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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게 말이 돼?

by 부자형아

“어이, 잠깐 우리 사무실로 와봐!”

“네네, 사장님, 무슨 일이세요?”


가게 뒤편에 있는 부동산 사장님이 수호를 부른다.

오픈 초기 인사하러 방문했을 때부터 반말이었다.

기분도 나쁘고, 가게도 바빴지만...

아버지뻘이라 그냥 조용히 따라갔다.


들어가자마자 깜짝 놀라는 수호.

사무실 바닥이 물로 흥건하다.


“아니, 사장님네 반찬가게 들어오고 나서부터 이렇게 자꾸 바닥에 물이 생겨. 여기 벽 틈으로 새어 나오는 거 같은데 지난주까지는 그냥 청소할 겸 닦아낼 수 있는 수준이었어. 근데 점점 더 심해지더라고. 내가 오늘도 몇 번씩이나 대걸레로 닦았는데 물이 점점 더 생기는 기분이야. 이거 공사하면서 뭐 잘못된 거 같은데?”

“네? 공사한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요?”

“한 달이고 나발이고 누수 같다는 거지. 공사하는 사람들이 뭘 잘못 건드린 거 같아. 이거 빨리 처리를 해줘야 나도 먹고 살거 아냐. 맨날 이렇게 대걸레로 닦을 수는 없잖아. 며칠 이러다 말겠지 하고 지켜봤는데 점점 심해져서 안 되겠어. 거기 업체 전화해서 빨리 봐달라고 해봐.”

“아... 죄송합니다! 확인해 보고 다시 올게요.”

‘이게 무슨 일이지? 그 말로만 듣던 누수인가?’

수호는 새벽 4시부터 계속 움직였던 탓에 지칠 대로 지쳐있는 상태에서 부동산 사무실의 젖은 바닥까지 보게 되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할 일이 산더미인데 갑자기 이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당장 인테리어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는 공사한 업체를 확인하고 연락을 주겠다고 하더라.

알고 봤더니 프랜차이즈 본사에서는 연계만 해줄 뿐이고, 실제 인테리어를 총괄하는 업체는 따로 있었다.

그러고 나서 또다시 총괄하는 업체 밑에 각각의 파트별로 하청업체를 끼고 진행한다는 것을 알게 된 수호였다.

잠시 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사장님, 공사했던 업체인데 물이 샌다고요?”

“네네, 반대쪽 부동산으로 누수가 발생한 것 같아요. 이거 지금 당장 봐주셔야 될 것 같아요. 한창 장사하는 중인데, 언제 오실 수 있어요?”

“저희가 지금 청주에서 공사 중이라 주중에는 어렵고 주말에 가야 할 것 같은데요.”

“아니,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내 가게도 아니고 남의 가게에 물이 새서 영업을 못 한다는데 당장 와서 봐주셔야죠? 그리고 지금 화요일인데 주말까지 어떻게 기다립니까?”

“일단 그럼 저희가 일정 좀 조율하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오픈하고 처음으로 화를 내는 수호.

수호는 이런 상황이 오더라도 화를 잘 내지 못하는 사람이다.

상대방이 일부러 잘못하거나 골탕 먹이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성격 탓에 본인이 챙겨야 할 것들을 잘 챙기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런 수호도 오늘은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가게도 아니고 부동산 사장님께 피해를 드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결국 공사업체에서 오늘 저녁 10시까지 오겠다는 연락이 왔고 그제야 화가 조금 가라앉는 수호다.


밤 10시가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다.

연락을 해볼까 말까 하는 찰나, 부자지간으로 보이는 사람 두 명이 큰 기계를 들고 나타났다.

늦게 도착한 것도 짜증 나 죽겠는데 싱크대를 다 뜯어내고 벽을 뚫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밤 10시까지 일을 해서 그런지 힘이 하나도 없었다.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내일 장사를 위해서 빨리 움직여야 한다.

업체는 벽에 청진기 같은 것을 대고 한참을 듣더니 누수가 맞다고 한다.

하얀 벽을 뚫는 바람에 분진 가루가 사방팔방으로 날아다닌다.

처음부터 공사를 신경 써서 잘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한참을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더니 공사가 끝났다고 한다.


시계를 보니 오전 2시 35분.


공사업체는 미안했는지 부리나케 도망갔다.

주방을 보니 대환장 파티다.

싱크대와 주변은 하얀 분진 가루로 뒤덮여 있었고, 집기류는 정리가 안 돼서 나뒹굴었으며, 뚫린 벽은 버젓이 구멍이 나 있어서 보기가 너무 안 좋았다.


수호는 결국 집에 가지 못했다.

하얀 분진 가루들을 전부 닦아야 했고, 정리가 끝나면 바로 도매시장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 않아도 될 경험을 한 것 같아 뭔가 억울하다.


