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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구마구 Feb 22. 2024

뉴욕, 내 인생에 남을 끼워 넣지 않을 용기를 주는 곳

전 지구를 아우르는 다양성

어느덧 뉴욕을 여행한 지도 두 달이 지났습니다.

화려함에 뒤섞여 뉴욕 거리를 활보하던 때가 고작 두 달 전이라니. 사실 믿기지 않는데요.

뉴욕에 간 적이 없는 것만 같은 기분입니다.


한국인만 있는 한국에 22년을 산 덕분(?)에 제 주변을 감싼 사람들이 온통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그렇게 놀랍지도 않습니다. 뉴욕에 있을 때는 한국에 오면 굉장히 낯설 줄 알았는데, 미국에서 5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모두가 다 똑같은 이곳에 금세 적응해 버렸습니다.



센트럴파크에서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

미국은 한국과는 많은 것이 달랐습니다. 그중 가장 다른 게 아마 다양성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양한 생김새, 머리 색, 체형, 성향이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 같은 거리를 걷는 것을 볼 때면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뉴욕이 가장 그러했고요.


다른 도시들은 백인들이 주류 문화를 이루고, 흑인, 아시안, 히스패닉들이 뒤따르는 느낌이라면 뉴욕은 그냥 다양했습니다. 


어느 정도였냐면 특정한 나라라고 칭할 수 없는 제3국에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마치 지구 밖 어떤 미지의 공간에 지구인들이 모인 느낌이었달까요?


다양함을 보고 있으면 저는 왠지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아니 인종이 좀 다양할 뿐인데 뭘 그리 과한 평을 하냐고요? 뉴욕이 보여주는 다양성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뉴욕의 정체성이자, 세계 1위 도시로 불리는 이유가 모두 여기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귀여운 모자를 쓴 가족

 예를 들어 우리가 타인과 함께 무지개를 만두는 과정이 인생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각자의 색을 찾는 동시에 타인과의 조화도 생각해야 하죠. 우리가 다 같은 빨간색이라는 목표를 두고 달려간다면 어떨까요?


'나는 쟤보다 빨갛지 못해. 쟤를 앞서려면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하지?'
'아니 근데 내가 대체 왜 빨간색이 되어야 하지?'등의 생각이 들기 마련이겠죠.


내가 왜 그 목표를 향해 달려야 하는지도 모른 채, 남들보다 더 붉어지기 위해, 더 빛나기 위해 경쟁하는 것은 필연적인 과정일 것입니다.


예뻤던 가족의 모습

그런데, 우리가 빨강부터 보라까지 이어지는 넓은 스펙트럼 속에, 특정할 수 없는 나만의 색을 찾아간다면 어떨까요? '저 친구보다 앞서고 싶다.'가 아니라 무지개의 일원이 되기 위해 나만의 색을 내려 노력할 수 있겠죠. 그래야 사회 속에서의 내가 나로서의 가치를 가지니까요.


이런 다양성을 무지개 같은 상징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서 보게 되면 어쩐지 벅차오릅니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아도 이 사회에 녹아들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약간은 허황된 것 같은 나의 꿈을 담담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20대 중반에 취업하고 30대 초반에 결혼하지 않아도 될 것만 같은 느낌은 뉴욕이기에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막상 뉴욕에 살아보면 그렇지는 않겠죠. 화려함 뒤에는 너무나 비싼 물가와, 어려운 취업과 치열한 경쟁이 있겠죠. 여행자의 시선과 거주자의 시선은 너무나 다르니까요. 뉴욕의 취준생이라고 해서 한국의 취준생보다 특별한 건 없겠죠. 어디서나 삶의 무게를 견디는 건 쉽지 않으니까요.


공원에서 무작정 노는 아이들

다만 완전히 다른 문화와 생활권에서 살아왔던 사람들과 부대끼고, 다채로운 삶을 마주하며 이런 삶도, 저런 삶도 있다는 걸 보는 것 만으로 나의 선택지가 넓어지고, 삶을 돌아볼 기회도 주어집니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나는 잘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뉴욕에선 '나는 내 삶을 잘 이끌고 있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신기하게도 여행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너무 개성이 없나, 너무 무난한가?'라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 돌아오니 놀랍게도 그냥 다시 한국인이 되었습니다. 쉬면 불안하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고, 그렇지만 뭘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는 그런 상태로 아주 재빠르게도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목표라고는 '남들만큼 하자'라는 게 전부였던 제가 '좋아하는 게 뭘까'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습니다. 제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뒤돌아보며 나름 잘 살아왔다는 확신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장점들을 들여다보고, 이걸 더 살리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지요. 취업에는 도움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잘만 살리면 나만의 무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믿음도 갖게 되었습니다.


글쎄요. 저는 여전히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직업을 정하는 건 여전히 너무나 어렵습니다. 뉴욕의 다양성을 보고 왔다고 해서 갑자기 인생의 걱정이 싹 사라지지도, 멘탈이 자유로워지지도,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것도 아닙니다.


내가 되자. 내 인생에 다른 사람을 대입해 보았을 때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 삶을 살자


정도의 자신감을 얻은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 무진장 노력해야겠지요. 다만 남의 삶과의 비교는 조금 덜 할 것 같습니다. 주변이 잘되면 질투가 아니라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여정이 궁금하고 기대되고 조금은 무섭기도 합니다. 대학 전공, 복수전공과 전혀 연관 없는 일들을 하고 싶은 것 같거든요. 남들보다는 조금 느리겠지만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던 그 시간과 경험들은 생각지도 못할 때에 저를 도와줄 것이라 믿습니다.


결국 나는 나고, 너는 너다. 가 가장 큰 배움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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