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구마구 Nov 26. 2023

헤어질결심과 Barbie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한국사람이라면 자고로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라는 말을 들어보았겠지요.



'아니 도대체 왜 개떡같이 말하는 거야'

라는 의문이 들어도 절대 티를 내면 안 됩니다.

개떡에서 찰떡을 만들어내야만 하니까요.



우리는 어려서부터

찰떡같이 알아듣는 법을 배우며 자랍니다.

어머니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셔도

적어도 다섯 번은 권해야 하고요.

아버지가 한사코 용돈을 거절하셔도

세 번은 권해야 예의인 법이죠.



초코파이의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문구가 보여주는 정(精)의 문화.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아나요..'라는

의문이 들어도 우리는 알아야만 합니다.

"넌 그걸 꼭 말로 해야만 아니?"라는 말을

듣기 싫다면 말입니다.



한국은 고맥락 문화(High-Context)라고 합니다.

직접적인 말보다는 문맥과 맥락이 중요한,

비언어적인 단서에서 진짜 뜻을 캐치해야만 하죠.



하루하루가 탐정 같은 삶이랄까요.



우리는 이것을 "눈치"라고 부릅니다.

"너는 눈치가 없니?",

"쟤는 눈치가 참 빨라"

눈치는 영어로 직역할 단어가 없습니다.

한국 고유의 것이랍니다.



"음~ 나는 그거에 대해서 그냥 뭐 그렇다고 생각해"

"아니, 나는 그게 그렇게 그거한 일인지 잘 모르겠어"

이런 문장들에서도 상대의 의중을 파악해야만 합니다.

상대의 눈빛과 고갯짓을 아~주 잘 보아야만 하죠.




미국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았습니다.

'헤어질 결심'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나

어두운 분위기의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시도해 볼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비행기는 너무 지루했고

내장되어 있는 영화 목록을 세 번이나 뒤졌지만

볼만한 영화는 그것뿐이었습니다.



엔딩크레딧을 보며,

‘와 잘 만들었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줄거리에 큰 반전이 있지는 않지만

촘촘한 짜임과 지루할 틈 없는 진행,

그리고 꽁꽁 숨겨놓은 단서들.



무엇보다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 없이

사랑을 표현하는 영화였습니다.



배우들은 눈빛으로, 몸짓으로 사랑을 말했고,

핵심을 겉도는 대사만 존재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랑했음을

저뿐만 아니라 모두가 느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저 대사는, 저 장치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그래서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일까.



애써 포장해 놓은 것들을

한 겹씩 풀어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포장지를 오른쪽으로 여느냐,

왼쪽으로 여느냐, 아니면 가위로 자르느냐가

온전히 저에게 달려있는 그런 영화였죠.




그리고 저는 바비를 미국의 영화관에서 보았습니다.

북미를 강타한 바로 그 영화!

그러나 한국에선 그리 흥행하지 못했지요.



아직도 바비를 보지 않았냐며 놀라던 친구,

본인은 바비를 6번째 본다는 친구.

이 영화도 도무지 제 스타일은 아닐 것 같았지만

(사실 제 영화 취향은 저도 잘 모릅니다ㅎㅎ)



미국에 왔으니 이곳의 대세에 따라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얼떨결에 바비를 보았습니다.



보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영화가 이렇게 직설적일 수 있을까?'



영어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었음에도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미국의 코미디 코드는 파악하지 못해 친구들이 웃을 때 많이 외로웠습니다. 나도 같이 웃자^^)


 

바비는 바비대로, 켄은 켄대로 충분하다는 메시지를 러닝타임 내내 줄곧 이야기합니다.




아마 헤어질 결심을 영어로 보았다면

저는 도무지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마 우중충한 영화의 배경을 멍하니 바라보며 '저 사람들이 사랑한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걸까.'쯤의 생각을 했겠지요.



그리고 헤어질 결심은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이 자막을 통해 보아도 100% 느낄 수 없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마침내 / 붕괴 / 단일한 등의 단어가 주는 미묘함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단어 하나하나, 눈짓 하나하나가 모여 하나의 영화를 구성합니다.



해석은 관객의 몫이며 무엇을 느끼느냐도 살아온 삶에따라, 가진 생각에 따라 다르겠지요.




어떤 것이 더 좋았느냐고 묻는다면 헤어질 결심이 더 좋았습니다.



여기서 또다시 저는 한국인임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아! 나는 돌려돌려 말하기의 민족이구나!



미묘한 감정선을 따라가는 것이 무척이나 재밌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찾기 쉬운 곳에 숨겨놓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찾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영화는 어렵지 않은 곳에 많은 의미를 숨겨두고, 관객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 같지만 사실 친절하게 단서를 알려주었습니다.



"여기를 봐!! 내가 단서를 숨겨놨어!"라고 말하는 느낌.

하지만 어쩐지 주체적으로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마치 탐정이 된듯한 느낌도 들었지요.




두 영화를 비슷한 시기에 보고 저는 ‘이런 것도 문화의 차이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직설적인 것을 꺼려하고, 미국은 돌려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문화차이가 영화에서도 나타나는 게 아닐까.



한국이 미국보다 직설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외모에 관해 직접적으로 평가를 한다든가, 사생활에 대해 거침없이 의견을 말한다든가 하는 면에서 말입니다.



"살이 좀 쪘네", "얼굴이 많이 상했다", "취직을 아직도 못해서 어떡하니"

이런 말들을 거침없이 내뱉는 분들도 있죠.



그러나 이런 굳이 안 해도 되는 말들을 하는 것은 직설이 아니라 무례입니다.

직설과 무례는 굉장히 다르지요.



한국의 고맥락문화라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우와 네가 시킨 음식이 내 것 보다 맛있어 보여"라는 말에 "한입 먹을래?라고 대답하는 센스~



반면 제 미국 친구들은

"응 진짜 맛있어~!"라고 대답하곤 하죠.



한입 먹으려면 "Can I try your food?"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응 당연하지!!"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미국과 한국의 대화방식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무례한 것과는 엄연히 다르지요.



어떤 것이 더 낫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냥 다른 것이죠.



센스를 장착하고 살아야 하는 한국에서의 삶은 어쩐지재미있기도 합니다.

직설적인 표현을 하고, 들어야 하는 미국에서의 삶은 어쩐지 어렵기도 하고요.



초코파이 송을 개사하며 불러야 하는 미국 생활입니다.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





이전 01화 어쩌다 미국에 왔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