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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털리에서 아프면 벌어지는 일

장염

by Steven Shin

드디어 오늘 장염이 다 나았다 아직도 1주일 전 시작된 장염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바나나 하나에 50kg에서 60kg를 9시 반 반동안 나르고 6시에 와서 헬스장을 간다 운동이 끝난 후에는 다음날


점심에 먹을 도시락을 싼다 키친에서 요리하는데 무지 덥다. 그런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몸에 무리가 왔나 보다.




하체를 한 다음날이었는데 수영을 하던 도중 배에서 신호가 시작되었고 그냥 지나가리라 생각했던 내 생각은


잠시 후 큰 재앙을 불러왔다. 다음날 배가 엄청 아픔과 동시에 화장실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는데 한 20번은 간 거 같다.


정말 호주에 온후 근성장은 정채기를 뚫은 듯이 성장하고 있었는데 영양도 만만치 않게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 단백질이 들어간 식사를 하루에 4끼에서 5끼를 먹었고


정말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월요일에 시작된 설사는 이틀 후까지 멈추지 않았고 그 후 배가 엄청 아프기 시작했다.


3일째 되는 날 토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잠을 이루지 못했고 내가 지내고 있는 호스텔은 평일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에어컨이 정지되었다. 정말 열악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탈수까지 오기 시작했다. 물만 먹어도 토만 하기 시작했고 나는 내 몸을 체크 하기 시작했다.


나는 체지방이 없어 혈관이 잘 보이는 신체를 가지고 있는데 나는 내 허벅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혈관이 확장되어 마치 거미줄 같은 초록색 혈관들이 엉켜있었다.


이는 몸에 수분이 정말 없음을 의미한다. 그렇게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자 다리와 몸에 힘이 안 들어가기 시작했고 계속 토할 거 같았다.


참다 참다 나는 밤에 털리 응급실에 가게 되었다. 걸어서 10분 걸렸는데 토하고 걷고 토하고 걷고 하여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내 증상을 설명했고 의사는 나를 진찰했다. 나는 문득 겁이 났다. 호주 병원은 가격이 사악하기로 유명한데 나는 아픈 내 몸보다 병원 가격이 걱정이었다.


내가 가격을 묻자 간호사는 가격이 적힌 종이를 가져와 보여주더니 609달러 한화로 대략 60만 원 정도 되는 가격을 보여줬다. 나는 걱정이었다 얼마 있지도 않은 돈은


주식에 전부 들어가 있었고 심지어 isa계좌라는 절세되는 조건에 3년간 혜지를 하지 않는 주식에 넣어 놨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엄마에게 급하게 전화해 50만 원을


급하게 빌렸고 병원진료를 봤다 그냥 의사 한번 보는 게 60만 원이라니…. 우리나라 의료복지가 정말 좋은 생각이 들었다. 진찰을 보고 나서도 의사는 심박수와


혈압이 정상이라며 나에게 그냥 수분을 보충해 주는 주스를 얼린 얼음을 주고 있다가 가라고 했다. 하지만 나에게 탈수는 남들보다 위험하다.


한국에 있을 때 코로나에 걸리고 탈수 왔었는데 10킬로가 빠지고 1주일 동안 구토에 시달려 24시간 동안 헛구역질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애기를 의사에게 진료할 때


얘기를 했었지만 수액을 넣어주던가 약을 넣어주는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그렇게 있다 내 구토는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고 빈도가 늘기 시작했다.


하나 간호사는 구토 봉지만 바꿔주고 원인을 해결해 주려 하지 않았다. 더는 못 참을 거 같았던 나는 간호사에게 가 한국에서 있었던 탈수 얘기를 하며 약을 투여해 달라 했더니


그제야 구토억제제를 투여해 줬다. 그전에 피 샘플을 채취했는데 채취 후 지혈을 깜빡한 채 그냥 간호사는 갔다. 이게 맞는 건가,,?? 의료인이 감염에 중요한 소독과 지혈을 깜빡하다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 후 서류를 작성하는데 펜도 안 줘서 내가 펜을 달라했더니 기다리라고 짜증 냈다.

