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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세상은 알 수 없는 시간의 연속.

by 부자형아

“사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왜요, 불안하게! 무슨 일이에요?”

“저 그만둬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사정이 좀 생겨서 예전에 운영하던 가게를 다시 해야 할 것 같아요. 죄송해요.”

“아니 이제 두 달도 안 지났는데 그만둔다고요??”


이제 좀 자리를 잡아가나 싶었는데...

수호가 가장 믿었던 홀 직원이 이번 달까지만 하고 나가겠다고 한다.

같이 일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았지만 가장 믿고 맡길 수 있던 직원이었다.


홀 직원은 10년 동안 자영업을 운영했던 베테랑이었고, 가지고 있는 경험과 노하우를 수호에게 많이 알려주었다.

워낙 일도 잘하고 손도 빨라서 본인 일이 다 끝나면 주방일도 곧잘 도와주던 직원이었다.

그 덕에 수호 엄마도 힘들지 않게 일을 할 수가 있었다.


사실 주방 일손이 굉장히 부족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홀 직원 덕분에 사람을 더 구하지 않을 수 있었다.

수호가 주방보조를 뽑으려고 고심할 때 자기가 도와줄 테니 인건비 아끼자고까지 했던 사람이다.

배달을 시작하는 과정에서도 유경험자라 수호에게 과외하듯이 모든 것을 다 알려주었다.

배달 프로그램 사용법과 포장을 잘하는 법, 배달 기사 대응하는 방법, 배달 매출을 올리기 위한 조건 등등 본사에서 받은 교육보다 이 홀 직원에게 배운 것이 훨씬 더 많았다.

가장 중요했던 부분은 수호가 이 직원은 믿을 수 있었기에 낮에 잠시라도 집에서 쉬고 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직원이 이렇게 허무하게 갑자기 그만둔다고 하니...

아쉬운 건 둘째치고 당장 이것, 저것 고민이 되는 수호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마음이 떠난 직원은 쿨하게 보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수호였다.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주방일까지 척척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다시 뽑을 수 있을까?’

‘그만두기 전에 배달프로그램 확실히 알려달라 해야겠군’


머리가 깨지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수호는 컴퓨터 앞에 앉아 채용공고 사이트에 접속한다.

두 달도 되지 않아서 다시 공고문을 등록하는 것이다.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일하실 직원을 구합니다!>


수호는 세상의 어려움을 또 한 번 깨닫는다.

사람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옛날부터 사람을 써야 사업에 성공해야 한다고 했거늘...

이게 무슨 일인지 황당하고 어이가 없을 뿐이다.

하지만 수호는 고마운 마음으로 기분 좋게 보내주기로 했다.

오픈하는 과정에서 도움도 많이 받았고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성격 좋지 못한 사장들이었다면 욕을 한 바가지 했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채용공고를 올리자마자 10명 정도가 지원을 했고, 3명을 추려서 바로 면접을 보았다.

그래야 홀 직원이 그만두기 전에 인수인계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수호에게 인복은 있었나보다.

새로 뽑은 직원도 요식업계에서 오랜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미리 보건증까지 발급받아 놓은 준비된 직원이었다.

새로운 직원이 들어오자마자 홀 직원도 미안했는지 열심히 알려주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니 조금은 안심이 되는 수호였다.


수 많은 책에서 읽었던 구절.

사람을 이용해서 사업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말.

읽을 때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사람이라는 레버리지를 이용하려다가 되려 내가 레버리지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호는 이렇게 또 하나를 배워간다.


슬슬 출산 예정일(7월 21일)이 다가오고 있던 6월 마지막 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수호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시장을 들러 매장으로 출근한다.

직원들이 출근하면 바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세팅을 해놔야 하루가 편하다.

그렇게 식자재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은채에게 전화가 걸려 온다.


아침에 연락 올 일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수호는 이 전화가 어떤 전화일 것인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오빠!! 큰일 났어! 피가 많이 나... 어떻게?”

“일단 진정하고 내가 지금 바로 집으로 갈 테니까 옷 갈아입고 있어! 병원에 전화해 볼게.”


병원에서는 당장 빨리 오라고만 한다.

출산 예정일까지는 아직도 한 달 가까이 남은 상황.

둘째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이제 겨우 36주를 막 지나고 있을 때였다.

수호는 청천벽력과 같은 은채의 말에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집으로 달려간다.


가게 문도 잠그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이다.

바로 장모님께 연락을 드렸다.

딸내미를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장모님은 택시를 타고 바로 와주셨고, 아직 자고 있는 딸내미를 뒤로 한 채 은채와 함께 병원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하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산모와 태아 모두 건강하고 분만 준비를 하면 된다고...

