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라는 사치

by 훈연

그런 날이 있다.

라디오 속 노래 가사가 유난히 귀에 꽂히는 날.

갑자기 그 노래 속 어느 시절로 나를 되돌리는 날.


퇴근길에 무심코 튼 라디오에서

들린 음악이 그랬다.


빛나는 하루가 뭐 별거겠어요
어떤 하루던 그대 함께라면...
행복이란 말이 뭐 별거겠어요
그저 그대의 잠꼬대마저 날
기쁘게 하는데


어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노래 속 '고맙다'는 말, 힘든 세상이지만 곁에 그대가 있음에 감사하다는 말이

내 마음 깊은 곳의 벽을 걷어내 주는 느낌이 들 때,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나의 '그대들'에게 진심을 전하고 싶어진다.


“여보 좋은 노래를 들으면 항상 당신이 생각나. 고마워 그런 사람으로 내 곁에 있어줘서.”

충동적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 마음을 솔직히 전하고 싶어 퇴근길에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런 생각을 잊지 않기 위해 아이가 양치하는 것을 지켜보며 끄적이다 보면, 아이가 묻는다.


“엄마 뭐 해?”.

“글을 쓰고 있어”

“왜?”


나는 미소 지으며 대답한다.

"엄마는 슬플 때나 기쁠 때, 그 감정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글을 써. 잊지 않고 꺼내 보기 위해서."

그러면 아이는 세면대로 돌아가 두어 번 양치질을 더하다가 '퉤' 뱉고는 돌아와 묻는다.


“또?”


나는 웃으며 말한다.

“엄마는 지금처럼 행복한 순간을 글로 남겨. 재민이가 양치하면서 ‘투 파 투파' 침 뱉는 소리, ‘쓱싹쓱싹' 칫솔소리, 그게 너무 좋아서 글을 적어. 우리 귀염둥이들이 잘 때 '새근새근' 숨소리', 오르내리는 볼록한 배, 동생이 말랑한 볼, 꾸밈없는 웃음소리, 이마에 난 솜털이 빙글빙글 회오리치는 모양.. 엄마는 그런 걸 잊지 않으려고 글을 써. 그게 엄마에게 행복이거든. 지금 엄마는 행복해서 그런 게 많이 생각나. "

“그래?”

아이 얼굴에도 어느덧 미소가 번진다.


나는 아이를 끌어당겨 볼록한 배에 입 맞추고 말한다.

“지금 재민이 배에 뽀뽀했는데 너무 좋은 냄새가 나. 엄마 마음이 말랑해져. 아까 동생이 양치했다고 포도향 맡아보라던 거 기억나지? 그때도 엄마가 정말 행복했어. 달콤한 향을 킁킁거리면서 계속 맡았잖아.”

형보다 먼저 치카치카했다고 어깨가 한껏 올라가 자랑하던 둘째의 얼굴,

"밥 먹었어?"라는 짧은 문자.

색종이로 함께 팽이를 접던 작은 손.


행복이랑 말이 뭐 별거겠어요.
그런 일상의 작은 것들이 행복이 아니면 뭘까.
그저 이렇게 보고만 있어도 입에서 맴돌죠


나에게 오늘은

이 평범한 일상이 '사치'다.

'그대들'이 준, 세상 그 어떤 명품보다 값진 선물이다.


매일 사랑한다거나 고맙다고 말하진 못하지만,

내 깊은 사랑은 언제나 제일 먼저 '그대들'을 부른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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