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동겉절이 겨울 끝에서, 봄을 먼저 먹는 방법

아무 말 없이 버텨낸 것들에 대하여

by jasmin

아직은 바람이 차갑고
코끝이 얼얼한 날들이 이어지는데,
달력을 보니 어느새 2월이더라.


계절은 늘
우리 생각보다 한 발 먼저 움직인다.


너는 아마
봄동이 왜 특별한 채소인지
굳이 생각해본 적은 없을 거야.
마트에 가면 늘 있는 배추 중 하나처럼 보이고,
겉절이는 언제든 만들 수 있는 반찬 같으니까.


하지만 봄동은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야.
겨울이 가장 깊을 때,
땅이 얼어붙고 바람이 매서울 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버텨낸 채소야.
그래서 속이 노랗고,
그래서 맛이 달고,
그래서 절이지 않아도 되는 거야.


며칠 전, 은행에 다녀오는 길에
길가 좌판에 앉아
봄동을 팔고 계시던 할머니를 만났어.
아직 찬 기운이 가시지 않은 오후였는데,
할머니는 봄동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계셨어.



얼어붙은 땅을 뚫고 올라온 봄동은
속이 노랗고,
손에 닿자마자
아, 이건 제철이구나 싶더라.
아직은 겨울의 끝자락인데
그 노란 속을 보고 있으니
봄을 먼저 만난 기분이 들었어.
그래서 그날은
다른 생각 없이
봄동겉절이를 해먹어야겠다고 마음먹었지.


이 레시피는
대단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아.
세 가지만 기억하면 돼.
절이지 말 것.
꾹꾹 주무르지 말 것.
미리 무쳐두지 말 것.
그럼
엄마가 늘 해주던 방식으로
봄동겉절이를 만들어볼게.


엄마의 봄동겉절이 (2인분)



재료
봄동 200g
(작은 것 1~2개 또는 큰 것 1개)
양념
고춧가루 3큰술
매실청 2큰술
설탕 1큰술
멸치액젓 2큰술
참치액젓 1큰술
다진 마늘 1큰술
참기름 1큰술
통깨 약간
재료는 많아 보여도
봄동이 주인공이라
양념은 늘 뒤에 있어야 해.


만드는 법 (엄마의 방식으로)


1. 봄동 손질하기
봄동은 뿌리 쪽을 한 번에 잘라내고
잎은 하나씩 조심히 떼어내.
겉잎이 조금 억세 보이면
속잎이랑 섞어 먹기 좋게
큰 잎만 반으로 잘라줘도 돼.
찬물에 여러 번 헹궈
흙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씻고,
체에 받쳐
물기를 충분히 빼줘.
이건 꼭 기억해.
물기가 남아 있으면
양념이 아무리 맛있어도
제대로 묻지 않아.
2. 양념 만들기
양념은 복잡하지 않아도 돼.
고춧가루, 멸치액젓, 참치액젓,
매실청, 설탕, 다진 마늘을 넣고
한 번에 섞어.
그리고 잠깐,
5분 정도만 그대로 둬.
고춧가루 색이 자연스럽게 살아나.
불 앞에 설 필요도 없고,
볼 하나면 충분해.
3. 봄동겉절이 완성
큰 볼에 봄동을 담고
양념을 한꺼번에 붓지 말고
조금씩 나눠 넣어.
손끝으로
정말 살짝 들어 올리듯,
아기 다루듯 버무려.
여기서 욕심내서
꾹꾹 주무르면
봄동은 금방 지쳐버려.
간을 보고
조금 부족하다 싶으면
액젓을 아주 소량만 더해.
마지막에
참기름 한 바퀴,
통깨를 톡톡 뿌리면
그걸로 충분해.
그래야
봄동이 살아 있는 맛이 나.


더 맛있게 먹는 방법


봄동은 절이지 않고
생으로 무쳐야
아삭함과 달큰함이 살아나.
그리고 숨이 빨리 죽는 편이라
먹기 직전에 무치는 게 가장 좋아.
밥 위에 듬뿍 올려
봄동비빔밥으로 먹어도 좋고,
샐러드처럼 가볍게 곁들여도
참 잘 어울려.


혹시 나중에
네가 혼자 밥을 먹는 날이 오면,
괜히 마음이 허전한 저녁이 오면,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오면
이 레시피를 떠올렸으면 좋겠어.


“아, 지금은 봄동 철이구나.”
그 생각 하나만으로도
오늘 하루를
조금은 잘 챙겼다는 기분이 들 거야.


제철 음식은
몸을 위한 음식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 같아.
아무 때나 먹을 수 없는 걸
지금 먹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늘이 괜찮은 하루였다는 뜻이니까.



이 봄동겉절이는
맛있게 만들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
잘 살아온 봄동처럼,
너도
네 속도를 지키면서
천천히 잘 살아가면 돼.
이 계절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처럼
너의 지금도
나중엔 분명히 그리워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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