전매제를 시행한 왕은 진시황이다. 그는 소금을 팔아 만든 무기로 중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 진시황은 소금을 팔아, 그 돈으로 군대를 양성하고 무기를 대량으로 생산했습니다. 중국의 전매제는 무려 2천 년 동안 유지되다가 지난 2024년에 폐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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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에 전면 시행된 악명 높은 소금세 '가벨(Gabelle)'은 프랑스의 경제와 정치 지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왕실은 8세 이상의 모든 국민에게 매주 최소량의 소금을 일정한 가격에 구매하도록 의무화했다.

또 이 소금을 절인 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없었고, 이를 어기면 감옥에 가뒀다.

억압과 불평등의 상징 가벨은 20세기에 이르러서야 폐지될 수 있었다.


전략 물질, 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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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간디의 소금행진은 영국 식민정부의 소금세가 원인이었다. 영국은 1882년부터 소금 생산을 독점하고, 인도인이 바다에서 소금을 채취하거나 소금을 만드는 것을 금지하며 높은 세금을 부과했다.

간디는 부당한 소금세 폐지를 주장하며 1930년 3월 12일부터 4월 6일까지 385킬로미터를 걸어서 이동했다. 행진 도중 수많은 인도인이 합류했다. 간디는 단디의 바다에서 소금 한 줌을 직접 채취하는 것으로 불복종, 비폭력 저항운동을 선언했다.


유명한 간디의 소금행진은 영국 식민정부의 소금세가 원인이었다. 영국은 1882년부터 소금 생산을 독점하고, 인도인이 바다에서 소금을 채취하거나 소금을 만드는 것을 금지하며 높은 세금을 부과했다.

간디는 부당한 소금세 폐지를 주장하며 1930년 3월 12일부터 4월 6일까지 385킬로미터를 걸어서 이동했다. 행진 도중 수많은 인도인이 합류했다. 간디는 단디의 바다에서 소금 한 줌을 직접 채취하는 것으로 불복종,

비폭력 저항운동을 선언했다.


중세 도시국가 베네치아와 제네바는 지중해 소금무역 주도권을 놓고 1250년부터 120년간 무려 4차례의 전쟁을 치른다. 이 전쟁에서 최종 승리한 베네치아는 막대한 부를 축적하며 강력한 해상강국으로 성장한다.

베네치아의 화려한 건축과 문화는 소금독점으로 쌓은 막대한 부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베네치아가 개발한 천일염 제조 기술은 지금도 쓰인다.


미국 남북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은 것도 소금이다. 당시 가장 큰 제염소는 남부 버지니아 솔트빌에 있었다. 북군은 제염소를 점령하기 위해 진격했다. 1864년 10월 1차 솔트빌 전투에서 남군은 이 공격을 격퇴할 수 있었지만, 이듬해 12월 2차 솔트빌 전투에서 패했다. 북군은 남부 솔트빌을 봉쇄했고 버티지 못한 남군은 결국 항복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이 밖에 영국 드로이트위치 소금샘에 대한 통제로 일어난 장미전쟁(1445년), 소금 광산의 지배권을 차지하기 위한 독일-오스트리아 전쟁(1611년), 러시아 차르 알렉세이의 가혹한 소금 정책에 반대한 모스크바 봉기(1648년), 도쿠가와 막부의 소득 독점과 높은 가격에 반대하는 일본 소금폭동(1787년) 등 수많은 전쟁과 항쟁이 있었다.


무한한 가치, 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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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소금은 전쟁과 봉기, 혁명과 독립운동의 촉매제가 되었다. 또한 전쟁의 판도를 바꾸고, 식문화는 물론 의료와 위생, 산업 전반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1억 가지 이상의 용도로 쓰인다는 소금, 이 매력적인 물질의 가치는 거의 무한대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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