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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

내 마음속 내란

by Steven Shin

나는 굳게 다졌던 내 결의 바나나농장에서 3달 버티기에 실패했다. 장염에 걸려 토를 한 이유로 모든 게 하기 싫어졌다.


그런 나약한 나의 모습에 또 한 번 절망을 했지만 원래 호주의 온 목표인 페인트를 구하던 도중 숙식 제공에 하루에 250불이나 주는 곳에서 연락이 왔다.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닭장 같은 셰어를 접고 가려 던 도중 직원은 나에게 2주 치를 안 냈다며 300불을 요구했다.


물론 나는 냈다 일주일 전에 내가 먼저 물어보고 내 비자카드로 결제한 기억이 또렸했다 하지만 내 결제 내역에는 해외대금결제라는 문구만 있을 뿐 정확한 이체 경로는 나와있지 않았다.


그걸 안 직원은 내게 계속 요구를 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300불을 결제했다. 더불어 디파짓인 보증금 300역 시 되돌려 받지 못했다. 총 50만 원을 사기당한 샘이었다.


그렇게 비행기 30만 원을 결제하여 케언즈에서 시드니로 넘어온 나는 바로 일을 시작했다. 호주 현장에서는 화이트카드가 필요한데 나는 없는 상태에서 일하게 되었다.


일의 장소는 시드니에서 4시간에서 5시간 차로 가야 하는 이든이라는 지방인데 이든으로 가기 전 사장님의 집에서 하루 자게 되었었다.


사장님의 집은 마치 영화에 나오는 집 같았다. 마당에 수영장 차고에 집내부는 고급 하우스 같았다.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여기서 페인트 기술자 되면 하루에 400불은 기본이야(한화로 37만 원 정도) 500불도 받아 연장하면 700불 800불까지 받아


잘 배워봐 “ 그렇게 나는 다음날부터 일을 시작했고 운 좋게 처음부터 붓을 잡게 되었다. 첫날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하지만 사장님은 페인트 전문으로 하는 분이 아니었고


목수부터 인테리어 화장실까지 다 하시는 정말 대단한 분이었다. 다음날부터는 유리 옮기고 나무 자르는 거 보조하고 바닥에 흘린 페인트자국을 커터칼 날만 손으로 쥐고 지웠다.


손가락이 뜯어질 거 같았다. 커터칼도 아니고 커터칼 날만 쥐어주다니…. 다음날부터 사장님은 말을 놓으시더니 욕을 하기 시작했다. “야 씨 데모도가 왜 걸어 다녀”부터


모든 것이 처음인 나에게 한 번에 모든 걸 이해하기를 요구했다. 장비를 헷갈릴 때면 고함을 지르며 “씨발 ㅈ같네 집에 가고 싶냐”등 온갖 욕을 하기 시작하셨다.


하지만 난 괜찮았다 나는 배우는 사람이고 나중에는 기술자가 되면 내가 승리라고 생각했기에 일을 나아갔다.


하지만 욕의 빈도와 고함은 셀 수가 없었고 멘털이 털린 나는 포기하고 그만두기로 했다. 그렇게 3일을 일했고 3일 일한 일당은 오버타임까지 해서 1000불이었다. (한화로 거의 100만 원)


그렇게 사장님은 정말 버스도 하루에 한 번 오는 시골에 나를 버리고 떠났고 나는 털린 멘틀을 잡지 못하고 어리바리하던 도중 사장님께 전화가 왔다.


”어 디야“!


아까 거기요..


“”기다려 “”


그렇게 사장님은 나를 다시 데리러 오더니 바다가 보이는 숙소 테라스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셨다.


“이런 거 버티면 다 성공하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대부분 못 버텨”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한 번에 이해가 같다. 반복되는 욕과 육체적으로 힘든 근무 환경과 고막을 찢는 듯한 소음에도 장비도 지급하지 않고 진행했다


심지어 커터날만 쥐어주고 바닥자국을 지우라니…


그렇게 다음날 나는 마음을 다시 잡고 현장에 뛰어들었지만 쉽지 않았다. 그날 나는 새벽 2시에 케리어를 들고 속된 말로 추노를 했다 ㅠㅠ


그렇게 다시 버스를 타고 6시간을 와 숙소를 잡고 12인실에서 일주일간 잡을 구하며 화이트 카드를 수료했다

수료한 이유는 정말 나는 돈이 없었기에 한국을 돌아갈까 생각을 하고 있던 도중 페인트만 전문으로 하는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렇게 나는 덥석 12시에 혼자 영어 사이트에서 예약을 해 다음날 바로 교육을 받았다. 보통 많은 사람들이 한국 교육청에 가서 한국어로 따는데


나는 절박한 마음에 제일 빠른 예약을 해 선택권이 없었다. 다행히 무사히 수료를 하고 집을 구하기 시작했다. 기본시작이 200불이었다 주에 200불.. 한 달이면 거의 80만 원 돈이다.


