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책, 독자도 작가만큼 설레는

노마드 비평 7. 『휴머노이드 할매』 & 『구구단과 달달물』

by nomadic critic


“비평가의 합당한 작업은

결점들을 지적하고 분석함으로써

그 작품이 어떻게 개선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는 개별 문학인에 대해 부당하게 주목하는 방식이 아니라

‘문학’ 일반의 존재 의의를 높이려는 작업이다.”

- 에드거 앨런 포, 『글쓰기의 철학』


첫 책은

작가 못지않게 독자에게도 의미가 있다.

독자는 신인의 첫 책을 읽으며

작가의 가치관과 작품이 지향하는 바를 가늠해 보고,

이 작가의 다음 책도 읽을지 결정하는 까닭이다.


류정희와 박진희는

각각 2017년과 2019년에 《대구문학》 동화 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하였고,

단편 동화집 『휴머노이드 할매』(소소담담 KIDS, 2023)와

『구구단과 달달물』(고래책빵, 2022)을 나란히 첫 책으로 내놓았다.

그러므로 이 작가들의 다음 책을 기다려도 좋을지

같이 살펴볼 만하다.


『휴머노이드 할매』에서는

등단작 「아기소의 등은 누가 빗어줄까요」와 어린이 SF1) 네 편을 읽을 수 있는데,

맨 앞에 실린 「아바타봇」은

〈써로게이트〉(Surrogates, 2009 개봉)를 떠올리게 한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뇌파로 인공 신체를 조종하여

일상생활을 유지하도록 돕겠다는 의도로 출발한 점은 닮았지만,

동화와 영화라는 장르 차이는

나비 효과를 일으켜 결과적으로 서로 다른 지점에 가 닿는다.

SF는 특성상

“부정적인 미래를 미리 시뮬레이션하며 경고함으로써

현재를 돌아보게”2) 하므로 재난 서사인 경우가 많고,

영화도 공식에 따르듯

써로게이트(대리 로봇)가 공격을 당하자 사용자도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어린이를 1차 독자로 상정한 동화에서는

마땅히 긍정하는 미래를 마련하였다.

「아바타봇」에서는 로봇을 선하게 사용하여

주인공이 교통사고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치유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역지사지(易地思之)를 깨우쳐 주는 가상현실 체험을 다룬

「대머리 앵무새」와 함께

“암울한 미래 대신 바람직한 미래를 맞이할 방법을 모색”3)한 SF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작가의 SF 세계관이 더 확장된 장편을 기다리게 만든다.


“휴머노이드(humanoid)는

사람처럼 두 발로 직립하는 ‘인간형 로봇’을,

안드로이드(android)는

겉모습과 행동까지 차이를 알아차리기 어려울 만큼

사람과 닮은 ‘인조인간 로봇’을 일컫는다.

우리나라 카이스트의 휴보처럼

2족 보행을 하는 기계 로봇은 휴머노이드,

2017년 사우디아라비아 시민권을 부여받은 인공지능 소피아가 더 발전하면

SF에서 다루어지는 안드로이드로 볼 수 있겠다.”4)


류정희는

표제작에서는 휴머노이드를,

「보미, 나이 들지 않는 아이」에서는 안드로이드를 다루었다.

「보미, 나이 들지 않는 아이」에서

반려 로봇 아이가 ‘엄마’라는 말을 하면

중앙처리장치가 터지도록 설계할 정도로

사람과 구별이 어려울 만큼 로봇이 발달한 상황과 달리,

「휴머노이드 할매」에서

제목이 ‘안드로이드 할매’가 아니라

굳이 ‘휴머노이드 할매’인 까닭은

“육아 주머니를 달고”,

“왼쪽 가슴에 박혀 있는 하트 모양 안에는 배터리 표시창이 있고

그 아랫줄에는 ‘제품번호 NR-3512’와

‘원소의 할머니’라는 이름이 적혀” 있어서다.


그런데 「휴머노이드 할매」에서

“인간 모습의 유모 로봇”이 옷을 입고 앞치마까지 두르는 바람에

사람처럼 보이는 그림은 부자연스럽다.

그리고 「아바타봇」에서

“벽감 안에서 충전 중인 아바타봇”이

체중계처럼 생긴 충전대 위에 서 있는 그림도 아쉽다.


