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시적 질문 (2)

poetic question

by Zen


재스퍼 존스,《책》(Book)


펠드먼이 앞 인용문에서 언급한 ‘시적인 것’의 의미는 동시대 작가인 재스퍼 존스(Jasper Johns, 1930~)의 초기작《책》(1957)을 통해 유추해볼 수 있다. 이 작품의 제목은 ‘책’이지만, 그 안에는 어떤 글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언어가 삭제된 자리를 대신해 색채만이 남아, 사라진 말의 존재를 암시한다. 이는 로스코 말년 여러 점의 붉은 회화들과도 색채와 형태 면에서 유사성을 보인다. 아래의《무제》(1969)에서 드러나듯, 강렬한 붉은 색면은 《로스코 채플》연작에서 지워진 색채, 혹은 그 너머의 말해지지 않은 감정의 깊이를 환기한다.




‘책’과 ‘무제’라는 명명 방식의 차이를 넘어 두 작품은 모두 침묵의 증언으로서 색채 그 자체만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마크 로스코,《무제》(Untitled)


《로스코 채플》종결부의 히브리 멜로디는 지워진 ‘말’의 깊이를 드러내며, 작품의 추상적 흐름을 뒤흔드는 침입처럼 나타난다. 그러나 이는 형식의 파괴가 아니라 오히려 고요함을 새롭게 구성하는 미학적 장치이자,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로서 삶의 본질적 요소를 이룬다. 서로 다른 양식의 혼합과 수용이 불러오는 연약한 틈은 타자를 받아들이는 열린 구조를 이루며 본질로의 회귀를 가능하게 한다.




‘강력한 것이 아닌 것’, 다시 말해 이것은 훌륭한 것, 효과적인 인상을 주는 것,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 그리고 이로 인해 비로소 가치를 안전하게 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러나 강력하지 않은 것은 또한 결코 비참한 것 그리고 본질이 없는 것이 아닐, 오히려 그것은 ‘삶’에 속하는 것 그리고 삶을 삶답게 만드는 그런 것이다. 의욕된 것과 생각된 것은 숙명에 알맞은 것이고 운명과 관련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그것이 때때로 ‘슬프다’[in mourning]고 말해지지 않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기쁜 것의 광채 안에 서 있다.



감정의 환영과 감각의 구조, 그리고 기억 너머에서, 노래는 삶의 형식으로 수용된다. 물질과 감각을 끌어안고, 평범함 안에 고요히 머물며《로스코 채플》은 대답이 아닌 시적 질문으로 끝을 맺는다.


tempImageENWXTH.heic Robert Rauschenberg Untitled (Elemental Sculpture) 1953


https://youtu.be/55SXSynTlog?si=0Y4o_effgtSO7qDR

Water Drop



1. Craig F. Starr Gallery, Jasper Johns: Sculptures and Related Paintings 1957–1970, 전시 도록, 2014, p. 12.

2. 재스퍼 존스는 추상표현주의와 팝아트 사이의 전환기에 위치한 작가로, 일상적 기호의 단순화와 반복을 통해 관객의 지각을 전복시키고,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소통을 유도한다. 특히 초기작《Book》(1957)은 책이라는 제목 아래, 화면을 가득 메운 붉은 색면과 두텁게 덧칠된 물질성이 말해지지 않은 언어와 비가시적 정서의 층위를 환기한다.

3. 마크 로스코는 말년에 대동맥류 질환으로 인한 신체적 쇠약 속에서 극단적인 색채 대비와 감정의 밀도가 높은 작품을 남겼다. 특히 붉은 계열로 채워진 후기 작품들은 고통과 불안, 생의 한계에 대한 암시로 읽히며, 감상자에게 깊은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엘킨스,『그림과 눈물』, 37-38.

4. 마크 로스코,《무제》(Untitled), 1969, 종이에 아크릴, 127 × 107 cm,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National Gallery of Art) © 2025 The Mark Rothko Estate. https://www.markrothko.org/untitled-red

5. 하이데거,『회상: 횔덜린의 송가 <회상> 프라이부르크 대학 1941/42 강의록』, 207.

6. https://www.moma.org/collection/works/80989

7. 로스코 채플과 그 이면에 놓인 유대인의 비극을 사유하는 맥락에서 하이데거를 인용하는 일은 부적절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의 후기 사유가 지향하는 존재에 대한 성찰은, 역사적 상처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과 살아남은 자들의 시간에 여전히 의미 있는 빛을 비춘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 화가 김창열의 물방울 회화는 사라짐과 남겨진 이들의 삶이 동시에 공존하는 감각을 드러내며, 깊은 사색과 슬픔, 그리고 그 속에서 미세하게 떠오르는 기쁨의 가능성을 함께 품고 있다. 따라서 마지막 동영상에서는 김창열의 이미지를 클라리넷의 선율과 함께 제시함으로써, 기쁨의 광채 안에 내재된 슬픔의 의미, 곧 비극을 통과한 이후에도 지속되는 존재의 정조를 사유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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