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선생님께 메시지가 왔다.
공립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한 이후 부당함이라는 단어를 입에 잘 올려본 적이 없다. 어려운 시험을 공정하게 치르고 같은 과정으로 선발된 선생님들은 서로가 치열하게 살아 본 사람이란 것을 전제하에 대화를 진행했고, 기간제 교사의 정교사 되지 못함을 문제 삼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임용된 것을 운에 돌리는 겸손하신 분이 대부분이었다.
“선생님 제가 임용 스터디를 할 때요, 스터디원 중에 저보다 진짜 실력이 뛰어난 분이 있었어요. 누가 봐도 제가 가진 수학적 재능보다 탁월한 사람이요. 그런데 그분 대신 제가 최종 합격을 했습니다. 지금 이 자리는 제 실력이 아닌 운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저는 더 열심히 해야 합니다.” 유명 강사의 인강을 사비로 들어가며 풀이법을 연구하는 선생님의 말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다.
그런 태도는 상대 교사의 겸손함이 지나친 미덕이며, 그 어려운 시간과 시험을 견딘 것이 선생님의 진짜 실력이라며 인정의 박수를 치게 했다. 생각해보면 나의 부족함을 구태여 들추지 않고, 같은 실력으로 포장해주시는 동료 선생님들이 있어 내가 진짜 교사라는 착각에 아이들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교감선생님의 메시지가 왔다. 수신자 명단을 보니 기간제 선생님들만 선택해서 보낸 메시지였다.
‘1층 교무 본부로 오셔서 연수원 명부에 서명하고 가세요. 교감 올림.’
‘올림’이라. 존칭이다. 깍듯하다. 수신자 명단에서 썩 유쾌한 느낌이 들지 않았지만, 얼른 내려가 어떤 연수물이 있는지 확인하고 숙제를 잊어버리고 싶었다. 두 가지 유인물을 나눠 주셨다.
첫 번째는 공문서 작성에 관한 요령이었다. A4 한 장에 담긴 공문서 작성 요령에는 그 어떠한 요령도 없었다. 사립학교에서 첫 해 기간제를 할 때, 교감 선생님이 나를 불러 문서의 마지막에는 마침표를 찍고 두 번 스페이스바를 누르고 ‘끝.’을 반드시 적어야 합니다.라고 일러 주셨는데 그와 다를 바가 없는 내용이었다.
두 번째 유인물에는 ‘고사 출제 시 오류 예방을 위해 만전을 기해 달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명부에 이미 서명을 하고 간 선생님들의 명단을 확인해보니, 정년 퇴임 후에 계약직 교사로 다시 근무하시는 원로 선생님과, 1급 정교사로 올해 연수를 받으시는 최소 경력이 2년 반은 넘는 분부터 각 지역의 화려한 경력으로 프로필을 채우신 분들이었다. 명단 어디에도 초임 교사는 없었다.
나는 이 학교에서 작년에도 근무를 했었고, 올해도 추가로 근무를 하게 되었다. 다섯 학교를 거쳐 이곳으로 왔다. 다른 학교에서 1년이 보장되는 계약을 두고, 이곳 아이들이 그리워 6개월이 안 되는 근로를 승낙하고 다시 온 것이다. 교감선생님은 올해 처음 교감으로 승진하셨는데 공문서로 모든 것을 증명하고 기록하고 싶어 했다.
삐딱하게 보자면 기간제 교사가 내가 교장 되는 길에 걸림돌이 되면 안 된다는 명백한 의지가 읽혔다.
작년 2학기에 시험 문제 출제 오류로 학교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 세 명의 교사가 반을 나누어 수업을 진행하는 데, 한 명의 교사가 고사 출제 이후 시험 문제에 관한 힌트를 줬던 것이다. 그 한 명의 교사는 정교사였다. 상위권 아이들에 의해 고난도 문제의 정답률이 특정반만 높다는 사실이 후에 발각되고 정식 이의제기를 받게 되었다. 결말은 사건의 본질과 다르게 흘러 힌트를 주지 않고 시험 문제의 비밀을 엄수한 나머지 두 교사가 수업에 들어가는 아이들에게 사과를 하는 사건이 있었다.
비문이 있거나, 보기에서 문제를 풀라고 해놓고 보기가 충분치 못하거나, 그러니까 시험 문제의 명백한 오류로 중간에 교사가 서너 번 들락이며 문제를 뜯어고친 일도 있었다. 드라마로 치면 쪽지 대본으로 촬영 현장에서 대본이 날아다니는 전쟁터 같은 상황이었다. 아무도 그와 교과 파트너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그분. 그 문제의 장본인도 정교사였다.
고사 준비기간 연구부에서 시험 문제 출제 오류를 예방하기 위한 연수를 정기적으로 진행한다. 전교사를 대상으로. 그런데 굳이, 3월에, 학기 초에, 기간제 교사들만 선택적으로 불러, 출제 전인 시험 문제에 대해 오류를 내면 안 된다는 서명을 받아야 하는가. 작년 하던 업무와 연속성과 계열성이 있는 업무를 하는 교사에게 띄어쓰기라든가, 공문서 작성 시 항목의 위계에 대해 설명할 필요성이 있는 것인가.
‘교감 선생님, 이게 다 집단에 대한 편견입니다. 그 편견 제가 제 몫의 일 완벽하게 해내며 어디 한 번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전투의지가 불타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