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과의 만남, 본사 조리장의 교육, 손님들과의 대화.
모든 것이 처음이고 설레는 수호.
가오픈 기간은 레시피 교육과 매장 운영을 배우는 것이 주목적이다.
새로 뽑은 직원들과 수호, 수호의 엄마까지 각자 맡은 위치에서 교육을 받기 시작한다.
수호 엄마와 주방 직원은 레시피 교육 및 주방 시스템을, 홀 직원과 수호는 매장관리 및 손님 응대 기술을 배운다.
반찬가게에서 가장 중요한 레시피 교육은 엄마가 배우고 있으니, 수호는 주변 아파트와 상점들 홍보에 더욱 힘을 쏟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 뒤 큰 화근이 되고 만다.
수호는 그것도 모른 채 홍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전단지를 챙겼다.
주변 상점에 먼저 인사를 하러 다닌다.
장사의 기본은 주변 상인과 친해져야 한다는 내용을 어느 책에서 읽었기 때문이다.
레시피 교육을 하면서 만든 반찬을 몇 가지 챙겨 전단지와 함께 방문했다.
첫인상이 중요하듯이 만나는 사장님들께 공손하게 인사하며 많이 배우겠다고 연신 고개를 숙이는 수호.
챙겨온 전단지와 반찬을 드리니 한껏 반겨주신다.
떡볶이집, 정육점, 편의점, 빵집, 카페, 학원, 병원, 부동산, 약국, 떡집 등등 족히 50개 곳 정도를 방문한 것 같다.
방문하지 못한 점포가 딱 한 군데 있는데 바로 다른 프랜차이즈 반찬가게.
이 동네 유일하게 있던 반찬가게였는데 수호가 새롭게 들어왔으니 절대 반겨줄 리가 없다.
이제는 주변 아파트에 홍보할 차례다.
제대로 매장을 알리기 위해 빳빳하게 펴진 유니폼을 입고 출발하는 수호.
배달까지 생각하여 반경 500m 안에 있는 모든 단지에 전단지를 부착할 예정이다.
전단지를 두둑이 들고 약국으로 향한다.
그리고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선물할 박카스 10박스를 구매한 뒤 가장 가까운 아파트부터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입주민인 줄 알고 환대를 해준다.
하지만 홍보를 하러 왔다는 걸 알고는 금세 반응이 뜨뜻미지근해진다.
“안녕하세요! 여기 떡볶이집 옆에 새로 개업하는 반찬가게에서 왔습니다! 여기 박카스도 하나 드릴게요! 혹시 전단지 좀 두고 가도 될까요?”
“전단지를 왜 두고 가세요??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 한 장씩만 부착하세요.”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가서 제가 부착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기요? 어디 가세요? 결제를 하고 가셔야죠.”
“네? 결제요? 무슨 결제요?”
“전단지 같은 홍보물을 부착하시려면 광고비 5만 원 결제하셔야 해요.”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했던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다.
수호는 아파트 전단지를 돈 내고 붙이는 것인 줄 꿈에도 몰랐다.
각 단지마다 5만 원씩 10곳이면 50만 원이다...
박카스까지 하면 55만 원을 지출해야 하는 상황.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가장 가까운 단지 다섯 군데만 홍보하기로 결정한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문을 열 때는 환대를 해주더니, 홍보 얘기를 하면 반응이 차갑게 식는다.
수호도 박카스를 꺼내지 않는다.
어차피 돈을 지불해야 하는데 무슨 박카스까지...
그나마 세대수가 작은 단지 한 곳은 3만 원이라 박카스를 드렸다.
다섯 군데를 다녀온 수호는 아파트 홍보를 그만하기로 했다.
수호는 이날 크게 깨달았다.
‘전단지도 다 돈을 받고 부착해야 하는 거였구나...’
‘나는 세상 물정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였네’
남은 박카스 8박스는 직원들과 함께 두 달 동안 마셨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드디어 대망의 정식 오픈!
본사 조리장의 조언에 따라 오픈 2주 동안 직원을 한 명 더 구했다.
원래는 은채가 도와줄 예정이었지만 당분간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상황이라 급하게 사람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대출에 힘써준 친구 보나가 자기 엄마를 추천해 줬다.
친구 어머니는 산전수전 다 겪었다며 흔쾌히 도와주시기로 하였다.
본사 조리장을 제외하면 우리 엄마, 친구 어머니, 주방 직원, 홀 직원, 수호 이렇게 5명이 첫 창단 멤버인 셈이다.
하지만 3개월 후...
이 멤버 중에 남아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밖에 없다는 것을 이때는 알지 못한다.
오픈 첫날 매출액은 298만 원.
수호는 이날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화장실을 갈 수 없을 정도로 바쁘고 정신없었다.
오픈 기념으로 라면 증정 이벤트까지 진행하면서 손님들이 예상보다 훨씬 많이 방문했기 때문이다.
이 매출액이 얼마나 잘 나온 것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본사 조리장이 최근 2년 동안 오픈한 매장 중에서 상위 5% 안에 들어간다고 말해 주었을 때 그제야 정말 많이 팔았다는 것을 조금 알 수 있었다.
오픈하고 한 달 동안 눈코 뜰 새 없을 정도로 바빴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장을 보고, 하루 종일 매장관리와 손님 응대를 배웠으며, 직원들이 퇴근한 뒤에도 밤 10시까지 꿋꿋하게 매장을 지키다 퇴근했다.
퇴근 후 집에 가면 은채와 나혜가 곤히 자고 있었다.
다행히 은채는 몸 상태가 많이 좋아졌고, 병가와 휴가를 사용하며 출산 때까지 쉬기로 결정했다.
누우면 바로 곯아떨어질 정도로 힘들었지만, 수호는 지금처럼 장사만 잘된다면 우리 식구들이 돈 걱정 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5월의 매출과 순이익을 보니 직장 생활에서는 절대 만져 볼 수 없는 돈이 들어왔다.
물론 오픈빨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수호는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는 얼마 전과 비슷한 생각을 한다.
‘세상 물정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진작에 직장생활 때려치우고 장사나 할 걸...’
동대문에서 빨리 나오지 못한 걸 후회하는 수호.
이제 막 자영업을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된 5월의 끝자락.
첫 사장으로 임명된 수호는 희망 가득 찬 미래를 생각해본다.
하지만 수호의 바람대로 모든 것이 흘러갔다면...
이 이야기는 아마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