부동산 사장님께 피해를 주고, 잠도 못 자고, 가게는 엉망이 되고...

힘들어서 주저앉고 싶었다.

하지만 몇 시간 뒤 또다시 가게 문을 열어야 한다.

뭔가 쳇바퀴에 갇힌 기분이었다.


정리가 끝난 수호는 편의점으로 향한다.

그리고는 한 달 동안 참아왔던 담배와 라이터를 산다.

오랜만에 피우는 담배에 정신이 몽롱하고 어질어질했다.

하얀 연기와 함께 저절로 혼잣말이 나온다.


“이건 아닌데...”


반찬가게를 시작한 지 두 달이 되어가지만, 수호는 여전히 새벽 4시에 일어난다.

그 이유는 도매시장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분명 창업박람회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시장을 가면 된다고 했는데, 완전 속은 기분이다.

초보 사장이라 더 힘든 것도 사실이지만, 좋은 업체, 싱싱한 식재료를 만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도매시장은 크고 넓어서 길을 익히는 데만 족히 두 달이 걸렸다.

장사를 배운 적이 없었기에 여기저기 휘젓고 다니며 눈도장을 찍는다.

자영업이라는 것이 몸으로 때워가며 보는 눈을 기르는 수밖에 없었다.

프랜차이즈라고 모든 것을 쉽게 생각했던 것이 불찰이었다.


하지만 이제 겨우 시작한 지 두 달째다.

부동산 계약서에 잉크는 말랐으려나?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장사가 잘되니 그것만 믿고 하루하루를 버텨나간다.

한 달에 500만 원씩 벌어서 딱 3년만 해보자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하늘은 여전히 수호 편이 아닌 것 같다.


누수를 해결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오른쪽 싱크대 배관이 터지는 일이 발생했다.

이번엔 인천에서 와야 한단다.

당장 설거지를 못 하고 있는데 언제 올 줄 알고 기다리겠는가.

그냥 가까운 업체를 불러 5만 원 주고 고쳤다.

나가지 않아도 될 돈이 나간 것이다.

5만 원이면 메추리알을 25개 팔아야 한다.

수호는 한숨이 절로 나온다.


고쳐주시던 사장님께서 잘 안 쓰는 배관을 설치했다며 이거 정말 싸구려라고 하신다.

내가 운이 없는 것인지 원래 프랜차이즈가 이런 것인지.

수호는 벌써 몸과 마음이 지쳐가기 시작한다.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몰려온다고 하더니, 이번엔 쇼케이스가 말썽이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자 오래된 상가라 그런지 가게 내부의 열기가 밖으로 빠져나가질 못했다.

천장형 에어컨을 최대로 틀어놓아도 역부족이다.

들어오는 손님들이 너무 더운 것 같다고 얘기하지만, 주방에서는 조리를 위해 계속 불을 써야 했고, 날씨는 점점 더 더워졌다.


어떻게 해야 될지 고민만 하던 중에 결국 사고가 터졌다.

점포 내부가 덥다 보니 쇼케이스의 온도가 떨어지지 않았다.

3도 이하를 유지해야 하는 쇼케이스가 더운 날씨 때문에 8~9도에 머물러 있는 것이었다.

쇼케이스 업체에 물어보니 주변 온도가 너무 높으면 아무리 기계가 좋아도 온도가 떨어지는 데 한계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민 끝에 벽걸이 에어컨을 추가 설치 하기로 했다.

쇼케이스 바로 맞은편에 말이다.


여유자금이 없기도 했고, 비싼 걸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중소기업 제품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 선택이 얼마 뒤 엄청난 후폭풍을 가져온다.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다사다난했던 6월이 끝나가고, 이제야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뒤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계속해서 발생했다.

주방 하수구가 역류하는 일도 있었고, 닥트가 고장 나서 교체하기도 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수호가 이제 새벽 도매시장 가는 횟수를 조금 줄였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눈에 익기도 했고, 어떤 점포가 물건이 좋고 주인이 친절한지 파악을 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낮에는 잠깐 집에 가서 쉬고 올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비록 엄마가 조금 힘들어 보였지만 크게 내색을 하지 않아서 괜찮다고 생각했다.

직원들은 경험이 풍부하여 각자의 맡은 역할에서 충분히 잘 소화해 주고 있었다.

역시 후배 놈이 직원 뽑는 눈 하나는 끝내주는 것 같다.


하지만 자영업이라는 것이 언제 어디서 무슨 문제가 터질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7월을 일주일 앞두고 홀 직원이 수호를 부른다.

“사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사장들이 듣기 가장 무서운 말이 “사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이다.

이렇게 시작하는 대화는 대부분 퇴사를 통고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김승호 – 사장학개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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