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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사장님은 슈퍼맨.

by 부자형아

새로 뽑은 실장님은 그야말로 엄청난 인재였다.

주방에 관해선 모르는 게 없었고, 가게를 운영하는 노하우까지 가지고 있었다.

까도 까도 경험이 계속 나오는 양파 같은 사람이었다.

젊을 때는 양평에 있는 유명한 레스토랑 카페에서 50명 이상의 직원을 관리하는 주방 총괄 책임자로도 근무해 봤다고 한다.

그걸 경험 삼아 한정식집을 운영해 보기도 했고, 높은 나라님들을 주 고객으로 상대해 보기도 했다고 한다.

수호는 엄청난 고수가 나의 가게로 와준 것 같았다.

내심 기뻤지만 표현하지는 않는다.

본인이 너무 무모하게 장사를 시작한 건 아닌지 조금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이대로 쭉 지금처럼만 흘러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실장님이 입사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무렵.

수호에게 할 얘기가 있다고 한다.

순간 불안해지는 수호.


‘설마 힘들다고 벌써 그만둔다고 하시는 건 아니겠지?’


“사장님, 제가 웬만하면 얘기 안 드리려고 했는데,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서요.”

“왜요? 무슨 일인데요?”

“사장님께서는 오전 11시쯤 들어가시잖아요. 사장님이 들어가시면 주방장이 나한테 일을 다 넘기는 것 같아요. 내가 나이가 많아서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려고도 생각해 봤는데, 정도가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제가 간 다음에 무슨 일이 있으셨는지 자세히 알려주세요.”

“주방장이 열정적으로 일을 하는 건 좋은데, 본인은 요리만 하려고 하지 재료를 준비하는 것과 설거지는 전부 저한테 넘기더라고요. 어제는 본인이 하는 메뉴를 알려주면서 앞으로는 가스 불 위에 바로 조리할 수 있게 세팅해달라고 했어요. 준비는 제가 다 해주고 본인은 가스 불만 켜겠다는 건데 이게 맞는 건지... 저도 제가 해야 할 반찬 종류가 엄청 많고 일일이 준비를 다 해야 하는데 이대로는 계속 일을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제가 한번 얘기해 볼게요. 실장님이 봤을 때 이건 아니다 싶은 건 다 이야기해 주세요.”

“그리고 설거지는 거의 손도 안 대요. 여기처럼 프라이팬과 웍이 많은 주방은 보통 설거지를 다 같이해야 하는 게 정상이요. 주방에서 제일 힘든 게 설거지인데... 특히나 이렇게 주방이 작은 곳은 더더욱 파트를 나눠서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먼저 들어왔다고 텃세를 부리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렇게는 일을 할 수가 없어요.”

“이 작은 곳에서 무슨 텃세를 부리겠어요. 알겠습니다. 제가 방법을 강구해 볼게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실장님이 일을 못 하겠다고 하니.

빨리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홀 직원에게도 물어본다.

한쪽 이야기만 듣고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방장님이 실장님한테 일을 넘기는 것 같다고 하시던데 그런 느낌 받은 적 있어요?”

“사실 저는 젊어서 그냥 주방장님이 시키는 대로 하긴 하는데 실장님은 좀 힘드실 것 같아요. 실장님도 해야 할 일이 있으신데 계속 일을 시키는 것 같기도 하고, 설거지도 저한테 해달라고 항상 얘기하시고요. 근데 홀은 포장 다 하고 나면 크게 할 일이 없어서 저는 도와드리는 데 실장님께선 불만이 있으실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긴 했어요.”


또 설거지 문제다.

누구는 요리하고 누구는 설거지하고 그렇게 업무분장을 할 정도의 주방이 아니다.

분명 입사할 때도 이야기했다.

같이 조리도 해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한다고.

수호 엄마도 퇴사하기 전, 주방장에 대해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주방장이 요리만 하고 싶어 하고 설거지는 잘 안 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몇 번이나 좋게 이야기했는데...

사람은 쉽게 고쳐지지 않나 보다.


아무래도 본인이 요리만 하려고 주방장이 되겠다고 한 것 같았다.

월급까지 올려줬는데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수호는 일을 마치고 들어가기 전에 직원들을 모두 불렀다.

주방장만 뭐라고 하면 기분 나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수호는 전체적인 문제점을 이야기하며 에둘러 말한다.

