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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케언즈로

1월 1일

by Steven Shin

그렇게 나는 어느덧 22살의 새해를 호주에서 마주하게 됐다 아주 혹독하게 처음 왔을 때 7일간 지냈던 호스텔이 제일 좋았다 좁은 것만 빼면 딱히 문제는 없었다.


시드니에서 페인트를 배워 영어도 늘리고 돈도 모으려 했는데 생각보다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갔다. 첫 번째 tfn 세금 번호도 없었고 은행계좌는 물론 일을 하려면


꼭 있어야 하는 화이트 카드도 없었다 만들면 되지 않냐고? 난 200만 원만 가지고 호주를 왔다 더군 더 나 머든 발급 기관은 내가 온시점부터 7일간 휴무였다


이유는 크리스마스 시즌 그리고 1월 1일 정말 나에게는 최악의 컨디션이었다. 그렇다고 얻은 게 없는 건 아니다. 일본, 중국 친구들과 본다이비치도 가고 독일 친구랑 많은 애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번째 숙소 예약일이 만료되었고 나는 급하게 가장 싼 백베커스를 찾았지만 그 마저도 일박에 10만 원이었다. 어쩔 수 없지 2박 결제를 하고 이사를 했는데 정말 이틀간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방은 넓었는데 8인실이었고


밖에 버스와 오토바이, 차들이 다니는 소음에 잠을 잘 수도 없었고 벽에서는 옆 화장실 물 트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 와중에 나는 목감기에 앓아 시름시름했지만


밖에 나가 풀업, 푸시업, 딥스등 맨몸운동을 하고 돌아왔다. 호주 와서 줄곧 파스타만 먹은 거 같다. 면이 하나에 2달러 우리나라돈으로 1800원 정도이다 소스도 2달


정말 돈을 아꼈지만 일이 없는 나의 통장잔고는 점점 고갈되고 있었다. 신라면은 8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7500원 정도 된다 라면이 여기선 고급 음식이다.


아무튼 여러 문제와 우연이 백패커에서 만난 형이 바나나농장을 추천해줘 가게 되었다. 자기도 갔다 왔다고 그 형은 2000만 원을 넘게 모았다고 한다.


나는 결정해야 했다. 힘든 경험을 하고 돈을 벌지 아니면 한인 사장 밑에서 적은 시급을 받으며 노예처럼 한국말만 하며 일할지 나는 고민하다 마음으로 굳은 다짐을 했다 첫째 농장에서 1500만 원 이상 모으자


둘째 4끼 이상 꼭 먹고 벌크업 하자 셋째 영어 하루에 10분짜리 두 개 외우고 단어 10개씩 외우자


이것만은 꼭 성공하자 맹세하고 나는 케언즈로 떠났다. 그렇게 나는 케언즈공항에 도착했다 10시 20분 체크인 가능 시간이 11시까지인 상황에 하늘은 정말이지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게이트 오픈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지체되었고 내 케리어도 늦게 나와 나는 택시를 잡아타고 바로 숙소로 질주했다 택시에서 내려 아무리 길을 찾아도 호텔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결국 한


백인 부부에게 길을 물었고 그들은 흔쾌히 나를 도와 호텔까지 데려다주었다. 배정받은 방을 들어왔을 때

지독한 곰팡이 썩은 냄새와 남자들이 씻지 않은 냄새가 몰려왔다 정말 최악의 방이다. 그렇게 나는 씻고 나와


밖에 나가 새해를 맞이했다 혼자 불꽃놀이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눈물이 날 것만도 같았다. 같이 웃을 친구도 가족도 없었다. 내가 이러려고 호주를 왔나 싶다.


이럴 때면 그냥 내가 밖에서 맨날 술 마시고 거기서 만난 무리와 어울리고 쾌락만 즐기고 목적도 지혜로움도 존엄성과 가치도 신경 안 쓰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하루 나 자신과 싸우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다. 그런데도 결국에는 나는 똑같이 묵묵히 갈길을 간다. 나는 나에게 최면을 걸었다. 돈, 몸만들기, 영어 호주에서 못하면 난 어디에도 어울릴 자격이 없다고


호주에서 유흥이 빠지기 정말 쉬운 거 같다. 대미초도 합법이고 카지노는 물론 온갖 여러 것들이 유혹한다.

사실 카지노는 나도 가봤다 그제 아는 형이랑, 나는 내 자제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궁금했다 가보고 싶었다


왜 사람들이 중독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나는 50달러 한화돈으로 사만오천 원 되는 돈으로 50달러를 땄다 우리는 서로 50달러로 따거나 잃으면 바로 나오기로 했는데 내 형은 지자 계속 한번 더 한번 더 하려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이렇게 중독에 되는가 보구나 싶었다 심지어 나 자신도 따놓고 한번 더 할까라는 고민이 있었다. 하나 나는 나 자신을 믿었고 주위의 한번 더 하라는 말에도 그냥 거절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한번 선을 넘으면 돌아오는데 100배는 힘들기 때문이다. 돌아올 때쯤이면 이미 멀리 와버려 초라해진 나 자신을 보고 포기해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나는 갈 일이 없다.


내 자제력을 시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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