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를 낳고 양육하던 때와 달리 둘째 아이는 유난히 어린이집에 보내기가 싫었다. 모유 수유도 돌까지 하겠다며 고집을 냈는데, 왜 그랬을까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모성이 아니라 나의 불안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이를 둘 이상 낳은 생각이 없던 나는 둘째 아이가 커가는 것이 나의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가사 노동에 취미와 적성이 없는 내가 양육 노동을 졸업하고 나면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 인간으로 정의해야 할지 막막했다. 남녀 차별 없이 고등 교육을 경험한 세대. 출산은 장려하면서 양육에 대한 경력 중단은 고려해 주지 않는 사회.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노동의 가치를 연봉으로 연결 짓고, 연봉을 다시 사회 안에서 자신의 가치로 환원하는 구조를 학습한 엄마 노동자가 설 자리는 어디일까. 불안하고 위축되었다.
경제적인 문제도 고민의 한 축이었다. 아이를 하나 기를 때와 둘 기를 때는 생활비가 곱이 아니라 제곱으로 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이를 둘 나은 것은 부모의 선택이니, 첫째 아이에게 동생이 태어난 형편에 맞추어 네가 하고 싶은 것을 다 들어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면목이 없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일하고자 하는 의욕과 의지만 보고 나를 채용해 줄 회사는 어디일까. 진로와 적성에 대한 고민은 사춘기보다 더욱 혹독했다. 그래서 더욱 독하게 책을 읽었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라 일처럼 책을 읽었다. 코로나가 한창인 시기에 책 친구들과 줌으로 모여서 독후 활동을 하고, 영감을 자극하는 문장을 만나면 글을 이따금 썼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생활비와, 양가의 지원금으로 아이들을 양육하는 친구들은 일하고 싶어 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기념일마다 명품 쇼핑을 하고, 육아에 지친 자기를 위한 선물이라며 호캉스를 떠나는 친구들을 보면서 상대적 가난을 실감했다. 그런데 그런 가난은 책을 읽고 있는 순간에는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의 독서가 지적 허영심을 채우는 불순한 목적이라고 할지라도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부자도 부럽지가 않았다. 가을바람 부는 날에 아이를 유아차에 태우고 아파트 공원에 앉아 책을 읽고, 잠시 살랑이는 나뭇잎을 올려다 볼 때는 지금이 내 삶의 황금기인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가난한 내가 책을 사랑해서. 나타샤가 아닌 책을 사랑해서. 혹독한 육아기를 순하게 넘길 수 있었다.’고 일기에 썼다.
남편의 업무는 더욱 바빠졌다. 직장생활 10년 차를 넘어서면서 보직이 맡겨지게 되었고, 후배들 가르치랴 본인 업무하랴 몸이 열 둘이라도 모자라 보였다. 동이 트기 전에 나가서, 아이 둘을 재우고 나면 들어오는 때가 많았다. 비슷한 나이에 같은 대학을 나와 남편과 나는 사는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 쓰임이 많아지는 남편과 쓰임이 점점 줄어드는 나는 같은 자리에 앉아 있어도 서로 고민하는 것들이 달랐다. 쏟아지는 업무와 체력적 한계에 부딪히는 남편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그에 반해 세상과 점점 단절되는 내 모습은 더욱 초라하게 느껴졌다. 남편이 퇴근을 하고 나는 아이들을 재우고 식탁에 앉아 좋아하는 와인이나 맥주를 곁들여 이야기 나누는 것이 세상과 유일한 연결 통로였다. 어느 날 남편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회사에 말이야, 퇴직한 박사님들 있잖아. 나 같으면 30년 근무하고 집에서 쉬고 취미활동 할 것 같은데 말이지. 회사에 사무실 하나 마련해 달래. 거기로 모여서 바둑 두고 신문 읽고 하더라도 출퇴근하듯이 오가고 싶다고.’ 은퇴한 사람들과 남편이 거리감을 느끼는 것과 달리 나는 그 세대의 심정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분들이 나처럼 책을 읽고 글을 쓰면 어떨까, 나는 책 읽고 글 쓸 때 만큼은 정말 아무도 부럽지가 않거든. 은퇴자들도 그렇게 평생 동안 자기가 해온 일 말고 읽고 쓰면서 자기 새로운 모습을 찾아가면 좋겠다.’
이야기를 함께 나누니 생각이 구체화 되었다. 모든 일의 진행을 감정의 흐름대로 좇아가는 나와 달리, 남편은 현실적인 문제에 밝은 사람이었다. 고령화 사회에서 은퇴 연령의 고립감이라는 사회적 문제라든가, 퇴직 예정자를 대상으로 하는 의무교육 기간 같은 법적 근거를 들어가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긍정적인 분석을 내놓았다.