십 분에 지나도 주지 않길래 다시 물었지만 자기네들은 펜이 없다고 했다.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이다 ㅎㅎ 정말 화났다. 순간 성질을 못 죽이고 나도 붉혀지는 얼굴을 하며 아픈 몸을 이끌고 따졌다. 너네가 사인하라고 서류 주고 펜도 없으면 나보고 뭐 어쩌라고 하는 거냐고


그제야 펜은 갖다 주었다. 정말 실화이다….. 그렇게 나는 호전된 몸을 이끌고 호스텔로 돌아와 자려했지만 속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그렇게 한 두어 시간 자고


일어났다. 아침에 되자 에어컨은 또 꺼졌고 나는 땀을 줄줄 흘리며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을 먹고 억지로 바나나 몇 개를 먹었다.


많은 한국인 누나들과 외국인 친구들이 찾아와 나를 걱정해 줬다. 나는 정말 남걱정시키기 싫어하고 아픈걸 티 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인데 정말이지 너무 아팠다.


가족도 아닌 나를 걱정해 주니 마음에 정말 따듯해졌다. 하지만 여기는 분위기 특성상 쉬는 날인 금,, 토, 일은 정말 시끄럽다 파티를 여는데 새벽 5시까지 스피커를 틀어둔다.


아프지 않을 때는 정말 재밌지만 아프면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더군 더 나 내방은 8인실인데 유독 시끄러운 방이다 여자들과 남자들이 같이 쓰는 혼성방인데


다른 방 친구들이 와서 수다 떨고 같이 자고 가고 그런다. 내 침대를 그런 문 바로 옆인데 불이 커져도 수시로 들락거리고 떠든다 아픈 나는 정말 스트레스받았다.


정말 한국에 돌아가고 싶었다. 몸에 근육도 다 빠지자 멘탈은 다시 부서졌다 주에 180불이나 내며 9시간 반동안 극한의 노동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다음날 구토가 멈추었고 나는 크래커를 조금씩 자주 나눠먹었다. 그러니 설사도 멈추지 시작했고 점차 호전되기 시작했다.


다음날은 샌드위치를 먹었고 다음날이 돼서는 라면도 먹게 되었다. 결국에 완치를 한 것이었다 하지만 몸에 힘이 정말 없었다. 나는 바로 헬스장을 가 등운동을 했지만


20분 후 식은땀이 나 멈추게 되었다 거울을 보자 한심했다. 거의 1주일간 장염에 시달려 몸의 컨디션은 최악이었고 성장하고 있던 몸은 홀쭉해져 있었고


다리도 얇아져 있었다. 나는 미친놈처럼 역발상을 했다. 이 모든 걸 즐기자 고통을 즐기자 나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미쳐보자 그렇게 또 한 번 나 자신과의 싸움은 십작됬다.


일요일에 시작된 장염은 일요일인 오늘 회복되었다. 내일이면 또 일을 간다 근데 우리 방에 감기가 돌아 나도 기침한다….. 이게 뭔 일일까……미치지 않으면 패배한다.


죽을 거 같지만 난 여기서 승부를 볼 거다. 죽어도 털 리에서 죽는다. 최소 3개월간 주 천불 벌며 돈을 모아 세컨드비자를 따고 떠날 것이다. 내 미래의 나에게 당당하고 싶다.


아 또 깜빡한 게 있는데 장염 걸리고 계속 전화로만 회사에 전화해 못 갈 거 같다 전하다 잘릴 거 같아 직접 가서 말하려 가서 말했는데 그날 12시까지만 일해달라 자꾸 나에게 부탁했다.


그때 거절했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때 일을 하고 나서 탈수가 왔기 때문이다. ㅎㅎ 미련한 나이다. 아무튼


다음 주 금요일에 이탈리아 친구인 로렌소가 파스타 만드는 법을 알려주기로 했다. 진짜 정통 이탈리안식 파스타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ㅋㅋ 한국에 돌아가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진짜 파스타를 해줄 생각에 기분이 좋다. 난 반드시 성공한다.

정말 극한에 상황들이지만 변태처럼 즐기지 않으면


밑으로 떨어지는 일밖에 없다. 이상 글을 마치며 나의 근육과 멘탈은 3달 후 더 성장해 있을 것이다. 안녕


아프기 전인데 잘 크고 있었는데 ㅠㅠㅠ


여기가 호스텔이다 영화에 나오는 미국 감옥 같다

나중에 따로 내 유튜브에 자세히 올릴 거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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