“여기 이 작은 공간에서 우리가 업무를 나눠가며 일할 수는 없습니다. 실장님도 여유 되시면 주방장님 도와주시면서 보조해 주시고, 홀에서도 포장 다 끝나면 주방 일도 도와주세요. 솔직히 오후 3시 지나면 크게 할 일 없어서 수다 떨다가 퇴근하시는 거 다 알아요. 제가 cctv로 다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방장님도 힘드신 건 알겠지만 요리만 하시면 안 돼요. 같이 설거지도 해주시고 오후에는 재료 손질도 같이 해주세요. 저희 엄마도 주방장일 때 다 같이 설거지하고 재료 손질하고 그렇게 했잖아요. 누구는 요리만 하고 누구는 설거지만 하고 그러시면 안 됩니다.”


수호는 최대한 배려해서 이야기했다고 생각한다. 아닌가?

하지만 주방장은 기분이 나빴는지 얼굴도 보지 않고 뒤돌아서 듣기만 하더라.

그렇게 이야기를 마치고 알아듣겠거니 하면서 가게를 나온다.

요즈음 너무 바쁘고 힘들어서 빨리 집에서 쉬고 싶었다.

오후 4시에는 다시 나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가게에서 주차장까지는 도보 1분 거리.


차에 딱 앉는 순간 문자 한 통이 왔다.

주방장이었다.


‘사장님, 저 이번 달까지만 할게요. 저는 요리를 하려고 주방장을 한다고 했지, 설거지하려고 주방장 하겠다고 한 거 아니에요.’

하... 진짜 기가 찼다.

어이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말한 지 3분도 안 되었는데 그것도 문자로 그만두겠다고 통보한다고?

화가 머리끝까지 나는 수호였다.

당장 가게로 돌아갈까 생각도 했지만, 그냥 빨리 쉬고 싶었다.

‘네 알겠습니다. 굳이 이번 달까지 안 하셔도 돼요. 사람 구하는 것 때문이라면 걱정 마시고 내일부터 안 나오셔도 됩니다.’


집에 도착하니 은채가 점심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은채와 아들내미를 보니 머리끝까지 났던 화가 사르르 녹아내린다.


역시 가족의 힘이란 엄청난 것이다.

잠깐 쉬려고 누웠는데, 걱정이 앞서서 그런지 쉬는 게 아니었다.

주방장이 그만두면 또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막막했다.

은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 도중에 주방장한테 문자가 왔다.


‘그럼, 내일 금요일이니까 내일까지만 나올게요.’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코로나가 점점 더 심해지면서 방문하는 손님은 많아지고, 배달 주문도 늘어나는 상황.

이 위기를 또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두 발 뻗고 잘 수 있는 날이 하루도 없다.


당장 다음 주부터가 문제다.

수호는 본인이 레시피 교육을 받지 않을 걸 이제야 후회한다.


‘가오픈 기간에 부지런히 움직여서 배워두었으면 조금이나마 여유가 있었을텐데...’


그렇다고 다시 엄마에게 도움을 청할 수는 없었다.

이런 상황을 이야기하면 걱정되셔서 바로 와주실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레시피가 있으니 그냥 해볼까라고도 생각했지만 자칫하면 맛이 변하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다.

결국 은채와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본 끝에 수호가 다시 레시피 교육을 받기로 결정했다.

시스템을 조금 바꿔 수호가 주방장으로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사람을 구하는 것도 어렵고, 인건비 지출을 줄여보자는 마음으로 말이다.

수호는 바로 본사에 전화를 한다.

다음 주에 레시피 교육을 신청하고 싶다고 말이다.

다행히 가능하다고 한다.

주방 레시피교육은 하루 15만 원...

반찬의 종류가 많아서 일주일은 받아야 한다.

5일이면 75만 원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지금이라도 배워놔야 나중에 주방장을 뽑더라도 수호가 교육을 해줄 것 아닌가.


이렇게 수호는 슈퍼맨이 되어 보기로 한다.


수호는 장사를 해보니 이 세상의 자영업자분들이 모두 슈퍼맨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직장인일 땐 자신의 업무가 있었다.

그 일만 열심히 하면 되었다.

하지만 사장님이 되어보니 모든 걸 할 줄 알아야 했다.

매장관리, 직원관리, 재고관리, 고객관리, 세무관리, 매출관리, 홍보광고 등등.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신경 쓰고 책임지고 확인해야 하는 위치가 바로 사장이었던 것이다.


‘직장인이었을 때가 정말 편했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수호였다.

순식간에 레시피 교육이 끝났다.

요리를 취미로 해왔던 수호라 그런지 많이 어렵지 않았다.

조리장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알고 보니 수호가 프랜차이즈 점주들 중에 가장 최연소라고 한다.

수호는 진짜 슈퍼맨이 된 기분이었다.


