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솔티 맥주.
둘째의 돌을 앞두고 단유하면 마시라며 남편이 제천에 워크숍을 다녀오는 길에 수제 맥주 세 병을 사 왔다. 임신 10개월 모유수유 12개월 2년 가까이 술을 멀리한 나의 알코올 재입문으로 이 맥주가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단다.
실무자 워크숍이라 유관기관의 같은 업무를 하는 사람들끼리 제천에 모여 교육을 하고 리조트 내 펍에서 맥주를 한 잔 하며 맛본 술이었다. ‘이렇게 맛있는 맥주를 어떻게 혼자 먹어요? 아내 선물로 사가셔야죠.’ 동석한 자가 남편에게 핀잔을 주었다고 했다. ‘근데 결국 그 새끼(?)는 술자리에서 여자들 박수만 받고 입만 털더니 안 사갔다고. 진짜 서윗남은 자신’이라며 자화자찬을 한동안 들었다. 말없는 이 집 남자가 대화를 주도하는 사람이 묻는 말에 대답도 시원하게 안 하고, 먼 산만 보며 테이블에 꾸역꾸역 앉아 맥주만 마시고 있을 장면이 떠오른다.
‘그래 얼마나 맛있는 맥주인지 마셔보자.’
파란 화면으로 타인과 연결되는 온라인을 경험한 나는 80년대에 태어났다. pc통신 나우누리의 창립멤버였던 홍성태 대표가 독학으로 맥주 양조를 배웠다는 기사를 보았다. ‘IT업계의 오리진 같은 대표님이 한국 수제 맥주의 오리진이 되고자 마음먹었구나.’ 이해하고 나니 술맛이 더욱 깊고 진하게 느껴진다. 한 분야에서 정상에 올라본 사람은 다른 분야에서도 정상에 오르는 법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몇 개의 간단한 검색만 해보아도, 수제 맥주를 완벽한 한국식으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각고의 노력을 들였는지 에피소드가 벌써 여럿이다.
솔티 맥주는 홉부터 한국 맥주다. 원료부터 농사를 지으며 지역의 아이텐터티를 담아내는 술이니 값싼 원료를 대량으로 수입해서 만드는 수제 맥주와 이 맥주를 가격 경쟁력으로 논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시그니처인 SOLTI8은 의병장 류인석 장군을 기리며 알코올이 8%나 들어가 있다. 맥주로서는 도수가 제법 높다.
솔티 맥주는 외관부터 시중에 판매되는 맥주와는 다르다. 샴페인처럼 코르크 마개를 사용하는데, 맥주병에서 두 번째 발효를 하는 벨기에식 주조 방식을 따르면서 병뚜껑이 아닌 코르크 마개를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코르크 마개를 지나 병목으로 시선이 내려오면 빈티지한 무드의 스티커가 하나 붙어 있는데, 750ml 용량과 8%의 알코올 함량을 고지하고, 주세를 납세했다는 증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
맥주 맛은 묵직하고 쓰다. 본래 탄산이 가득한 라거 맥주를 즐기지 않는 우리는 에일 맥주를 주로 마신다. 에일 맥주라 하면 스위티하고 풍부한 아로마향 그중에서도 상큼한 시트러스 향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이 맥주는 묵직하고 쓰다. 목 넘김 후에도 입안에 홉의 기운이 오래 남는다. 커피로 말하자면 에스프레소로도 부족한, 리스트레또 같은 느낌이다.
한 모금 들이키고 그제야 맥주병의 띠지에 작게 적힌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일본의 노예로 살기보다는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죽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역사의 변곡점에서 후퇴하지 않고, 목숨보다 신의를 아꼈던 의병장의 영혼과 잘 어울리는 맛이다. 변주 없이 깊은 곳에서 오래도록 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