내 수중에는 1400불과 저번에 병원에 가서 내야 하는 내 주식계좌에서 환전한 2400불이 전부였다.

그렇게 나는 병원비 2740불(한화로 240만 원)을 내고 내수중에 남음 돈은 천오백 불 언저리였고(140만 원)


일하기로 한 회사에서는 4일 뒤인 월요일부터 출근하라는 문자를 받았다. 그렇게 운 좋게 나는 발품을 팔아 리드컴에 주에 150불인 컨디션 좋은 방을 구하게 되었다.


보증금 300불을 냈고 이제 정말 천불 언저리다…2주 치 내면 800불 정도 남는데 이걸로 2주를 버텨야 한다.

하지만 당연히 버티겠지만 이젠 정말 일을 하지 않으면


생계가 위험하다. 기술과 영어를 배우고 힐링을 하러 온 내가 노숙자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다 웃으며 뭘 그렇게 까지 생각하냐 하겠지만


물론 내 주식에 몇백이 있지만 이건 한국 가면 한 달 생계도 안된다 방 보증금을 내면 끝이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사실 난 한국에 가면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경찰인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5살 때 이혼해 재혼을 해서 각각 새 가정을 꾸리고 산다. 이 말은 즉슨 그 집에 들어가서 못 산다는 뜻이다.


아빠라는 작자는 연락도 안되고 엄마는 항상 미안하다는 말만 한다. 항상 긍정적으로 상황을 헤쳐나가려 해도 일어설 힘이 나지 않는다.


정말 정신이 지친다. 강인하고 멋있고 지혜롭고 부자가 되고 싶지만 빛이 보일 때마다 항상 장애물이 나타나 나를 괴롭힌다.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으면 아침에 식빵 6개에 계란 4개 점심에는 파스타, 오후에 또 라면 먹고 3시간 뒤에 햄버거 세트에 아이스크림 또 글을 쓰고 있는 지금 12시에는 또 라면에 계란 4를 먹었다.


그 와중에 운동은 갔다 왔다. 운동이라도 안 하면 정말 미칠 거 같기 때문이다. 시드니에 정말 노숙자가 많은데 항상 손에는 술과 담배가 들려있고 카트를 끌고 다닌다.


문득 지나가며 깨달은 게 저들은 열심히 살지 않아서 저런 게 아니구나 일어설 힘이 없는 거구나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게 정말 가깝게 느껴졌다.


물론 다음 주부터 견디고 3개월 6개월이 지나고 나면 별일 아닌 듯이 털고 일어나겠지만 지금은 기술도 돈도 일도 아직 제대로 시작 못했기에 모든 것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


무너졌을 때 의지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나의 불안함을 더 키우는 거 같다 실패하면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내 이야기지만 모든 걸 극복한 미래의 내가 보고 추억을 새기라고 글을 남긴다.

난 리스크를 감수하는 게 싫은 사람인데 자꾸 감수하게 된다. 호주에 온 것도 실패하면 돌아갈 때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목숨줄이 하나인 내 삶을 자꾸 내던진다.


나에게 그렇게 뭐라 하던 사장님은 밉지 않았다. 멋있었다. 독기와 오기로 거기까지 힘든 걸 참고 올라간 거니까


또 무너졌지만 내일부터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다. 이토록 스트레스 심한 적은 처음인 거 같다 없던 아토피도 생기고 잠이 안 온다.


정말 내가 패급이라고 생각은 안 했는데 정말 사회 부적응자 같다. 내 상황 탓만 하는 찌질이처럼


이게 20불짜리 피자이다. 포장을 시켰는데 다 타서 먹지도 못한다.


그래도 항상 발은 뻗고 잤는데 생계가 위험해지고 점점 밑으로 떨어지기만 하니 발 뻗고 잠을 못 자겠다.


사실 글을 쓰게 된 것도 호스텔에 에어컨에 안 나와 습한데 잠이 안 와 짜증 나서 생각을 정리할 겸 글을 써본다.


확실한 건 이 모든 상황은 내가 만든 것이고 내 선택이다. 누구의 잘못도 없다 내 잘못이다. 한국에서 안주하며 평범한 일상을 살 수 있었다.


발전하겠다고 온 것도 나니까 불평은 이만 이쯤에서 끝내야겠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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