수호는 안도의 한숨을 땅이 꺼질 듯이 쉰다.


아이를 가진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나혜는 걱정 한번을 안 시키고 엄마를 잘 도와주며 태어났다.

심지어 초산인데도 4시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와주어서 엄마의 고통을 덜어준 효녀였다.

그런데 요 둘째 아들내미 녀석은 태어날 때부터 엄마 아빠를 힘들게 하더니 세 살이 된 지금까지도 아주 쓰러질 때까지 돌아친다.

그래도 정말 사랑스러운 건 어쩔 수 없다.


2021년 6월 26일 오후 1시 43분.

수호 아들이 세상 밖으로 나온 시간이다.

36주 3일 만에 태어난 둘째 아이는 2.45kg으로 인큐베이터에 들어갈 뻔했지만 목소리가 우렁차고 건강해 보인다며 바로 엄마 품에 안길 수 있었다. 첫째 아이 출산 때는 너무 경황도 없고 처음이라 어쩔 줄 몰랐는데 둘째 아이는 현장의 감동을 모든 오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9개월 동안 엄마 뱃속에서 그렇게 발로 뻥뻥 차고, 돌아다니더니,

밖으로 나오자마자 아주 우렁차게 울던 모습이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매일 같이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는 수호였지만 이날만큼은 모든 것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한 달이나 빨리 세상 밖으로 나오다니...

정말 세상은 알 수 없는 시간의 연속이다.


코로나가 점점 심해지고 있는 상황이라 보호자 또한 입실이 제한되어 있었다.

면회는 가능했지만, 들어갈 때마다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한다.

자연분만을 한 은채는 회복이 빨라서 오지 말라고 했지만, 고생한 은채를 위해 병원에 있는 동안만큼은 매일매일 면회를 오겠다는 수호.

힘들었던 은채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이것뿐이었기 때문이다.


새벽에 일어나 시장을 다녀온 뒤 오전 중으로 모든 일을 끝낸다.

은채가 좋아하는 음식을 포장한 뒤 겨우겨우 점심시간에 맞춰 병원에 도착한다.

오후 4시가 되면 나혜가 다니는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딸내미를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나와 장모님께 맡긴 뒤 다시 가게로 달려간다.

퇴근하는 직원과 교대하기 위해서다.


저녁까지 사람을 고용하면 인건비 지출이 너무 크기 때문에 오후 6시부터 밤 10시까지는 수호가 매장을 지킨다.

오후 10시가 되어서야 문을 닫고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간다.


나혜는 목이 빠져라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고, 놀고 싶어했지만...

또다시 새벽에 출근해야 하기에 책 한 권을 읽어주며 억지로 재운다.

아이가 잠들면 다시 일어나 씻고 장부 정리를 해야 한다.


어느 덧 밤 12시.

4시간 후면 또 다시 시장에 가기 위해 일어나야 한다.

이렇게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일주일을 보내자, 순식간에 10kg이 빠졌다.

수호가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한주였지만 곧 아들 승원이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정신 줄 부여잡고 버텼다.


일주일 후, 승원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은채가 나를 보며 얘기한다.

“오빠, 병원에서는 잘 몰랐는데 지금 보니까 얼굴이 너무 안 좋은데? 요새 나 때문에 너무 무리해서 그런가 봐. 미안해”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 하고 병원을 나온 은채가 오히려 수호를 보더니 더 걱정이 되었나보다.

수호는 은채에게 고마웠지만, 사실 본인이 거울을 봐도 너무 안 좋아 보이긴 했다.


하지만 쉴 수가 없다.

수호가 해야 하는 일을 누군가가 대신해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새벽에 장을 보고 수많은 식자재를 옮긴 뒤 바로바로 조리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을 누군가 대신해 줄 수는 없었다.


아무리 힘들고 지치더라도 무조건 해야만 하는, 수호가 선택한 자영업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직원을 채용하고 물건을 만들어 손님에게 팔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에 불과했다.


그저 책상 앞에서 듣고, 보고, 읽던 그런 자영업과는 너무나도 다른,내 몸을 영혼까지 갈아 넣어야만 유지하고 돈을 벌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자영업이었던 것이다.


수호는 얼마 전 북토크를 통해 만난 고명환 작가님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장사가 잘 되고 돈이 벌리는 것만 상상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고통... 시련... 이런 것들을 알아내고 상상할 수 있어야 해요. 돼지기름 때문에 하수구가 막혀 밤새 파내야 하고, 손님이 토한 것을 직접 손으로 치워야 하는 그런 일들도 상상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영업의 세계는 알 수 없는 시간의 연속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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