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칼날

by 훈연

누군가 그랬다.
“‘내가 몇 번을 말했어!’라는 말은 결국 나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하는 말이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왜냐하면 그 말이 바로 나의 육아 언어였기 때문이다.

내가 집에서 아이들에게 화낼 때 가장 자주 하는 말이 그것이었다.


“내가 몇 번을 말했어!”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머릿속으로는 같은 잘못을 하는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왜 하면 안 되는지, 무엇이 나쁜지 충분히 설명해 준 것을 나의 면죄부로 삼았다.

하지만 내 안의 “괜찮아”를 다 썼다고 생각되면,
이성적인 제어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개 큰애는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것으로, 작은 애는 조그만 입술을 댓 발 내밀다 고개를 떨구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주로 ‘화장실 참기’와 ‘상대 몸에 점프하기’가 나의 분노 발작 버튼이었다.
정말 위험하거나 끔찍한 잘못은 아니지만,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다 보니 발작 버튼은 항시 예열 모드로 대기하고 있었다.


어제도 그랬다
세상 다정한 엄마처럼 백설공주를 읽어주는 중이었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감정을 몰입해 읽는데, 아이가 두 다리를 가만히 두지 못하고 있었다.


“우진아, 쉬야하고 싶어?”
“아니!”


의심쩍었지만, 모처럼 즐거운 모자 시간을 이어가고 싶어 계속 이야기를 읽었다. 아이는 “공주님이 제일 예뻐요.” “안 돼요, 난쟁이들이 문을 열어주지 말랬어요.”등을 흉내 내며 이야기 속에 푹 빠져 있었다.


책을 덮고 나는 씻기 위해 욕실로 향했고, 얼굴에 한껏 거품을 내고 있는데 밖에서 다급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엄마! 나 쉬야! 쉬야하고 싶어요!”


아이는 잠긴 문을 열기 위해 애쓰고, 나는 예열되다 못해 뜨거운 버튼이 바로 눌리는 것을 느꼈다.


“안방으로 가! 도대체 몇 번을 말해!”


아이는 급한 발걸음으로 달려갔고, 나는 씻고 나오자마자 달궈진 냄비처럼 씩씩거리며 2차전을 시작했다.


“너 아까, 엄마가 쉬하고 싶냐고 물어봤어, 안 물어봤어?”
“물어… 봤어.”
“엄마가 쉬 참으면 된다고 했어, 안 했어?”
“안 된다고 했어.”
“그런데 왜 그래! 왜 자꾸 쉬를 참아!!”


내 목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내 안의 온도가 흘러넘치는 동안 아이는 말이 없었다. 가끔씩 입을 내밀고, 눈을 맞추다, 급기야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도대체 몇 번을 말해— 몇 번을—!!!”
을 외치고 있었다.


그야말로 분노의 칼날.
뜨거운 분노는 더 큰 분노를 만들고, 더 큰 분노는 더 날카로운 말을 낳고, 그것은 아이의 마음을 베어갔다.
내 안의 온도가 높을수록, 아이의 마음은 점점 더 차가워지고 있는 줄 몰랐다.


물론 모든 육아의 세계는 어렵다.
내가 매번 화만 내며 칼춤을 추는 것은 아니다.
많은 시간 나는 따뜻하고 포근한 엄마다.
하지만 한 번 버튼이 눌리면 지나치게 예민하고, 엄격하며, 차갑다 못해 시리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엄마” 하고 달려 와 내게 안긴다. 엄마가 제일 좋다고 말하며.


저렇게 어린아이도 쉽게 용서하고 안아주는데, 나란 어른은 뭐가 이리도 어렵기만 할까.

왜 이리도 마음이 좁을까.


결국, 분노의 칼날은 나 자신에게도 되돌아오는 법이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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