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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점선 Oct 17. 2024

석류가 있는 풍경

 우리 집 현관 입구에도 석류 그림이 걸려있다. 성산포 일출봉과 노란 유채 밭이 배경이 된 그림과 함께 우리 집에서는 비교적 밝은 톤의 그림이다. 시누이들이 학창시절 서예를 배웠다는 선생님의 서예 액자도 걸려 있고 마흔 살 아들이 돌 되는 해에 선응사에 들렀다가 주지 스님께 받은 액자도 걸려있다. 집에 있던 여러 개의 병풍을 고미술품 가게에 다 보냈다. 영화 촬영 때 배경으로 사용하기 좋은 12폭 액자도 가고 이제 남은 것은 제사 지낼 사용하는 반야심경이 적혀있는 한 편 뿐이다. 은초선생의 서예실은 비봉산 아래에 있었고 많은 학생들이 서예를 배우러 갔다. 나도 어느 서예실에서 교육대학에 가기 위한 준비로 서예를 잠깐 배웠으나 기초만 배우고 그만 두었다. 태권도도 교사로서 필요하다고 보고 몇 개월 배우기도 했다. 배우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도전했으나 내 전공이 되지 못했다. 전공이 되려면 그것이 집중하여 나를 투자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일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소식을 들으면서 전문이 된다는 것, 한 가락 하기 위해서는 저렇게 대물림을 받을 정도로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차르트도 5대를 이어온 작곡가 집안이라는 점도 유전인자에 녹아있는 음악 DNA가 유전되어 왔다는 걸 증명하는 이야기다. 집안 분위기가 사람을 만든다는 것이다. 독서 교육에서도 부모의 독서 태도가 자녀의 독서 태도이다. 우리 형제도 5형제인데 대체적으로 작가는 아니지만 인문적인 소양이 필요한 교육계, 신문사 등에서 근무하고 있다. 내가 결혼할 때만 해도 초 ・중 ・고 학생이었는데 이제는 다들 막내 동생의 막내딸이 올해 대학교에 입학할 정도로 나이가 들었다. 직장에서도 이제는 최고 연장자 쪽이 되어 벌써 퇴직을 앞두고 있다. 내가 작년에 퇴직한 후 동생들도 곧 뒤를 따를 것이다. 하기야 아들이 벌써 마흔이 되고 직장에서도 상급자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내 눈에는 아직 한창인 20대의 아들 그대로인데 아들은 요즘 곧 만나게 될 제 아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풀어 지내고 있다. 얼마 있지 않아 아들도 귀밑에 흰 새치를 빛내며 현관문을 들어설 것이다. 내 형제나 아들이 큰 포부 없이 평범한 직장에서 가정을 꾸리고 부부끼리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은 참 보기 좋다. 막내 딸 말처럼 우리가 재산도 별로 없고 사회적으로 별로 잘난 집안은 아니지만 집안에 별 탈이 없고 편안하게 살고 있는 게 제일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막내 딸은 어릴 때 부모님의 사랑을 너무 듬뿍 받아서 아무것도 부러울 게 없다고 한다. 행복수치가 최고치를 다했기 때문에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행복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과 모든 상황도 그 행복수치를 낮추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평범한 가정들이 모여서 마을을 만들고 그런 마을들이 모여 나라를 구성하고 유지한다고 생각한다. 가진 자와 권력자들은 이런 평범한 사람들의 소중함을 모른다. 세상이 그들이 구성하고 있는 줄 안다. 자식 놓고 자식 안 굶기고 평범한 교육 시켜 가정을 꾸리고 또 자식을 놓고 그 자식들이 가정을 이루고 노력하여 또 한 마을을 구성하여 나가기 때문에 국가가 유지된다고 생각한다. 

 올 가을은 시작은 너무나 더웠다. 건조하고 뜨거운 기온이 마치 남유럽 기온과 비슷하였는지 온 동네에 있는 담 너머에서는 석류나무에 석류가 무성하고 무화과가 유난히 잘 자랐다. 올해처럼 석류가 붉게 잘 익는 것을 보지 못한 것 같다. 

 어릴 적 시골 집 장독간에도 석류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석류나무는 열매 안이 수많은 씨앗으로 이루어져 있어 다산의 의미가 담겨 있다. 거의 집집마다 석류나무를 심어 가을이면 담장이나 장독간에서 붉고 영롱하게 익은 석류가 고개를 숙였다. 지금 일하러 다니는 학교 옆 일반 주택가에도 서너 집 걸러 석류가 익어가고 있다. 우리 아이들도 그냥 깨끗한 것만 좋아하지 식물을 가꾸지 않는다. 하지만 식물을 키우는 마음은 자식을 키우는 마음과 같다. 늘 바라보고 잘 살아가길 바라면서 손갈을 줘야하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이 있듯이 반려식물도 있는 것이다. 이 동네에는 신경 써서 나무나 화분을 가꾸는 집이 더러 있다. 한 여름 더위 속에서도 제랴늄이 너무 곱고 석류나무는 가을이 되자 굵고 붉은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담벼락에 가지를 기대고 서 있다. 이 풍경을 보면서 나는 마치 어릴 적 시골집 석류를 올려다보던 때가 떠올라 너무 너무 행복하다. 긴 화분 모양의 석류꽃 모양이 다른 꽃잎과 달라서 어릴 때부터 나의 눈갈을 끌었다. 나는 젊었을 때부터 식물, 색조, 자연 등을 보면서 좋아했다. 지치지 않고 힘이 있는 것도 좋아하는 것들과 늘 가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을이 점점 익어가는 요즘, 가끔 골목길을 걸어본다. 골목길 안에는 석류나무가 있고 사람이 살아가는 느낌이 든다. 9월에서 10월 사이 모든 풍경은 풍요롭고 살아가는 모습이 평화롭다. 세월은 빠르게 흐르지만 사람들은 소중한 것들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고 있다.                

나만 좋은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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