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5.18민주화 운동)
-5.18 민주화 운동을 다룬 소설-
오빠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없이 제쳐진 이불을 내게 다시 덮어 주고는 잠을 청했다.
벌써 열두 해도 더 지난 일이지만, 오빠가 그려주던 반딧불이는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다. 두 차례의 휴교령이 있고 얼마 뒤, 오빠는 여행을 떠났다. 동화 작가가 되려면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며 1년간 여행을 갈 거라고 말했다. 어차피 잦은 휴교령으로 집에만 있을 바엔 아예 휴학하는 편이 더 나을 거라며 나를 설득했다. 아무리 철없던 나였지만, 당시 봉쇄된 광주를 벗어나 여행을 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임을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아무것도 물을 수 없었다.
출발 전 오빠는 내게 공책 한 권을 맡겼다. 그동안 써온 반딧불이 동화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이 책을 마무리해 동화책을 낼 거라고, 그러니 잘 보관해달라며 부탁했다. 나는 그 내용이 궁금했지만 단 한 번도 이 공책을 열어 보지 않았다. 오빠가 책을 완성하면 그때 보고 싶었고, 무엇보다 나에게 가장 먼저 책을 보여주겠다던 오빠의 말을 믿었다.
거짓말쟁이, 딱 열두 달만 여행하고 돌아오겠다던 오빠는 벌써 열두 해를 훌쩍 넘기고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돌아오지 않는 오빠를 더는 기다리지 않기로 다짐했다. 오빠의 꿈은 이미 이뤄질 수 없음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해왔던 것이다.
나는 주인 없는 이 공책을 펼쳤다. 낡고 뻣뻣해진 표지는 낙엽처럼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누렇게 물든 종이 위로 오빠의 필체가 드러났다. 공책에 반딧불이 동화에 관한 언급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건 1980년 광주를 기록한 오빠의 일기였다. 기간은 1980년 5월 17일부터 26일까지, 딱 10일간의 내용이었다.
휴교령으로 학교에 못 간 지 닷새 되는 날, 아버지가 나를 방으로 불렀다.
“상진아, 너 빨갱이처럼 절대 데모하면 안 된다. 알겠지?”
아버지 눈은 불안과 걱정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날 나는 문틈 사이로 아버지 등짝에 번진 시퍼런 멍 자국을 보았다. 오늘로 벌써 두 번째다. 한 번은 다라이에서 목욕하시던 아버지의 어깨 쪽 새겨진 피멍, 그리고 둘째는 오늘 본 시퍼런 멍 자국. 어쩌면 내가 보지 못한 수많은 날 아버지의 등은 씻을 수 없는 상처로 가득했을 터다. 과연 무엇이 아버지의 몸과 마음을 시퍼렇게 물들였을까?
사람답게 사는 세상, 내 소원은 당연하지만 멀리 있어 결코 닿을 수 없는 것이었다. 만약 인간답지 못한 삶을 그저 지켜보는 것이 효도라면, 난 불효를 범해서라도 내 가족을 지키고 싶다. 그게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과 등에 새겨진 멍 자국에 대한 내 답변이다.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다시 한 번 우리 학교엔 휴교령이 내려졌고, 언론은 모두 통제됐다. 아버지는 다시 한 번 나를 방으로 불렀다.
“상진아, 너 절대 안 된다. 너 빨갱이처럼 절대 그런 거 하면 안 돼. 진짜 부탁이다. 알겠지?”
아버지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어쩌면 그 낯빛은 등에 새겨진 멍 자국보다도 더 짙고 어두웠다. 다음 날 학교 정문에서 시위가 있다는 소식을 어디서 들으신 모양이다. 아버지는 그 이후로 말을 잇지 못했다. 두 손으로 내 몸을 감싸고 그대로 한 동안을 멈춰 있었다. 아버지의 품은 무엇보다 넓고 따듯했다. 아버지의 작고 거친 손이 만든 가족이라는 세상, 나는 가능한 한 이 온기를 영원히 잃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나는 예정대로 학교 정문에 나갔다. 시위대와 계엄군이 대치했고 이어 투석전이 벌어졌다. 완전히 포위되었다. 우린 큰 소리로 외쳤다.
