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직원의 등장과 함께 업무에도 미세한 변화가 생겼다.
새로운 직원은 요식업에 경험은 많았지만, 대부분 카페에서 혼자 일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주방일을 도와주는 것이 쉽지 않았다.
수호 엄마와 주방보조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알아서 중간 보조 역할을 잘해준다면 참 좋았지만 이제 막 들어온 신입에게 벌써부터 그런 것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던가?
결국 조금씩 동선이 꼬이기 시작하더니 불협화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사건이 하나 터진다.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다 같이 세팅하는 과정에서 수호 엄마가 조리대 선반 위에 올려둔 주방보조의 핸드폰을 떨어트린 것이다.
딱딱한 주방 바닥이었으니 당연히 박살이 났다.
기본적으로 조리대 선반 위에 핸드폰을 올려두어서는 안 된다.
반찬가게는 용기들이 크기 때문에 그 뒤에 물건을 두면 보이지 않는다.
반대편에서 용기를 살짝만 밀어도 뒤에 있는 물건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서 항상 조리대 위에 핸드폰을 올려두지 말라고 수시로 이야기한다.
수호는 오전 일을 마치고 점심 전에 밖으로 나온 터라, 그 이야기를 새로 온 홀 직원과 교대할 때 들을 수 있었다.
홀 직원은 정말 난감한 상황이었고, 분위기도 험악했다고 한다.
수호는 엄마에게 바로 전화를 건다.
“엄마, 오늘 주방 직원 핸드폰 떨어져서 액정 박살 났다며? 왜 나한테 바로 전화 안 했어?”
“뭘 전화를 해.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핸드폰 거기 두지 말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또 거기다 둔 거야 걔가. 우리가 항상 위험하니까 거기 두지 말자고 얘기하잖아.”
“아 그래도. 일단 떨어트렸으면 엄마도 잘못한 거지. 말다툼도 했다며. 사과는 했어?”
“얘는, 그럼 엄마가 사과도 안 했겠니? 사과를 해도 계속 본인은 잘못 없다는 듯이 말하니까 나도 기분이 나빴지.”
“일단 알겠어. 내가 연락해 보고 처리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있어.”
수호 엄마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
조리대 위에 핸드폰을 두지 말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언제 한번 이 사달이 날 줄 알았다.
하지만...
수호는 생각할 수 있고, 수호 엄마는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만약 이 주방보조 직원이 열받아서 갑자기 출근을 하지 않는다면...
수호나 수호 엄마는 그날부터 생지옥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호는 반찬가게를 두 달 정도 해보니 사람이 없으면 절대 돌아갈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명이 갑자기 안 나온다면 그 사람의 몫을 주변 사람이 전부 해야 한다.
물론 인력사무소에 전화해서 사람을 구할 수도 있겠지만 바로 구해진다는 보장도 없고, 일을 잘하는 사람이 올지도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야기할지 생각한 뒤 주방보조 직원에게 전화를 건다.
“쉬는 데 전화해서 미안해요, 핸드폰 액정 깨졌다면서요.”
“네... 점심시간에 실장님이 밥 차리다가 못 보고 그러셨데요.”(직원들은 수호의 엄마를 실장님이라고 부른다.)
“그니까 내가 거기다 두지 말라고 항상 얘기했잖아요. 왜 또 거기다 뒀어요.”
“아니, 사장님. 점심시간이었다니까요? 밥 먹을 때 핸드폰 보려고 거기 놓은 거예요. 실장님도 밥 먹을 때 핸드폰 보잖아요. 일할 때 올려놓은 게 아니라 밥 먹으면서 보려고 한 건데 그건 실장님이 조심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뿔싸.
수호가 예상했던 시나리오 중에 가장 최악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둘 다 잘못한 것이 없다.
아니지, 둘 다 잘못했다고 해야 하나?
수호는 카운터 앞에서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핸드폰 액정 수리비를 20만 원 정도라고 예상한다면...
우리 가게에서 제일 잘나가는 3,500원짜리 메추리알을 60개 정도 팔아야 한다.
한숨밖에 안 나온다.
20만 원을 벌기 위해 얼마나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하는지 직원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사장이 되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수호는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후배 놈에게 전화를 건다.
그래도 이런 상황을 많이 겪어봤을 것 같은 웅이에게 자문을 구하고 싶었다.
“웅아, 지금 상황이 이래. 너라면 어떻게 해결할 거 같아?”
“같은 직원끼리 그런 상황이 만들어졌다면 그냥 내버려둘 것 같아. 둘이 치고받고 싸우든 갈 데까지 가든 일단 신경 쓰지 않고 있다가, 맨 마지막에 관리자가 나서는 편이 좋거든. 중간에 끼어들면 또 나중에 네 편을 들었네, 내 편을 들었네 말이 엄청나게 나오더라고. 문제는 지금 거긴 직원들끼리가 아니라는 거야. 형네 어머니랑 직원이잖아. 나도 이런 적은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만약 그 직원이 형한테 꼭 필요한 사람이라면... 굽혀야지 형이. 직원한테도 목을 숙여야 할 때가 있더라고. 만약 우리 매장에서 대장인 아줌마가 갑자기 그만둔다고 하면 절반 이상이 그만둘지도 몰라. 그럴 땐 나도 잘 구슬리거나 머리를 조아리는 편이야. 형한테 그 사람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생각해 보고 정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맞네. 그런 것 같네. 명쾌한 답이다. 진짜. 조만간 술 한잔하자.”
