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 비평 8. 『힘내라 달팽이!』 & 『말 잘 듣는 아이』
1. 다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힘내라 달팽이!』
GAI(Generative Artificial Intelligence, 생성형 인공지능)가 생성하는 문학 텍스트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그 빅데이터는 인류의 언어 예술 자산이다.
그런데 윤송이 엔씨소프트 최고전략책임자가
「AI와 가장 인간적인 미래」(《과학잡지 에피》, 2023년 가을)에서 말한 것처럼
인공지능 기술의 개발과 진화가 지금처럼 계속 가속화되면
머지않아 인터넷에는 인간이 만든 콘텐츠보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만든 정보와 콘텐츠가 더 많아질 것이다.
그러므로 인공지능이 그림도 그리고 시도 쓰는 시대,
인간 지능은 다시 한번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맞을 상황에 직면했다.
따라서 인공지능 활용 방법뿐 아니라,
바로 지금부터 인류가 인공지능에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제공할지에 대한 논의도 시작되어야겠다.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수 있는 직업군으로 판사가 언급되고 있지만,
『나는 괜찮은 AI입니다』(오승현, ㈜자음과모음, 2022)에는
인공지능 판사의 객관성이 잘못된 판결을 되풀이할 수도 있다고 나오는데,
인공지능은 기존 판례를 모아 놓은 데이터를 학습하므로
새로운 판례를 만들어 낼 수 없고,
기존 판례를 답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회가 발전하고 인권 의식이 높아지면
그에 따라 판결 내용도 달라져야 하지만,
인공지능은 사회의 가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문학 작품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
이승우 기자가 오픈AI 챗GPT에게
‘커피’를 주제로 윤동주 스타일과
김소월 스타일의 시를 써 달라고 해서 얻은
다음 결과(한국경제, 2023/01/22)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GAI가 생성한 시는
빅데이터에 의존한 출력물이므로 패턴이 비슷하다.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지,
윤동주 스타일과 김소월 스타일이 잘 변별되는지를 별개 문제로 미뤄 두고,
①~⑤와 ①′~⑤′를 견주어 보면
이보다 세련되게 출력되더라도
데이터 기반 결과물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커피(윤동주 스타일)
오픈AI 챗GPT
커피의 향기가 가득한 카페
내가 앉아 있는 이 테이블 위
나의 시간을 멈추고 있다
어떤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커피의 미스터리를 즐긴다
커피는 내 삶의 발명품
①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내 고민을 이해해주는 ② 나의 친구
③ 커피와 함께라면 난 힘이 난다.
커피는 내 가슴을 일으키고
④ 내 마음을 위로해준다
커피를 마시며 내일을 바라보며 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커피(김소월 스타일)
오픈AI 챗GPT
커피와 함께하며 생각하는 길
지나간 시절을 떠올리며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아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길
커피는 ①′ 나의 이야기를 이어주며
우울한 날을 걷히는 따뜻한 밝은 빛
④′ 나의 마음을 어둠에서 구해주며
세상을 보는 눈을 밝혀준다
③′ 커피와 함께하면 힘이 생기고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아
⑤′ 새로운 길을 찾아갈 수 있다
커피는 ②′ 나의 친구, 나의 힘
이제 오픈AI 챗GPT가 각각
윤동주 스타일과 김소월 스타일로 쓴 시 「커피」 두 편은
GAI에 데이터가 되었다.
여기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지점은
‘챗GPT 스타일’을 창출할 수 있는가이다.
동시 장르에서도 판례처럼
인공지능 출력물이 다시 데이터로 입력되는 현상으로 말미암아,
인공지능이 생성해 내는 동시는
자기 복제를 거듭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보여 주기 어려울 것이다.
동시는
‘어린이만’ 읽는 장르가 아니라,
1차 독자인 ‘어린이부터’ 전 세대를 아울러 읽는 장르이다.
그리고 이제 동시인은
‘GAI까지 독자로 삼은’ 창작을 지향해야겠다.
『나는 괜찮은 AI입니다』에서 언급한 것처럼
앞으로 “인간이 무엇을 가르치는지가
인공지능에게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GAI 시대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루어 낼 만한 동시 작품을 찾아보기로 한다.
