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적으로 서자 홍길동이 된 나
태어났더니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아니, 그전부터.
태어나기 전, 엄마 뱃속부터 나는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태어났더니 하나님이 아버지였다.
왜 그런지 잘 몰랐다.
주변에서 다들 그렇게 부르기에
나도 따라 “아버지”라 불렀다.
사춘기가 강력하게 시작되었고,
착한 아들이 되기도 싫었고,
어려운 가정 형편도 싫었고,
나아지지 않는 상황으로 하나님이 싫었다.
내 마음대로 살기 시작했다.
자격지심, 피해의식,
없어 보이고 싶지 않은 방어기제,
약한 모습 보이지 않으려 객기 부렸던
나의 괜한 자존심으로
악에 받쳐 살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는 늘 아버지 탓을 했다.
“왜 내게 이런 상황 주셨나요?”
“이 낡은 집, 언제 떠날 수 있나요?”
“왜 우리 집은 돈이 없나요?”
“엄마 아빠 고생했는데, 왜 늘 돈이 없나요?”
교회는 그냥, 원래 다녔으니까.
가족 모두가 갔던 것이니까.
육의 출석은 열심히 했지만,
영의 가출도 열심히 했다.
어쩌다 여름성경학교와 같은
수련회를 다녀오면,
당시에만 조금 달라지는 척했을 뿐,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생각대로 살았고,
다시 또 내 습관대로 살았다.
기도해도 나아지지 않는 이 상황이 싫었다.
교회 안 다녀도,
나보다 더 나쁜 짓 많이 하고 살아도
잘 먹고 잘 사는 놈들이 많은데,
왜 나는 교회도 다니는데
나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냐며 한탄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냐며,
당신 나 사랑하는 것 확실하냐며,
아버지가 친아버지 맞냐며 따져 물었다.”
당신, 즉 나의 아버지는 대답이 없었다.
“아니, 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야 하지
여태껏 말도 들어주지 않았는데.
내가 당신을 ‘아버지’라 부를 때,
옆에서 듣는 친아버지는 서운하지 않을까?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면,
그렇게 불리는 일은 참 서운하고 아플 것 같은데.”
나는 더 이상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확신만 가득한 무지함 속에서,
눈이 감긴 채,
자발적인 서자가 되어,
자의적인 홍길동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