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추석?
크리스마스를 뉴욕에서 보낸다는 기대감에 설렘으로 마음이 가득 찼습니다. 반짝반짝 예쁜 조명과 화려한 트리들을 볼 생각에 잔뜩 신이 났죠. 맛있는 음식들도 먹고, 예쁜 카페도 가는, 그런 크리스마스가 제 눈앞에 가득 펼쳐졌답니다.
예상대로 뉴욕은 너무 예뻤습니다. 크리스마스 당일에만 예쁜 게 아니라 12월 전체가 반짝였죠. 길거리의 많은 사람들의 눈에는 불빛들이 반짝였고, 어딜 가나 연말 특유의 분위기가 뉴욕 전체를 덮었습니다.
자도 크리스마스 전날까지 열심히 돌아다녔답니다. 크리스마스 마켓도 가고, 평소 못 가봤던 레스토랑들도 가면서 눈이 휘둥그레 커진 채 크리스마스만을 고대했답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 당일이 되고, 저는 결국 크리스마스를 뉴욕의 한 중식집에서 시작했습니다. 구글맵에 찜해놓은 수많은 하트들을 뒤로하고 어딘지도 몰랐던 중식집에 갔습니다.
왜냐고요? 전부 문을 닫았더라고요. 먹고 싶었던 버거집도, 피자집도, 레스토랑도 전부 문을 닫아버려 저희는 문이 열린 중식집에 홀린 듯 들어갈 수밖에 없었답니다.
미국의 크리스마스는 한국과 다른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마치 한국의 명절같이 식당도 문을 잘 열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정말 모든 레스토랑이 문을 닫을 줄은 몰랐습니다. 일부 예약 해야만 갈 수 있는 식당들을 제외하고는 여길가도, 저길 가도 싸늘하게 불이 꺼져 있는 식당을 마주할 뿐이었죠.
그렇게 터덜터덜 정녕 굶어야 하나 싶을 때 저희를 구원해 준 단 한 곳의 식당이 바로 중식당이었습니다. 그곳으로 들어가 굶주린 배를 채우는 게 크리스마스의 시작이었죠. 굉장히 낭만적인 크리스마스를 꿈꿨지만 전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음식은 무척이나 맛있었답니다.
미국의 크리스마스는 마치 한국의 추석과 설날 당일과 같이 정말 대부분 문을 닫고 가족과 함께 보내는 듯했습니다. 저희 추측으로는 중국분들이 운영하셨던 중식집만 문을 열었던 건 중국 또한 한국처럼 크리스마스의 문화가 그리 깊지 않아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한국에서도 크리스마스를 즐기긴 하지만 확실히 명절의 느낌은 아니니까요. 한국의 크리스마스는 연인들의 기념일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마치 밸런타인데이처럼요.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고, 화려한 밤거리를 구경하는 그런 날이다 보니, 식당은 문을 닫기는커녕 오히려 크리스마스 전용 메뉴를 만드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합니다. 한국과 미국의 크리스마스는 어찌 보면 정말 비슷하지만, 참 많이 다른 것 같네요.
저희는 그렇게 중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야외를 좀 둘러보았습니다. 제가 너무나 가보고 싶었던 하이라인 파크와 아주 유명하다던 베슬에도 가보았습니다. 춥고 지친 저희는 갈 곳을 찾아 헤맸지만 결국 도착한 곳은 스타벅스였고, 아주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겨우 숨을 돌렸답니다.
구글맵을 믿고 첼시마켓에 갔다가 호기롭게 실패한 이후에는 그냥 숙소로 돌아와 푹 쉬었습니다. 무려 저녁도 먹지 않고 말입니다. 그렇게 저희의 크리스마스는 중식당에서 시작해서 뉴욕의 거리를 걸은 후, 배고픈 배를 달래려 유튜브로 먹방을 보며 침대에 누워 마무리 지었습니다.
‘이게 크리스마스 인가..?’라는 허탈함과 ‘레스토랑이라도 미리 예약할 걸’이라는 후회가 동시에 밀려왔지만 생각해 보면 어찌 여행이 완벽할 수 있겠어요. 덕분에 미드에서 정말 많이 보았던 미국식 중식도 먹어보고, 수없이 많은 사람에 치이며 거리를 걸어볼 수도 있었고요, 그동안 많이 먹은 것을 반성하며 디톡스데이도 가져보았지요.
뉴욕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12월 내내 더 잘 즐길 수 있고, 당일은 푹 쉬는 날 같습니다. 그것도 모른 채 뛰어들었던 저희는 큰 코를 다친 거죠.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니 불만을 가질 순 없었습니다.
어째 여행을 하면 할수록 기대했던 것에서는 살짝 실망하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에서 여행의 의미를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것이 여행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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