대한민국에서도

어린이 SF가 비 온 뒤 죽순처럼 쏟아지는 지금,

글 작가는 SF다운 시공간 연출을 위해 치밀한 과학적 설정에 공들여야겠고,

그림작가도 SF 장면 묘사에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대구문화재단 2022년 지역문화예술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발간한

『구구단과 달달물』에는

등단작 「꽃보다 예쁜 엄마」를 비롯하여 모두 일곱 편이 실려 있다.

박진희는 ‘작가의 말’에서

“1학년 영아(「영아 똥은 예쁜 똥」),

2학년 하나, 현규(이상 「구구단과 달달물」), 영웅이, 수빈이(이상 「영아 똥은 예쁜 똥」),

3학년 동호(「우리는 새 가족」),

4학년 한결이(「도깨비 드론」),

5학년 윤서, 진주(이상 「꽃보다 예쁜 엄마」),

6학년 창재, 시경이, 시연이(이상 「맨날 꼴등이면 어때」), 솔미(「딸기 맛 아이스크림」)”로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준다.

이 동화집이 눈에 띄는 점은 바로

주인공이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다 나온다는 사실이다.


“언제부턴가

제 학년 수준을 밟으면 뒤처지는 듯 불안하고,

어느새 선행학습과 예비중학생이 익숙해진 현실.

머잖아 우리 아이들은

‘초식동물처럼’ 태어나자마자 벌떡 일어서서 걸음을 떼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5)

그래서 학년별 추천도서가 당연시되고

오히려 제 학년보다 앞선 책을 읽도록 재촉하는 오늘,

『구구단과 달달물』은 여느 동화책과 달리 전 학년,

말하자면 읽기 능력이 조금 빠른 저학년이나

조금 더딘 고학년 손에 쥐어져도 괜찮을 책이라 반갑다.

“사고력은

통조림처럼 획일화되거나

기성품처럼 몇 가지 유형으로 규격화될 성질이 아니다.

그러므로 독서능력검증이나 독서이력철 같은 방법으로는 잴 수 없는 유기체이며,

가치관의 총체적인 결과물”6)인 까닭이다.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까지 요구되는 21세기에도

“독서는 아이들에게

평가 대상이 아니라 놀이이며 삶이어야 하고,

아이들은 작가의 의도에 얽매이거나 독서매뉴얼이라는 체에 걸러지지 않고

마음껏 생각을 뻗어나갈 권리가 있다.”7)


표제작 「구구단과 달달물」이

“‘주인공이라면 당연히 주목받는 것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독자의 기대를 즐겁게 저버린 결말은 후련하다.”8)

하나는 구구단 달인이 되지 못했어도

달인이 된 짝이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손바닥이 아프도록 손뼉을 쳐 주는 아이다.

“나는 아직도 달달달 외울 것투성이에요.

어떤 것은 빠르게, 어떤 것은 천천히

내 속도에 맞추어 열심히 외우고 있어요.”라는 하나의 고백에서

어린 독자들도

중요한 삶의 진실을 알아채기 바란다.


그런데 모든 작품에서

코끝이 시큰해지는 상황으로 갈등을 해소하는 구성은 살짝 식상하다.

“이야기의 결말은

텍스트 밖 독자의 몫으로”9) 남김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를 끝맺도록 이끄는 열린 결말도 고려하여,

다채롭게 변주된 작품을 만날 수 있기 바란다.

사각형에는

정사각형과 직사각형뿐 아니라

마름모, 평행사변형, 사다리꼴도 있고,

심지어 오목 사각형도 있으니까.


작가는

첫 책을 내놓고 설렘만큼 아쉬움도 있을 터이다.

그리고 독자도

작가만큼 설레고, 작가만큼 아쉽다.

앞으로 두 작가가

아쉬움을 어떻게 메꾸어 나갈지 궁금한 마음으로,

첫걸음 다음에 내디딜 걸음을 응원한다.


“19세기, ‘안데르센’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 1805~1875)이라는 작가 이름이었다.

그러나 21세기,

‘안데르센’은 안데르센 동화,

나아가 ‘동화’와 등가의 위치에 놓아도 무방할 것이다.”10)

“21세기에 안데르센이 살았다면

과연 어떤 주인공을 내세워 어떻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까?11)

21세기,

누구나 안데르센을 꿈꿀 수 있다.

