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Right Then, Wrong Now

by 라일

사람은 살면서 꿈이 바뀐다.


어릴적 앨범을 보면 두 손에 늘 스케치북과 크레파스가 들려있었다. 4B 연필을 손에 쥐고 나의 상상 속 세계를 흰 도화지에 담아낼 때면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그 감정이 아직 생생하다. 초등학교 4학년. 화가는 미래가 없다며 공부에 힘쓰라 엄마는 말했다. 나는 엄마를 사랑했고 엄마의 말은 늘 정답이라 믿었기에 꿈을 포기했다. 지금 돌아보면 아무런 저항도 없이 무기력하게 꿈을 뺐았겼다는 슬픔, 작은 절망감이 어린 내 가슴 속에 묻혀있었던 것 같다.


그때 나의 꿈은 화가였다.


시간이 흘러 중학교 2학년. 국어 수행평가로 3분 스피치 과제가 주어졌다. 우연히 본 잡지에서 ’종군위안부‘에 대한 글이 눈에 띄었다. 충격을 받았다. 그 길로 생존자 할머니들이 계신 ‘나눔의 집’을 방문했다. 집에 돌아와 3분 스피치 원고를 썼다. 같은 반 친구들한테 이 일을 알려주고 싶었다. 알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내용을 적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 진심을 담은 마지막 몇 마디를 뱉었던 순간 그 감정이 기억난다. 틀린 걸 틀렸다고 말하지 못하고 잘못된 걸 바로 잡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현재가 슬펐다. 우리 나라의 힘이 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의를 바로 세울 만큼 한국이 국제 사회에서 힘을 가질 수있도록 나도 돕고 싶다고 마음 먹었다.


그때 나의 꿈은 외교관이었다.


나에게 가족이란 무거운 단어다. 고등학교 3학년. 꿈이란 아이는 내 인생에서 희미해졌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영어를 놓치지 않고 싶었다. 그리고 영어로 전공 수업을 하는 국제학과로 진학했다. 하루는 수업 중 UN 안보리 회의 영상을 시청하게 되었다. 오준 UN 대사의 말씀이 내 마음을 흔들어 깨웠다. 그 회의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다. 오준 대사는 전세계 사람들에게 그저 ’이슈’로 치부되는 ‘북한 인권’이, 우리조차 무감각해진 북한 인권이란 안건이 '우리 모두'의 비극이자 아픔이란 사실을 담담히 전했다. 그분의 말에 담긴 진심이 나에게 크게 다가왔다. 그때 국제 무대에서 일하고 싶다는 막연한 바램을 갖게 되었다.


대학교 4학년. 난 어떤 꿈을 가져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다 우연히 폴란드에서 열리는 세계 청년 대회(WYD)라는 가톨릭 행사에 통역 봉사자로 참여하게 되었고 교황님 말씀을 동시통역할 기회가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본 통역이었고, 그 순간 처음으로 내가 살아 숨쉰다는 기분이 들었다. 내 존재가 반짝 빛나는 느낌이었다.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소중한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벅차게 행복했다. 그 길로 꿈을 정했다.


그때 나의 꿈은 통번역사였다.


2024년,

나는 또 다른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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