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3년 8월, 100여 명을 태운 한 척의 명나라 정크선이 규슈 남쪽에 있는 작은 섬인 타네가시마에 표착했다.
섬의 직부승인 니시무라 도키쓰라가 다가가 말을 걸었지만, 승객들과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그런데 승객 중 마침 명나라 유학자인 우펑(五峰, 오봉)이라는 사람이 있어 필담을 통해 사정을 알게 되었다. (이 우펑을 5장에서 언급한 왕쥐(왕직)와 같은 인물로 보기도 한다. 왕쥐의 호가 같은 한자인데다, 1540년엔 광둥성에서 큰 배를 만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상황을 인지한 니시무라는 도주인 타네가시마 도키타카의 거성인 아카오기까지 배를 예인하도록 주선했다. 덕분에 배는 8월 27일, 무사히 입항할 수 있었다. 당시 만 15세의 도주 도키타카는 우펑과 섬의 승려인 주죠인이 필담을 나누도록 시켰고, 이 배에 외국 상인 대표 두 명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두 사람의 이름은 무라슈쿠샤(牟良叔舎, Francisco Zeimoto의 음역)와 키리시타마모우타(喜利志多佗孟太, Crista da Motta의 음역). (키리시타의 경우, 원래 이름은 Antonio인데, 통역과정에서 크리스천이라고 이야기한 걸 이름으로 오해한 듯하다). 둘 다 남만인(南蠻人, 동양에서 포르투갈인과 에스파냐인을 가리키던 명칭)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생김새가 워낙 특이했다. 부리부리한 눈에 푸른 눈동자… 영락없는 오랑캐였다. 그때 도키타카의 눈에 또 다른 특이한 게 눈에 들어왔다. 남만인들이 가져온 요상하게 생긴 긴 나무자루였다.
도키타카가 긴 나무자루를 보고 궁금해 했다.
“이건 어디 쓰는 물건인가?”
“하하, 도주님. 아쿼버스(화승총)라고, 이 세상에 못 뚫는 게 없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프란시스코는 짐짓 자랑스럽게 답했다. 그의 말이 허풍이라고 생각한 도키타카는 핀잔을 줬다.
“세상에 그런 무기가 어디 있는가? 만일 참말이라면 한 번 시범을 보여 봐라. 정말이라면 큰 상을 내리지.”
“하하하, 뭐, 그러시다면.”
프란시스코는 자신만만하게 총 쏘는 시범을 보였고, 목표물을 정확하게 맞혔다.
― 탕, 탕!!
천둥번개 치는 소리에 도키타카를 비롯한 섬의 관료들이 모두 놀라자빠졌다.
“어이쿠야!”
“흐걱, 이, 이게 뭐야?”
도키타카로선 놀랠 노자였다. 그는 이 신무기에 순식간에 매료되었다.
‘이, 이 무기만 있으면 전쟁에서 이기는 건 따 놓은 당상이다!’
당시 일본은 전국시대라 생존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에 이처럼 놀라운 무기는 무조건 사야하는 것이었다.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말이다.
당연히 도키타카는 거금을 주고 포르투갈인들로부터 화승총 두 자루를 얻었다. 일본의 역사, 아니 동아시아의 역사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후 도키타카는 섬에서 제일가는 대장장이인 야이타 킨베에에게 총을 복제할 것을 명령했다. 주군의 명을 받든 야이타는 혼신의 힘을 다해 화승총 모방에 나섰다.
하지만 복제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총신은 어느 정도 모방하겠는데, 화승총의 방아쇠 구조를 완성하는데 결정적 난관에 부딪힌 것이다. 당시 동양에는 총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나사를 만들 기술이 없었다. (나사식 못은 범선 제작에도 필수적이기 때문에 이 기술이 없으면 대양 항해도 불가능하다. 선박에 싣는 물품들의 막대한 하중을 일반 못으로는 못 견디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구전 설화가 있다. 나사를 못 만들어 고민에 빠진 아버지를 돕기 위해 야이타의 딸인 와카가 포르투갈인과 결혼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포르투갈인이 딸을 주면 나사 제작법을 알려주겠다고 한 것.
딸의 제안을 들은 아버지 야이타는 한참이나 고민하다 결국 허락했다고 한다. 딸에게 무릎을 꿇으며 감사를 했다고. 그렇게 해서 마침내 야이타는 화승총 제작에 성공하고, 이후 타네가시마 섬은 화승총 제작의 메카가 된다. 물론 실제로 야이타의 딸이 포르투갈인과 결혼했는지는 알 수 없다. 믿거나 말거나.
이후 화승총은 일본 전국시대의 전쟁 행태를 완전히 바꾸어놓았고, 이 신무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오다 노부나가는 급성장해 거의 일본통일 직전까지 이르게 된다.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화승총은 임진왜란 초반 조선군을 상대로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했다. 1543년에 전수된 겨우 화승총 두 자루가 나비효과를 일으켜 엄청난 폭풍우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1543년은 인류 역사상으로도 매우 중요한 해인데, 바로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논문의 제목이 바로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 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인데 이게 워낙 천지개벽할 정도로 혁명적이었기 때문에 원래 '회전'이란 뜻에 불과한 'revolution'에 아예 '혁명'이란 의미가 더해졌다.)
포르투갈이 일본에 조총을 전래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내려 한다. 워낙 많이 회자되기도 했거니와 자료도 많아 독자 분들은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좀 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조총 전수도 중요하지만 유럽과 일본이 처음 만났고, 이 만남이 1회성이 아니라 연속성을 가졌던 게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잠시 쉬어가는 페이지로 일본의 지리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