교직 생활을 할 때 나는 종종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의 인생은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과 같다. 첫 번째는 ‘나는 누구인가’ 두 번째는 ‘내가 속한 세상은 어떤 곳인가.’ 세 번째는 ‘내가 속한 세상과 나의 관계는 어떠한가.’ 그러고는 나의 잠정적인 답도 공유했다. 선생님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도구로, 다른 사람의 성장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런데 그 성장이 ‘진정한 자기’에게로 이르는 길이면 좋겠다고.
지금껏 내가 뱉은 말과, 책 읽기와 글쓰기를 통해서 충만해졌던 시간, 남편이 관찰한 은퇴자들의 이상한 모습이 갑자기 한데 합쳐지며 생각이 가지를 뻗어 숲이 되는 느낌이었다. 이런 느낌을 담아 내가 만들고자 하는 브랜드는 아스펜 나무의 숲을 떠올리게 했다. 각각의 독립된 나무는 지하 세계에서 하나의 뿌리로 거대한 군락을 이루었다. 독립된 나무이지만 실제로는 동일한 유전자를 공유하는 시스템. 자기 자신도 몰랐던 자아를 발견하고 뻗어나가는 모습. 경쟁 대신 상생을, 각자도생 대신 연대를 지향하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상상하게 했다.
숲이라는 세계관은 브랜드의 다른 상징을 파생시켰다. 패키지 중 하나로 제작하는 다이어리는 그 상징을 모아놓은 집합체였다. 읽고 쓰는 행위를 바탕으로 일상을 조금 더 촘촘하게 행복하게 느끼길 바라는 마음. 자연의 슴슴한 아름다움이 마음을 흔들어 기록하고야 마는 사람. 그런 이미지를 그리며 다이어리의 도비라가 될 문구들을 적어냈다.
year
새날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희망일까요? 어제가 저물고 오늘이 새롭게 주어진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다시 무언가를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내기도 합니다. 새해를 맞이한 당신의 마음에는 어떤 희망이 가득 차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지금까지의 다이어리가 목표를 향한 계획으로 채워져 있었다면, 올해는 조금 다른 방식을 시도해 보세요. 절기나 가족의 기념일 같은 소중한 추억들과 더불어, 하루를 표현하는 단어를 수집해 보는 겁니다. 기쁨과 상실, 도전과 쉼, 믿음과 가치 같은 말들로 하루를 기록하다 보면, 어느새 한 해의 결이 드러날 것입니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의미는 남습니다.
week
한 주는 리듬의 단위입니다. 바쁘게 흘러간 날들 속에서 잠시 멈추고 질문을 던져보기 좋은 단위이죠. 당신의 한 주는 어떻게 흘러갔나요? 혹시 내 삶의 운전대를 내 의지가 아닌 다른 것들에 넘겨주진 않았나요? 바쁘고 정신없는 일에 취해 방향을 상실하진 않았나요? 바쁨 속에서도 감각이 깨어있기 위해 보낸 순간들을 떠올려 보세요. 맨발 걷기, 멍하니 하늘과 나무를 바라본 일, 좋아하는 카페에서 나만을 위해 시간을 보낸 일 등. 나를 위해 내어줬던 시간을 기록해 보세요.
day
하루는 감각으로 경험하지만, 그 의미는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에 발견하게 됩니다. 모든 경험이 영감이 되지는 않습니다.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답거나 좋았던 느낌부터 이상하고 불편했던 지점까지. 내가 감각한 것들을 스펙트럼 위에 놓고 본다면 양극단의 감정에 있는 것들에서 영감이 탄생하죠. 당신의 하루를 돌아보세요. 아름답고 좋았던 순간부터 불편하고 이상했던 지점에서 이렇게 질문합니다. ‘왜 그 장면이 아름답게 느껴졌을까?’ ‘왜 그 말이 불편하게 느껴졌을까?’ 당신의 감각을 사유의 언어로 바꿔보세요.
month
지난 한 달을 돌아볼 때,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장면은 무엇이었나요? 자꾸 떠올라 마음을 아프게 했던 순간도 있었을까요? 다이어리에 기록해 놓은 것들을 여러 번 들춰보세요. 새가 나뭇가지를 모으고 열매를 모으듯 당신의 글감이 될 재료들이 그곳에 있을 겁니다. 천천히 들여다보며 한 편의 에세이를 써보세요. 쓰는 동안 감정은 조금씩 치유되고, 기억은 더 따뜻해질 것입니다.
moment
아름다운 것을 보면 문득 카메라를 들고 싶어집니다. 불꽃놀이, 만개한 꽃, 청명한 하늘, 탐스럽게 부풀어 오른 구름처럼 순간의 아름다움이 마음을 흔들 때가 있죠. 사진이 기록이라면,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도 같은 자리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책을 읽으며 발견한 문장이 꼭 내 마음과 같아서 밑줄을 긋고 옮겨 적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산책하며 떠오른 한 문장이 강하게 남아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만난 영감을 이곳에 기록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