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은 작가
사람의 스카프가 날린다. 머리칼이 바람에 나부낀다. 웃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클로즈업 된 사진은 관람자에게 특별한 인상을 준다. 바람이 분다. 바람은 바다에서 시작되어 해수와 함께 수로를 따라 염전을 향해 나아간다. 소금을 잔뜩 물고 염전 주위를 맴돌다 소금 속으로 잦아든다. 희고 반짝이는 소금 결정 안에 바다에서 온 바람이 고인다. 햇빛을 잔뜩 물고 날카로운 모서리를 세우며 마치 그것은 다른 세계로 나아가 사라진 영웅 같다. 바스라져 범인(凡人) 삶 안으로 스미려는 것같이 느껴진다. 누군가는 이런 생각이 조금 과한 것 같다고 말할 것 같다. 하지만 투명한 바닷물에서 흰 고체가 생성되는 광경을 보면, 낯설고 경이롭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 없던 것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이므로.
박물관에서 소금의 생성과정을 끝까지 공부하고 바깥으로 나온다. 박물관 앞에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초입에 있다. 잠깐 한숨을 돌리기 위해 들르면 좋은 장소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는 블루베리, 복분자, 천일염, 함초소금, 코코아 소금 토핑을 뿌려 먹을 수 있는 아이스크림을 판다. 달고 맛있는 아이스크림 위에 뿌린 소금 맛은 이상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소금은 단맛을 극대화시킬 뿐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소금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시원하고 단 음식인데 짜다는 느낌이 주는 낯설음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박물관에서 소금에 대해 공부했으니 소금가게를 들러본다. 다양한 소금 상품이 매장 안을 채운다. 김장용 소금부터 가공된 소금까지, 매장 안은 만들기도 어렵고 가격도 비싸다는 토판염과 각종 먹거리로 가득 차 있다. 동네 사람 누군가 가게 앞을 지나가며 다른 누군가를 부른다. 가게 안에 발을 들여놓으며 안부를 나눈다. 가게 전경을 천천히 훑으며 물건을 구경하는 손님들을 향해 빙긋 미소 짓는다.
가게를 나와 곧장 나무 계단을 따라 야트막한 동산을 오르면 낙조 전망대에 이른다. 낙조전망대는 한 번도 오지 않은 사람은 있겠지만 한 번만 온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십 여분 남짓 소요되는 등산 코스를 오르는 동안 각종 식물이 주는 아름다움으로 충만하다. 정상에 올라 둘러보니 증도의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 아래 옹기종기 집들이 마치 성냥갑 같다.
낙조 전망대에서 오른쪽으로는 염생식물원이 있다. 계절마다 다른 색을 낸다. 염생식물원은 유네스코 생물다양성 보전 지역과 람사르 습지로 지정돼 있다. 생태환경을 관찰할 수 있는 우리나라 유일의 식물원이다.
태평염전 소금밭 11만 제곱미터 넓이에 조성된 염생식물원은 염전의 습지 생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국내 유일의 생태습지이다. 식물원에서는 자연갯벌에 자생하고 있는 갖가지 염생식물을 관찰할 수 있다.
갯벌 미네랄을 먹고 자라는 건강한 식물이 군락을 이룬다. 함초를 비롯해 겟메꽃, 해당화, 칠면초 등 100여 종의 염생식물들을 관찰할 수 있다. 갯벌에서 자라는 띠(삐비)가 흐드러지게 물결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220미터의 탐방로를 따라가면 염생식물뿐만 아니라, 짱뚱어, 칠게, 방게, 고동 등 갖가지 갯벌 생물도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어 신기하다.
박물관을 지나 카라반이 있는 야외 캠핑장 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넓게 트인 하늘 아래 규칙적으로 놓인 카라반의 흰색 몸체는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그 사이로 바람이 지나간다. 소금밭과 갯벌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냄새가 바람에 실려온다. 캠핑장의 고요함과 섞이고 때로 카라반 앞에서 의자를 꺼내 앉아 쉬는 사람들, 간단한 음식을 조리하며 웃음소리를 주고받는 사람들 풍경과도 어우러진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염전의 얇은 수면이 하늘빛을 그대로 받아 비춘다. 붉고 주황빛으로 물든 하늘이 물 위에서 흔들리며 반짝거린다. 조용히 하루가 저물어간다. 풍경을 하나로 잇는 바람을 느끼며 그것이 연결해준 섬의 모든 존재를 피부로 느낀다. 해가 완전히 수평선 아래로 내려앉으면, 염전은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낮 동안 반짝이던 소금 결정들은 어둠 속에서 미세한 잔광을 간직한 채 조용히 식어간다. 바람의 결도 달라진다. 낮의 바람이 생동하는 움직임을 품었다면 저녁의 바람은 느리고 부드럽고, 마치 하루를 정리하는 손길처럼 거칠었던 공기를 매만진다.
바람길을 따라 다시 뒤돌아보면 낮의 풍경은 저녁의 색을 입고 전혀 다른 장면처럼 펼쳐진다. 소금밭은 거울이 되어 하늘의 잔광을 품어 어슴푸레하게 빛난다. 염생식물원 너머로는 짙어지는 그림자 사이로 칠면초 군락은 더욱 붉은 기운을 뿜어내고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낸 생명이 고요히 숨을 고른다. 어둠 속으로, 세상에 없던 것 인양 밤으로 잦아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