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이 맞았다.
아니, 예상보다 더 주방장을 구하기 어려웠다.
급여가 조금 짠 편이긴 했지만, 이렇게 한 명도 지원을 안하다니...
주방장을 새로 고용하게 되면 4대 보험과 퇴직금, 소소한 보너스까지, 인건비 부분에서 추가적인 지출이 발생한다.
거기에 9월은 추석도 있고, 조금 더 지나면 연말연시도 다가온다.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다.
주변 사장님들에게 들어보니 원래 주방 쪽 사람을 구하는 것이 훨씬 힘들다고 한다.
다친 엄마의 일하는 모습을 보는 수호는 점점 더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래서 다시 곰곰이 생각을 한다.
월급을 올릴 것인지, 아니면 수호 본인이 레시피 교육을 받고 주방장이 될 것인지.
사실 수호가 주방으로 들어가는 편이 모든 면에서 이득이었지만 문제는 체력이었다.
자영업에서 사장이라는 위치는 생각보다 해야 할 일이 굉장히 많은 자리였다.
분명 창업을 준비할 때는 관리만 할 예정이었는데, 막상 부딪혀 보니 사장이라는 사람은 밑바닥부터 모든 일을 다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수호는 본인이 주방장을 할지 말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자기 계발 서적, 성공담이 적힌 책, 창업 관련 서적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것이 있다.
‘내가 일하지 않게 하라’
‘레버리지를 활용하라’
‘사장은 부리는 사람이지 일하는 사람은 아니다’
‘전문가를 고용하여 돈을 벌어라’
‘일하지 말고 관리자가 되어라’
3개월 동안 사장을 경험해 본 수호는 과연 이 말들이 정말 현실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을 자세히 보면 또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맞고 틀리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웃긴 건, 아직도 매일매일 장사와 성공에 대한 책을 틈나는 대로 읽고 있다는 것이다.
수호는 도대체 뭘 잘못한 건지 알 수가 없다.
분명 최선을 다하고 있고, 책에서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인데...
뭐 때문에 이렇게 힘든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내가 일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레버리지를 이용하려다 오히려 레버리지를 당하는 중이다’
‘사장은 부리기도 잘해야 하고 일도 많이 해야 한다’
‘전문가를 고용하면 내 몫은 없다’
‘사장은 관리자이기 전에 노동자이다’
지금 수호의 시선에서 이렇다.
책에서 나온 말처럼 되려면 더 갈아 넣어야 하는 것인가?
그러다 본인이 먼저 쓰러질 것 같았다.
지금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장을 보고 오전에 일을 마친 뒤 잠시 쉬러 집으로 들어간다.
오후 4시가 되면 홀 직원과 교대하기 위해 빨리 움직여야 한다.
홀 직원도 유치원에 아이를 데리러 가야하기 때문에 수호가 늦으면 곤란해진다.
그렇게 교대를 한 뒤 가게 문을 닫을 때까지 수호가 매장을 지킨다.
신기하게도 매장에서는 매일같이 할 일이 생긴다.
만약 수호가 주방장이 된다면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 18시간을 일해야 한다.
집에 와서 씻고 장부 정리하는 시간까지 더하면...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수호의 기다림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던 바로 그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요”
“채용공고 보고 전화 드렸는데요, 혹시 사람 뽑으셨나요?”
“몇 분 지원해 주셨는데 아직 면접은 안 봤습니다”
“그럼 혹시 면접 볼 수 있을까요? 제가 컴퓨터를 잘 다룰 줄 몰라서 신청서를 못 넣었어요.”
“네네 그러시죠.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
“아 그게... 채용 공고에 있는 자격보다 조금 많은데 괜찮을까요? 주방 경력은 정말 많습니다”
“네 괜찮습니다. 경험 많으시면 좋죠.”
“63살입니다. 맡겨만 주시면 일은 정말 잘할 수 있습니다”
수호는 채용공고에 50세까지만 모집한다고 작성했다.
엄마처럼 분명 힘들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접 전화를 한 모양이다.
순간 머릿속을 열심히 굴려본다.
나름 있어 보이려고 지원자도 몇 명 있다고 얘기했는데...
63살이라, 수호 엄마랑 동갑이다.
괜찮을까?
전화를 끊으면 이 사람마저 못 구할 것 같았다.
일단 내일 면접을 보자고 얘기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말이다.
다음날 면접을 보기 전, 주방보조 직원에게 이야기했다.
실장님 대신 새로운 주방장을 뽑을 것이라고.
그러자 주방보조 직원은 본인이 주방장을 해보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실 프랜차이즈 반찬가게는 주방장과 주방보조의 경계가 거의 없다.
어차피 레시피가 정해져 있고 그걸 그대로 따라 하면 되기 때문이다.
수호 엄마와 주방보조 직원도 파트만 달랐지 둘 다 주방장이었다고 할 수 있는 그런 구조다.
수호는 조금이라도 젊은 사람이 주방장을 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되어,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월급은 조금 올려주면서 말이다.
“안녕하세요! 오늘 면접 보기로 한 사람입니다”
“네네. 안녕하세요. 연세가 좀 있으시던데 반찬가게 일이 엄청 힘들어요. 괜찮으시겠어요?”
“제가 한정식 집을 오래 운영해 봤고, 족발집, 장어집, 일식집에서도 일을 많이 했어요. 20살부터 지금까지 주방에서만 일을 해와서 정말 잘할 수 있습니다. 걱정 마세요!”
“근데 경력이 이렇게 많으신데 왜 더 좋은데 안 가시고 여기 오셨어요?”
“제가 나이가 많다 보니까 뽑아주는 곳이 거의 없어요.”
“아 그렇군요. 죄송한데 저희가 주방장 말고 주방보조를 뽑기로 했어요. 보조하시던 분이 주방장을 하겠다고 하셔서. 주방보조라 월급이 조금 줄어들 텐데 그래도 생각 있으신가요?”
“네네!! 당연합니다! 주방보조라도 괜찮아요! 제가 일을 꼭 해야만 하거든요.”
오케이!!
이 정도면 성공이다.
주방보조 직원이 주방장으로, 새로운 직원이 주방보조로, 수호는 관리자로, 수호 엄마는 집으로.
수호가 생각했던 최상의 시나리오로 흘러가고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주방 일을 인수인계해 주고 엄마를 이곳에서 내보내는 것이 중요했다.
더 이상 엄마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새로운 주방보조 직원은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인수인계할 것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반대로 수호가 더 배우는 느낌이었다.
경험이 정말 많아 보였고, 주방일에 관해서는 척척박사였다.
그렇게 수호 엄마는 광복절 날 반찬가게에서 퇴사 처리가 되었다.
광복절 특사가 된 것처럼 말이다.
아마 속으로 만세를 외치셨을 것이다.
3개월 동안 정말 힘들었지만, 아들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을 생각을 하니 너무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엄마가 반찬가게를 떠나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지는 수호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