“김대중 석방하라, 전두환 물러가라, 비상계엄 해제하라!”
무장한 계엄군은 소총 개머리판으로 학생들의 머리를 내리쳤다. 학생들은 어딘지 모를 곳으로 무자비하게 연행되었다. 이어 우리를 향해 무언가가 떨어졌다. 최루탄이다. 그 작은 공은 던지는 순간 짙은 연기를 뿜으며 순식간에 번졌다. 시야는 가려지고 숨 막히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자욱한 연기가 모두를 덮쳤다. 그 연기 사이로 구타 소리와 비명이 난무했다. 달려가다 넘어지고, 그 위로 또 넘어지고, 넘어진 이들을 향해 검은 몽둥이가 날라왔다. 그야말로 혼비백산이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무언가 그을린 자국이 군데군데 있었다. 전쟁통 같은 상황 속 나는 그 남자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는 군인에게 붙잡혀 야구 방망이로 구타를 당하고 있었는데, 얼굴은 피범벅이 되어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그 자리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불끈 쥔 주먹과 목에 선 붉은 핏대, 그건 절대 쓰러지지 않을 거라는 그의 굳은 의지였다.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는 각오이자, 결심이었다.
그리고 이어, 어디선가 익숙한 멜로디가 들렸다. 노랫소리는 너무 작았고 주변 소음 탓에 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듣자마자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 노래는 짙은 연기를 뚫고 내 귀에 꽂혀 점점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이는 분명 애국가다. 점점 흩어진 학생들의 목소리가 하나둘 합쳐지기 시작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노랫소리는 순식간에 커졌다. 짙은 연기가 우리 시야를 가렸지만, 울려 퍼지는 목소리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애국가는 멈추지 않았다. 한 글자를 놓을 때마다 더 크고, 짙게 번져나갔다. 어느덧 우리는 보이지 않는 와중에 하나가 되어 있었다. 노랫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군인은 애국가가 울리는 곳을 향해 무차별 구타를 가했다. 군인의 탈을 쓴 자들은 왜 애국의 노래를, 국가를 위하는 마음을 공격하는 걸까? 그 탈 속에는 과연 누가 있었을까? 우리와 대치했던 이들은 과연 누구였나?
1980년 5월 21일, 광주는 봉쇄되어 외부와의 교신이 모두 차단되었다. MBC는 잿더미가 되어 어떤 정보도 새나갈 수도, 들어올 수도 없었다. 완전히 울타리에 갇히고 말았다.
뚝, 뚝.
이 울타리 안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 비는 너무 빨라 피할 수 없고, 방향을 예측할 수도 없었다. 비에 맞은 사람들은 힘없이 쓰러졌고, 곧 숨이 멎었다. 바닥엔 조금씩 핏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비처럼 쏟아지던 총알은 하늘에서 땅으로,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혔다. 나와 함께 시위하던 같은 과 동기 정필이는 이 비를 맞고 영원히 깨어나지 못했다. 우리 시민군은 분명 총을 가졌고, 실탄을 장전했고, 모두 교련 수업을 받아 사격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선뜻 총구를 당기지는 못했다. 우리의 총구는 그들의 비열한 양심을 향하고도 쏘기를 망설였지만, 그들은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 우리 머리를 정확히 조준했다. 무고한 시민의 목숨을 조준하고는 단숨에 숨통을 끊어 놓았다.
1980년 5월 26일, 내일 우리는 죽음의 행진을 감행한다. 겨울엔 나뭇잎이 떨어지고 가지가 마른다. 모든 나무가 죽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건 겨울의 착각이다. 자신의 가혹한 추위가 나무를 쓰러트릴 수 있다는 헛된 믿음이다. 봄이 되면 어떤가. 금방 다시 생기를 되찾고 끝내 꽃을 피운다. 그게 자연의 이치가 아닌가. 저들에게 자연의 이치를 돌이킬 능력은 없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도 언젠가는 봄이 올 것이다. 언젠가는...
5월 27일의 기록은 없었다. 그날 오빠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