치열하게 안데르센이 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첫 마음을 잊지 않을 일이다.

누구에게 들려주려는가?

무엇을 말하려는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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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졸고 「대한민국 SF 동화에서 AI 교사는 얼마나 진화하였나?」(《어린이와 문학》 174, 2021 봄)에서

언급한 “SF 동화”를

이 글에서부터 “어린이 SF”로 바꾸어 쓴다.

졸고 「대한민국 청소년 SF, 11.2㎞/s이 필요하다」(《어린이와 문학》 177, 2021 겨울)에서

“청소년 SF”와 “일반 SF”를 언급한 적이 있으므로

“SF 동화”보다 “어린이 SF”가 맞춤하다.

또 SF 분야 신인 문학상인 “한국과학문학상”을 참조하여

“어린이 SF”를 우리말로 풀어쓰면 ‘어린이 과학문학’쯤 되므로,

“SF 동화”를 풀어쓴 ‘과학문학 동화’보다 낫겠다.

2) 졸고, 「로봇이 거짓말을 하는 까닭」, 《어린이와 문학》 182, 2023 봄, 149쪽.

3) 졸고, 「오래된, 오래될 대한민국 청소년 SF」, 《문장 웹진》, 2022년 12월호.

4) 졸고, 「로봇이 거짓말을 하는 까닭」, 137쪽.

5) 졸고, 「까르페 디엠, 아홉 살은 아홉 살만큼」, 《어린이책이야기》 3, 2008 가을, 179쪽.

6) 졸고, 「동화 쓰는 사람, 아이들에게 허(虛)를 찔리다

-『내 짝꿍 최영대』, 『짜장 짬뽕 탕수육』 따져 읽기」, 《아침햇살》 43, 2005 가을, 58쪽.

7) 위 글, 같은 쪽.

8) 졸고, 「절반의 주인공, 동화에게 외면당하다-『잘난 척쟁이 경시 대회』가 반가운 까닭」,

《아침햇살》 47, 2006 가을, 212쪽.

9) 졸고, 「내 마음에 박힌 가시, 하창수와 히르벨-『문제아』와 『그 아이는 히르벨이었다』를 읽고」, 《아침햇살》 42, 2005 여름, 111쪽.

10) 졸고, 「21세기 울슐라거, 19세기 안데르센을 읽다-『안데르센 평전』 비평적 읽기」,

《아침햇살》 49, 2007 봄, 147~148쪽.

※ 인간의 허영심을 비웃은 「벌거벗은 임금님」은

「미운 오리 새끼」와 더불어 가장 유명한 이야기가 되었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도 두 이야기만큼은 알고 있다.

우리는 옛날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이 이야기들을 우리의 공통 유산으로 여긴다.

-『안데르센 평전』, 328쪽.

&

나는 동화 관련 강의를 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아는 동화작가 이름을 묻곤 하는데,

열이면 열이 빼놓지 않고 안데르센을 거론한다.

아는 동화를 물으면 나오는 제목의 열 중 여덟아홉은 안데르센의 것이다.

; 김서정, “동화는 어디에서 오는가

-『안데르센 평전』에서 찾은 ‘동화적’ 믿음-”, 《창비어린이》 15, 2006 겨울, 143쪽.

; 2세기가 지난 뒤,

덴마크의 반대편 나라에서 안데르센이 평가받는 단적인 예.

-졸고, 「21세기 울슐라거, 19세기 안데르센을 읽다-『안데르센 평전』 비평적 읽기」,

각주 3)에서 재인용.

11) ※ 「지금부터 천년 후」는

과학에 대한 안데르센의 열정은 물론,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의 항공여행과

해저 터널을 정확히 묘사할 정도로 예언자적 시각을 보여 준다.

… 철도가 놓인 지 불과 15년밖에 안 됐을 때 쓰인 이 글은

『80일 간의 세계 일주』보다 20년이나 앞섰으며,

아마 쥘 베른에게도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안데르센 평전』, 606~607쪽.

-졸고, 「21세기 울슐라거, 19세기 안데르센을 읽다-『안데르센 평전』 비평적 읽기」,

각주 67)에서 재인용.

12) 졸고, 「21세기 울슐라거, 19세기 안데르센을 읽다-『안데르센 평전』 비평적 읽기」, 160쪽.


- 출처: 《대구아동문학》 65호,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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