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탈주하는 아이들 1
나는 항상 생각했다.
기숙 학원은 수능이라는 전쟁터에
독재자가 고안하고 만들어 낸 창살 없는 감옥이라고.
공간이 가져오는 특유의 분위기라는 게 있다.
기숙 학원 건물을 내 느낌대로 말하자면,
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라는 조건을 달아 놓은 이유는 어떤 아이들은 이 공간을 별 무리 없이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생활했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들은 자주 웃는 모습을 보여줬다. 반면 나는 이 건물을 전쟁광인 어느 독재자가 고안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냥 사람 좋게 웃을 수만은 없었다. 대신 더 많은 수의 학생들이 마음 편히 웃을 수 있도록 따뜻한 관심을 주려 노력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고를 막기 위한 나의 본능이 발동한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서 있는 이곳엔 산책로와 농구장이 있다. 드넓은 축구장도 있지만, 그런 놀이 공간마저 어찌 된 영문인지 희미하게 회색빛이 감돌았다. 슬쩍 보면 일반 학원과 비슷해 보이는 건물이지만, 전혀 다른 불길한 분위기를 풍겼다. 마치 수용소 같은 건물은 스무 살 초반의 파릇파릇하고 호기심 넘치는 생명체들에겐 가혹하기 그지없는 닭장 같은 공간이 된다. 어떤 아이들은 내 앞에서 “꼬꼬댁”하며 날갯짓을 하기도 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꼬꼬댁”하고 닭 소리를 내며 내 지갑을 털어갔다. 간식을 사주면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바보같이 난 그게 좋았다.
하지만 돈으로 자유를 살 수는 없었다. 아이들은 결국 진정한 자유를 꿈꿨다. 누구든 이 삭막한 장소에 들어와 보면 알게 될 거라고 장담한다. 자유를 빼앗긴다는 감정에 대해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소홀했는가를 말이다. 독재자의 건물에 제 발로 찾아온 20대 초반의 아이들은 이내 자유를 향한 애타는 갈망에 빠져버리고 만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순진한 생각으로 기숙 학원에 온 가엾은 영혼들. 아이들은 이제 가슴속에 잠자고 있던 자유에 대한 간절하고 애틋한 심장의 요동침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3년간 경험한 바에 따르면 학원을 몰래 탈출하는 아이들에게는 몇 가지 법칙들이 존재했다.
탈주 방식은 총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이렇게 다채로운 색상을 띈 아이들의 탈출 방법을 지금부터 간단히 소개해 보려 한다.
학원을 탈출하기 전의 아이들에게는 거의 발버둥에 가까운 몸짓이 포착된다. 눈빛에선 마치 첫 전투를 기다리는 군인처럼 긴장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이들에게서 가장 먼저 달라지는 것은 바로 태도다. 수감자들이 억지로 표출하던 선생님에 대한 예의가 점점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생각해 보라 그 어떤 탈옥수가 탈옥 전날 간수들에게 깍듯한 예의를 갖추겠는가? 선생님에 대한 눈빛이 거칠어지는 학생들은 곧 탈출을 감행한다고 보면 된다. 그때부터 선생님들은 그 학생의 행동에 예의주시하게 되는데, 아이들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는 말이 괜히 떠도는 것이 아니다. 선생님들은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탈주 학생들을 잡아낼 준비를 하고 있다.