2. 시인의 생각, 독자에게 낯설어 즐거운
- 「비 간다」(박승우, 『힘내라 달팽이!』, 상상, 2022)
1672년 뉴턴은 빛이 입자라고 주장했지만,
1803년 토머스 영은 이중 슬릿 실험을 통해 빛이 파동이라는 결정적 증거를 보였고,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빛은 파동이면서 입자다.
그런데 우리는
입자와 파동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있지만,
입자와 파동을 동시에 지칭하는 단어는 없다.1)
그러나 상대성 이론처럼
양자역학이 일상적으로 입에 오르내리는 날이 오면,
‘입자이면서 파동’에 해당하는 ‘새로운 낱말이 생겨나서’
두 성질을 함께 지칭하는 것이 모순처럼 여겨지지 않을 수도 있다.
양자역학은
입자와 파동을 함께 일컫는 언어의 출현을 촉구한다.
『삼국유사』(일연, 이재호 옮김, 『삼국유사』, 솔출판사, 1997) 기이편에 따르면,
환웅 천왕은 풍백(風伯) · 우사(雨師) · 운사(雲師)를 거느리는데,
바람 · 비 · 구름을 주관하는 주술사를 이른 말로,
모두 농사에 대한 자연조건이다.
또 우리말에서 ‘가물다’는 “비가 ‘오지’ 않다”라는 뜻이고,
“오래도록 비가 ‘오지’ 않는 날씨”를 ‘가뭄’이라고 한다.
그리고 ‘기우제’는 “비가 ‘오기’를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이다.
이처럼 생존에 필요한 비가 내리는 일은
‘오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힘내라 달팽이!』에 실린 동시
「비 간다」라는 제목은 낯설다.
“비는 왜 / 온다고만 할까?”라는 1연은 관점에 대한 물음이다.
인간 중심주의 관점을 강화하는 ‘온다’ 대신
2연에서는 “내리는” 비가 되었다가,
3연에서 “풀에게 / 나무에게 가고 싶”은 주체가 된 비는
4연에서 드디어 “간다”.
시인은 ‘비’를 바라보는 주체를
인간에서 자연, 다시 말해서 ‘비’로 바꾸어 놓으며
‘비’를 새롭게 보는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비가 풀과 나무, 곧 생산자의 생존에 가장 먼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재확인한다.
비는 왜
온다고만 할까?
가뭄에 내리는
저 비
풀에게
나무에게
가고 싶을 텐데
비 간다
또닥또닥
목마른 것들
살리려고
- 「비 간다」 전문
박승우가 이 시를 쓰기 전에,
GAI에게 ‘비’나 ‘가다’를 소재로 동시를 요구하더라도
「비 간다」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빅데이터를 학습해서 예술품을 창작해 내는 인공지능은
스스로 「비 간다」 같은 말을 만들기 어렵다.
권영민은 『이상 시 전집』(민음사, 2022)에서
「오감도」2) 연작시가
“특이한 시적 상상력과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으로 인해
시인으로서의 이상의 문단적 존재를 새롭게 각인시킨 화제작”이 되었는데,
이상이 파자 방식을 시적으로 변용하여
‘오감도’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냈다고 하였다.
그리고 박승우는
‘비 가다’라는 말을 ‘새로 만들어’ 냈다.
「비 간다」가 언어의 사회성을 획득하면
우리는 ‘비 온다’보다 ‘비 간다’라는 말을 더 많이 쓸 수도 있겠다.
시인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더 생각해서
“별처럼 빛나”(『힘내라 달팽이!』 시인의 말)는 생각을 시에 담았다.
동시인이 발견하고,
발명한 시가 낯설어서
독자는 즐겁다.
그리고 이제
동시 「비 간다」는 GAI에 데이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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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상욱, 『김상욱의 양자 공부』,
사이언스북스, 2017, 62쪽, 79쪽, 80쪽.
2) ‘오감도’라는 말은
이상이 ‘조감도’라는 한자의 글자 모양을 변형시켜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낸 것이다.
… 공중에 떠 있는 ‘까마귀’의 시선과 각도로
인간 세계를 내려다보기 위해서이다.
- 이상, 권영민 책임 편집, 『이상 시 전집』, 민음사, 2022, 41쪽.
- 출처: 《대구아동문학》 66호,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