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제 교사의 교단일기
직접 뵙고 말씀드려야 마땅하나, 아이들을 통해 서면으로 하직 인사를 드리게 되어 송구합니다. 2학기 담임 000 선생님의 복직원에 따라, 방학일을 끝으로 저의 계약이 종료됩니다. 계약직 교사라고 밝히는 것 대신 학업이나 육아 등 다른 핑계를 대어볼까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담임 선생님이 자신들보다 다른 일을 우선으로 선택했다는 상처를 면하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또한 아이들이 선생님의 사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아도 옳고 그름을 가려 판단할 수 있을 만큼 성숙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덧없을지라도…’
끝이 정해져 있고, 다른 담임 선생님들보다 기간이 짧다 하여 거리를 두고 있기에는 무척 예쁘고 귀한 아이들이었습니다. 저는 언어를 도구로 삶과 만날 수 있는 제 교과를 좋아합니다. 각박해졌다 하더라도, 순수한 배움의 열정이 있고 ‘선함’이 인정받는 학교라는 공간과 제도를 좋아합니다. 때로는 교사가 주는 ‘내리사랑’보다도, 더욱 맹목적으로 교사를 사랑해줄 줄 아는 아이들을 흠뻑 사랑합니다.
아이들과 짧게 만났다 헤어지며, 미처 맺지 못한 과제는 2학기 담임 선생님께 공백 없이 잘 전달드리겠습니다. 남은 계약기간 동안 아이들을 가까이서 관찰한 장점들을 반영하여, 여러 명의 지원서 중에 우리 반 아이들의 지원서가 옥석처럼 빛날 수 있도록, 생활기록부 기재에 힘쓰겠습니다.
2학기가 되면 아이들이 저의 흔적을 지우길 바랍니다. 담임 선생님과 잘 지내지 못하는 고등학교 생활이 아이들에게 미칠 영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마음에 애정이 남아 있다고 해서, 아이들의 서운한 마음이 걱정된다고 해서, 아이들 일에 미련을 두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시간이 오래 지나도 아이들이 원한다면, 다시 찾아올 수 있는 자리를 기쁘게 마련해두겠습니다.
끝으로 함께 자녀를 키우는 부모로서 깊이 공감하며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은 학부모님들과의 시간도 무척 소중했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그간 이루 말할 수 없이 감사했습니다.
2022.7. 000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