시스템에 변화를 주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시장으로 향한다.

이제는 노하우가 생겨서 주 3회 정도 도매시장을 간다.

시장을 안 가는 날은 7시에 일어날 수 있다.

그렇게 가게로 출근해서 밤 9시에 퇴근한다.

어찌 보면 2시간 거리로 출퇴근하는 직장생활과 삶의 환경이 비슷해진 것이다.

처음부터 너무 허황된 꿈을 꾸고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걱정했던 대로 체력적인 부분이 문제가 되었다.

누적된 피로도가 높은 상황이었기에 쉽게 지쳤다.

수호가 힘들어하니 실장님과 홀 직원도 힘들어졌다.

그래도 사장님이 힘들어 보인다고 옆에서 많이 도와주는 직원들이다.

이분들과는 정말 오래오래 일했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지금 보니 창단멤버가 사장인 수호밖에 없었다.

고작 3개월이 지났는데 말이다.


사람을 쓴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일이다...


수 많은 가게들이 영업 중간에 브레이크 타임을 만드는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다.

중간에 휴식을 취하는 것과 계속 일 하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

매출이 점점 올라가면서 일이 많아지다 보니 수호만 힘든 것이 아니라 직원들도 힘들어했다.

수호는 하루 종일 주방에 서서 일을 하니 힘들었지만, 직원들은 일이 힘든 것보다 하루 종일 사장님이 옆에 있는 것이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수호가 없을 땐 중간중간 쉬기라고 했는데 지금은 떡 하니 사장이 일하고 있으니, 본인들도 가만히 있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오전에 2시간 정도 일해줄 주방보조 직원을 한 명 채용하기로 결정했다.

수호가 주방장이 되면서 줄어든 인건비로 설거지와 재료 손질을 담당해 줄 사람을 한 명 뽑고, 수호는 중간에 잠깐 쉬고 오기로 한 것이다.

근무 시간이 9시 30분부터 12시까지라 아이를 등원시키고 잠깐 일하려는 주부들이 정말 많이 지원했다.

수호는 요식업 경력이 있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채용했다.

4일 뒤가 10월이라 그때부터 출근하기로 하였다.


이제야 다시 자리를 잡아간다고 생각할 무렵 또다시 문제가 발생했다.

홀 직원은 출근하자마자 분주하게 전화를 몇 통 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조용히 수호를 부른다.


수호는 이제 직원들이 부르기만 해도 온 몸에 털이 쭈뼛쭈뼛 선다.

절대로 좋은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장님. 저 지금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할 것 같아요.”

“네?? 지금 할 일이 산더미인데요? 왜요??”

“유치원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와서 빨리 데려가래요... 검사도 받고 오라고...”

“누구 없어요? 남편이나 할아버지나.”

“네. 다들 멀리 사시고 남편도 일하고 있어서 못 온대요.”

“하, 알겠어요. 일단 빨리 가봐요. 애들이 먼저지. 검사받고 연락해 주세요.”

“그리고 사장님... 죄송한데 결과가 오늘 안 나오면 내일도 애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 못 나올 것 같아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반찬가게는 특성상 오전이 제일 바쁘다.

하루 종일 팔아야 할 음식이 오전에 거의 다 나온다.

그런데 지금 가야 한다고 한다.

포장할 게 산더미다.


수호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라 지금 홀 직원이 어떤 마음일지는 잘 안다.

그래서 당장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지금처럼 신속 항원 검사가 있던 것도 아니었고,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었기 때문에 검사 결과가 다음날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결국은 내일도 못 나온다는 것이다.


수호는 은채에게 전화를 한다.

출산한 지 3개월밖에 지나지 않아서 진짜 웬만하면 부르고 싶지 않았다.

근데 당장 다른 방법이 없었다.

고맙게도 은채는 바로 씻고 준비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곳으로 전화를 건다.


“장모님... 죄송한데 지금 저희집으로 좀 가주실 수 있나요?? 직원이 갑자기 못 나오게 돼서 은채가 도와주러 와야 할 것 같아요. 내일까지만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장모님도 바로 준비해서 택시 타고 가신다고 한다.

수호는 갑자기 눈물이 난다.

감사의 눈물인지 미안함의 눈물인지 모르겠다.


본인 때문에 주변의 가족들을 다 고생시키는 것 같았다.

수호는 슈퍼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슈퍼맨의 망토가 찢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지금 가는 이 길이 맞는 건지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과연 이 자영업을 계속해서 이끌고 갈 수 있을까?’

‘3년은 해야 투자금이라도 회수할 텐데...’


수호는 하루하루 걱정만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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