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주방보조 직원은 정말 경험이 많았다.
일하는 것을 보니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주방장과 홀 직원의 동의하에 모두가 실장님으로 부르기로 하였다.
주방장은 40대, 홀 직원은 30대였으니 실장님이라고 불러도 크게 어색하지 않았다.
주방보조로 뽑긴 하였지만 워낙 실력이 좋고, 우리 모두가 배울 점이 너무 많았다.
특히 재료들을 관리하는 노하우, 반찬의 가성비를 올리는 방법과 같은 실무적인 것들을 보고 들을 수 있었다.
수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을 뽑길 잘했다고 말이다.
코로나는 점점 더 심해졌고, 날씨는 아프리카처럼 더웠다.
에어컨 두 대를 하루 종일 풀로 가동하는데도 딱히 시원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더운 날씨는 반찬가게의 매출을 올려주는 효과가 있다.
무더위로 인해 집에서 반찬 하기 힘든 주부들이 많이 방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름기간 내내 무더위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무더위와 같이 찾아오는 것이 있다.
바로 장마와 태풍이다.
수호가 장사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여름.
오마이스라는 태풍이 우리나라 제주도 근처까지 다 왔다고 한다.
태풍은 우리나라를 비켜가는 듯 하였지만, 태풍의 형태를 잃어버리고 열대저기압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열대 저기압은 생명력이 길어서 오랫동안 비를 뿌린다고 하더니 일주일 내내 비가 내렸다.
차라리 빠르게 지나가는 태풍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비가 오는 날은 매출이 곤두박질친다.
우산을 접었다 폈다 비를 맞으며 들어오려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에 100만 원씩 찍던 매출이 갑자기 50만 원대로 내려앉았다.
월화수목금 전부 말이다.
날씨와 장사가 연관이 있다는 글은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수호.
책을 몇십 권 읽어도 정작 실무에 필요한 내용들은 왜 이렇게 부족한 것일까.
괜히 애꿎은 책에 화풀이를 한다.
다시 생각해 보니 자기합리화일 뿐이다.
비를 예측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비가 온다고 장사가 모두 안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가끔 들어오는 손님 덕분에 조금이라도 매출을 올릴 수 있었지만...
같이 끌고 들어오는 빗방울을 닦느라 수호는 하루 종일 걸레와 혼연일체가 되어있었다.
바닥이 미끄러워 손님이 넘어지면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기에 바로바로 닦아야 한다.
한창 비가 내리고 있는데 옆집 떡볶이 사장님께서 들어오셨다.
남은 떡볶이와 김밥을 가지고 말이다.
옆집 떡볶이집은 이 동네에서 유명한 맛집이자 터줏대감이다.
사장님 부부가 20년 이상 이 자리에서 장사를 해오신 분들이다.
“이거 집에 가져가서 아이들과 좀 먹어요.”
“안 주셔도 되는데, 감사합니다!”
“장사는 좀 어때요? 할만해요? 잘 되는 것 같던데”
“잘 되긴 하는데 너무 힘드네요. 직원도 바뀌고 얼마 전에 어머니도 내보냈어요”
“어머니는 왜 그만두셨어요?”
“일하다가 다치기도 했고 제가 계속 지켜보니까 너무 힘드신 거 같아서요.”
“요식업이라는 게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단단한 내공이 필요해요. 특히 나이 많으신 분들이 잘못하면 몸에 병이 생기니까 조심해야죠.”
“맞아요. 그래서 차라리 빨리 내보낸 게 다행인 것 같아요. 이제 반년도 안되었는데 벌써 사람을 두 명이나 새로 뽑았어요.”
“사람 쓰는 게 보통이 아니에요. 그래도 사장님은 젊은 사람치고 요즘 보기 드물게 진짜 부지런하더구먼. 매일 새벽에 일찍 나오고. 잘될 거예요!”
“감사합니다. 20년 동안 장사를 해오신 사장님이야 말도 진짜 대단하십니다.”
“에이, 나는 솔직히 하기 싫었는데 우리 집사람이 꼭 하고 싶어 해서 지금까지 하는 거예요. 우리도 처음엔 진짜 힘들었어요. 근데 하다 보니까 또 잘 되더라고요. 오히려 지금이 훨씬 힘들어요. 인건비도 많이 오르고, 다 카드로 결제하니 옛날처럼 눈먼 돈도 없고... 그래도 사장님은 아직 젊으니까 열심히 해봐요!! 하다 보면 분명 좋은 기회도 오고 잘할 수 있을 거예요”
“네네! 감사합니다! 아 저도 반찬 좀 드릴게요! 비가 와서 그런지 많이 남았어요. 아깝지만 내일 되면 다 버려야 해요.”
“이걸 다 버려?? 내일까지 팔아도 되는 거 아니에요?”
“팔아도 되긴 되는데, 제가 마음에 걸려서 그렇게 못하겠더라고요. 항상 그날그날 새로 만들어서 파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서요.”
“그래도 너무 아까운데... 여기 주변 사장님들하고 음식 좀 바꿔 먹고 그래요. 빵집도 있고, 죽집, 김밥, 커피, 편의점도 있으니까! 우리도 반찬 하기 힘든데 자주 바꿔먹고.”
“알겠습니다! 저도 그러면 좋죠. 하하”
“말 편하게 해도 되죠? 내가 삼촌뻘은 될 거 같은데”
“아 그럼요 사장님.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남은 반찬들을 두둑이 포장해 드린다.
어차피 오늘 못 팔면 다 버려야 한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다.
매일 매일 새롭게 만든 반찬을 진열하는 것이 수호의 모토다.
떡볶이 사장님은 남은 반찬들을 보시더니 나가시면서 한마디 던지셨다.
“이렇게 비 오는 날은 반찬 많이 하지 마! 비 오면 개미도 잘 안 들어와! 재료라도 아껴야지! 좋은 날은 반드시 올 거야. 열심히 하자고!”
30권의 책보다 떡볶이 사장님의 말 한마디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이래서 실전과 경험이 그 어떠한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인가 보다.
수호는 이렇게 또 하나를 배운다.
수호가 2년 6개월 동안 반찬가게를 운영하면서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던 옆집 떡볶이 사장님.
때로는 아버지처럼, 때로는 형처럼, 멘토와 같은 사장님 덕분에 수호는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 책을 쓰고 있는 지금도 수호는 정말 감사한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