도망치는 아이 중에 감성이 풍부한 아이들은 학원에 편지를 남긴다. 반성문 같은 장문의 편지를 쓰고 도망가는 학생도 있고, 그동안 자유를 빼앗겼던 억울한 마음을 한자한자 적어 내려간 심금을 울리는 쪽지를 남기고 가는 학생도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장문의 반성 편지도 그렇고, - 의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 마치 시와 같이 운율이 살아있는 탄원서 같은 쪽지도 그렇고, 항상 서두는 같은 말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감사한 마음을 직접 표현해주면 오죽 좋으련만 자유를 꿈꾸는 아이들은 왜 그 감사한 마음을 탈출로 전하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또 한가지 감성 편지형 아이들의 공통점은 결국 밝은 아침이 되어서야 탈출을 실행에 옮긴다는 것이다. 쇼생크에서 탈출하는 ‘앤디’처럼 완벽한 탈출을 꿈꿨다면, 모두가 잠든 야밤에 탈옥을 감행해야 일리에 맞거늘 아이들은 꼭 낮에 탈출한다. 두 번째 의문이 든다. 그나마 내가 예상한 이유를 기숙 학원에 다닌 사람들이라면 쉽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대부분의 기숙 학원은 산속 깊은 곳에 똬리를 틀기 때문이다.
3년간의 노하우로 감히 말한다. 아침에 ‘작별 편지’를 발견했다면 아이들은 아직 근방에 있다. 감성이 풍부한 아이들은 야밤에 절대 도주하지 못한다. 밤의 감성은 공포를 몰고 온다. 새벽 공기는 심장을 멈추게 하고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칠흑 속에 묻힌 저 멀리 보이는 가로등 불빛은 결코 닿을 수 없는 어머니의 품이나 마찬가지다. ‘눈에는 보이지만 결코 갈 수 없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떠나는 아이들의 마음에 슬픔을 불러일으킨다. 이와 같은 공포와 슬픔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감성 편지형 아이들은 새벽 6시, 아침 점호 전, “꼬끼요” 닭들이 울어대는 동이 막 트기 시작한 그 새벽 미명에 기숙 학원을 떠나 쓸쓸한 발걸음을 옮긴다.
교무실 선생님 책상 위에는 A4용지가 가지런히 접힌 채 놓여 있다. 그 A4용지를 처음 발견한 선생님은 첫 줄 “선생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를 읽게 될 것이다. 그럼 이제 미션 타임 어택이 시작된다. 편지를 손에든 선생님은 마지막 줄 ‘from. 누구누구’라는 학생의 이름만을 확인하고 곧장 정문으로 전력 질주를 해야 한다. 그러면 열 명 중 아홉 명이 정문에서 고향을 향한 귀향의 꿈을 접어야 한다.
은 선생님이 뻔히 보는 코앞에서 학원을 나가는 유형이다. 그렇게 빨리 뛰지도 않는다. 아이들은 제발 ‘수상한 나’를 좀 봐달라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선생님 주위를 서성이다가 선생님이 자기를 보고 있다는 확신이 들면 달리기 시작한다. 기숙 학원에 근무했던 나 스스로도 대놓고 도망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이 광경을 읽으며 믿으라고 강요는 못 하겠다. 아이들은 아슬아슬하게 잡힐 듯 말 듯 마치 연인들끼리 하는 ‘나 잡아봐라 놀이’처럼 일정 간격을 두고 추격전을 펼친다. 여기서 선생님의 달리기가 뒤처지면, 선생님을 기다리기까지 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토끼와 거북이의 거만한 토끼처럼 말이다. 교만한 토끼는 사냥꾼의 손에 목덜미를 붙잡힌 채 교무실로 향한다. 교무실로 온 아이는 부모님께 전화를 건다. ‘나잡아 봐라 아이’는 무미건조한 시멘트 건물을 당장에라도 떠나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아이는 부모의 반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집에 가고 싶어서 부모님의 호출을 바라서 하는 행동이다. 대부분 부모는 토끼의 처량함에 못 이겨 도망자 토끼를 그리운 집으로 재분양받는다. 이런 일이 벌어져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 부모도 있지만 길어봤자 한 달 안에 아이는 자신의 목표를 이루고 만다.
이렇게 꾀가 많은 아이는 창의력이 넘치는 일을 시켜야 한다.
기숙 학원은 아이의 창의성을 길러 줄 수 없기에 아이가 떠날 결심을 한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