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삭은 파김치와 돼지고기의 만남
올해 만 40세인 아들이 처음으로 반찬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수요일 연락을 받았지만 담을 여가도 없고 새 고춧가루가 없어 일요일에 담아 월요일 일찍 보내기로 했다. 금요일 오후에 조금 일찍 마치는 날이라 만들 수도 있었지만 배달이 문제였다, 결국 이번 일요일에 며느리가 먹고 싶은 것인지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월요일 보내기로 작정했다.
며느리는 우리 집에 오면 입맛에 맞는 것이 별로 없었다. 세상에는 맛있는 음식이 많고 많아 별로 걱정은 안 되었다. 진주 중앙 시장 수복빵집부터 고기꼬지, 경상대 뒤쪽 호떡까지 모르는 곳이 없었다. 결국 가장 애착하는 맛집은 ‘망경식육식당’이 되었다. 그 집의 육회 맛에 푹 빠져 올 때마다 가서 먹었다. 그러던 중 며느리는 내가 담아주는 파김치 용도를 찾아냈다.
돼지고기를 파김치와 함께 볶는 것이었다. 고기 맛도 잡아 주고 간도 적당하고 돼지기름과 만난 파는 풍미를 더하여 신 파김치는 온데 간데 없고 맛있는 파로 변신하여 입 안으로 계속 불러들이는 맛이 된다. 삭은 파김치를 잘 못 먹어 냉장고에 묵혀 둔 파김치를 며느리는 돼지고기 볶음으로 뚝딱 다 비워 버렸다. 다행이었고 뿌듯했다. 강렬한 경상도 반찬만 만들어 먹는 내 식탁에서 며느리도 좋아하는 반찬이 생긴 것이었다. 가끔 파김치를 담아 주었더니 활용을 잘 했다. 그래도 먼저 반찬을 해 달라고 한 적은 없었는데 며느리가 임신하고 나니 아들은 이제 드디어 남편 구실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파김치는 간단하게 담을 수 있다. 우선 파를 다듬는다. 물기를 빼면서 양념을 준비한다. 파는 자체가 강한 맛이기 마늘이나 생강 양념을 하지 않고 약간 단 맛을 추가한다.
내가 담는 파김치는 모임에서도 유명해서 여름철 야유회 갈 때 담아주라는 청을 받기도 했다. 젓갈보다는 부드러운 다시마 간장으로 단맛을 더해 담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멸치 액젓을 조금씩 넣어 담기 시작하다가 이번 여름철엔 멸치 액젓으로만 간을 맞추어 담아 먹었다. 며느리 입덧한다고 보내지도 않았는데 얼마 전 이전에 보낸 파로 고기를 볶아먹는 사진을 보내왔다. 입덧을 멈추긴 했으나 아직 특별한 개운한 맛이 당기나 싶다. 멀리 사니까 바로 못 담아주는 아쉬움은 있다.
아침 장에 나가서 파를 샀다. 일요일엔 아침장이 약하게 서기 때문이다. 토요일 낮 계획과는 상관없이 아침 장에서 파를 샀다. 일요일 새벽에 일어나 파 두 단을 펼쳐 놓으니 적은 양은 아니다. 휴일이어서 여유가 좀 있어 안 깐 파를 샀다. 깐 파는 한 단에 15,000원, 안 깐 파는 12,000원이다. 시장에서 할머니들이 한 줌씩 까놓고 파는 것에 비하면 거의 두 배로 싼 것이다. 노동력의 댓가로 대금을 더 지불해야하는 것이다.
다행이 새벽 3시에 잠이 깼다. 파 두 단을 다듬고, 도라지를 까고 숙주도 가리고 어린 배추와 열무도 다듬어 놓았다. 연근도 껍질을 벗겨 물에 담가 놓았다. 5시가 넘어어서야 다듬는 일이 끝났다. 그 시간은 아래층 사람들이 달콤한 아침잠을 자고 있을지 몰라 나도 같이 쉬기로 한다. 수돗물 내려오는 소리가 거슬릴 수도 있다.
내 손으로 직접 식재료를 다듬지 않으면 안심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장을 봐 올 때마다 ‘아! 또 저질렀다.’ 후회하면서도 또 지나가면 다듬지 않은 것을 사고 있다.
파는 산지에서 바로 와서 그런지 하룻밤이 지났는데도 누런 잎도 하나 없이 싱싱했다.
우선 큰 대야에 넣고 맑은 멸치 젓갈을 넣은 후 숨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면서 고춧가루, 작년 가을에 담아놓은 고추청, 고구마 채 선 것을 준비하여 넣었다. 토요일 하루 종일 밖에서 지내고 일요일 파김치, 우리 집 열무 물김치를 담아야하는 부담 때문인지 젓갈을 넣을 때 생각없이 주욱 따른 것 같았다. 뒤적거려 간을 보니 짠 맛이 강하나 편이다.
표고버섯, 다시마 다싯물에 쌀 고운 것과 양파, 배, 마늘 몇 쪽을 널고 갈아서 파김치에 부었다. 그랬더니 간이 부드러워졌다. 잘 뒤적여 주고 조금 기다리니 숨이 한층 더 죽는다. 원래 부피의 3분의 1로 줄어든다.
걸죽하게 국물이 생기고 파는 잘 가라앉아 김치통에 담았다. 아들집에 보낼 것 한 통, 우리는 조금 작은 통에 남은 것을 담는다. 늦은 점심을 먹을 때 상에 올린다. 딸이 소리친다. “이 파김치 너무 맛있는데요.” 젓갈 냄새도, 파의 아릿한 매운 맛도 안 나면서 맛있다고 한다. 이번에는 쌀을 고우고 다싯물을 사용하여 양념물을 만들어 넣은 게 제 맛을 내는데 한 몫 한 것 같다. 이제 맛있게 먹을 일만 남았다.
큰 대야에 담고 젓갈을 넣은 후 고춧가루를 넣는다.
표고, 다시마 우린 물에 쌀 고운 것, 배, 양파, 마늘 몇 쪽을 넣어 양념을 만들어 넣은 파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