“형 술 안 마신다며, 저번에 형수님한테 우리 전부 뒤지게 혼났어. 당분간 좀 자중해.”
“미안하다. 너네만 만나면 내가 고삐가 풀려서 그래. 암튼 또 연락할게.”
정말 현실적인 답이지 않은가.
그 직원이 필요하다면 머리를 조아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
이렇게 세상을 또 한 번 배운다.
다음 날 아침 수호는 은행에 들러 5만 원짜리 4장을 뽑는다.
그리고 준비한 흰 봉투에 넣고 가게로 출근한다.
주방보조 직원은 수호 엄마보다 1시간 먼저 출근한다.
“이거 어제 핸드폰 액정 깨진 값이에요. 가서 고치시고 혹시 보험이라도 들어 놓으셨다면 남은 돈은 그냥 보너스라 생각하시고 쓰세요. 알아보니까 18만 원 정도 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내가 엄마한테는 보험처리 한다고 얘기할 테니까 그렇게 말 좀 맞춰주세요.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죠?”
보험을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험에 가입했다고 돈을 다시 돌려달라고 하는 것도 웃기지 않은가.
하물며 보험을 들었다고 한들 돈을 돌려줄 것이라는 기대는 더더욱 안 되었다.
말을 맞춘 덕분에 수호 엄마는 보험처리가 된 줄 알고 넘어갔다.
수호에게는 주방보조 직원도 필요한 사람이었고, 가족인 엄마의 마음도 상하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번 틀어진 관계는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코로나는 점점 심해졌고, 반대로 수호네는 훨씬 더 바빠졌다.
아이들은 집에 있을 수밖에 없었고, 어른들은 재택근무가 늘어가고 있었다.
보통 하루 매출이 100만 원을 넘어가면 그날은 녹초가 되는데, 매일매일 매출이 100만 원을 훌쩍 넘기는 상황이었다.
하루 매출 100만 원은 수호가 생각하는 하루 손익분기점이기도 하다.
하루 매출 100만으로 잡고 영업일을 24일로 가정한다면, 한 달 매출이 2,400만 원이다.
직원 3명과 고정비(세금 포함)를 합치면 인건비는 넉넉하게 800만 원 정도.
식자재와 비품도 계산해 보면 대강 800만 원 정도.
월세랑 이자, 기타 비용을 다 합치면 300만 원 정도.
그럼, 순이익은 500만 원 정도 되는 것이다.
부가적으로 수호와 수호 엄마네 식비까지 아낄 수 있어서 100만 원 정도 더 세이브 된다고 볼 수 있다.
매출은 보수적으로 100만 원을 잡은 것이기 때문에 순이익은 실제 더 늘어날 것이다.
이 정도면 힘들어도 버틸만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확실한 건 월급쟁이 시절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하지만 3개월째가 되자 몸이 너무 힘들었다.
어깨부터 손목, 허리, 무릎까지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이쯤에서 수호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바로 수호 엄마의 체력이다.
본인도 이 정도로 힘든데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했어야 한다.
홀 직원이 바뀌면서도 굉장히 힘들어진 상태였고, 주방보조 직원과 트러블까지 생기면서 수호 엄마는 더욱 힘들어진 상태였을 것이다.
수호는 어릴 적부터 엄마를 존경해 왔다.
항상 자식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고, 아빠가 당한 사기를 극복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신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였고, 항상 가족들 앞에서 강했던 사람이었기에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에서 사부작사부작하던 요리와는 너무 다른 세상이었고, 이런 요식업을 경험해 본 적도 없었기에 슬슬 지쳐가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설거지를 마치고 주방에서 홀로 나오다가 미끄러지면서 크게 넘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발목과 손목, 심지어 얼굴까지 다쳤다.
수호가 살면서 처음으로 엄마한테 동정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수호는 여기서 일을 계속 시키는 것이 자식 된 도리가 아닌 것 같았다.
주방보조는 원래부터 설거지를 싫어해서 기존에 일하던 홀 직원이 자주 도와주었다.
그런데 수호 엄마와 트러블이 생긴 뒤로는 대놓고 설거지를 안 하는 것이었다.
반찬가게의 설거지는 큰 팬과 웍들이 많기 때문에 굉장히 힘들다.
주방보조 직원은 엄마보다 1시간 먼저 퇴근하기 때문에 일부러 설거지를 마지막까지 내버려 두는 것이었다.
수호가 오전에 있을 때 기분 나쁘지 않게 이야기해도 듣는 둥 마는 둥이었다.
직원은 시간만 되면 퇴근해 버리지만 부모는 아들이 돌아와 설거지하는 게 싫었기에 본인이 다 해 놓았던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힘들었던 것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큰 사고로 이어졌다고 봐야 한다.
수호는 바로 엄마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고, 치료를 마친 뒤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얘기했다.
그냥 자기가 하면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수호도 자식을 키워보니 부모의 마음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수호 엄마는 아픈 몸을 이끌고 가게를 나왔다.
수호는 결국 큰 결심을 한다.
다시 사람을 구하기로 말이다.
하지만 주방장을 새로 구한다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니었다.
매장 운영에 관한 것도 처음부터 다시 교육해야 하고, 레시피도 전부 가르쳐야 한다.
이래서 기업들이 신입을 안 뽑고 경력직만 뽑으려고 하는 것인가 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더 이상 엄마를 여기서 일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수호는 또다시 채용공고를 등록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는다.
얼마 전 봤던 문구와 비슷하다.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일하실 주방장님을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