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물이 위험한 두 번째 이유 폭력성
너희가 모르는 곳에
갖가지 인생이 있다.
너희 인생이 소중하듯
너희가 모르는 인생도
둘도 없이 소중하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모르는 인생을 사랑하는 일이다.
(외톨이 동물원 서문. 하이타니 겐지로/비룡소)
간혹 '요즘 같은 세상에 꼰대처럼 무슨 이 정도로?'라고 음란물에 관대한 부모님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음란물의 문제점은 야하다는 것에만 있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을 다루는 비인간적인 방식!
바로 폭력성이다.
한 번쯤 음란물을 보신 분은 기억하리라.
음란물은 성폭력 교과서라고 부를 만큼 강간 장면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내 성적 쾌락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라면 남녀노소, 어떤 관계를 막론하고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아도 좋다는 폭력적인 메시지가 들어있다.
여성(주로)이 성폭행 위기에 처하는 설정이다. 피해자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가해자의 손길이 몸에 닿는 순간마다 걷잡을 수 없는 짜릿한 성적 흥분을 느끼지만 일단 겉으로 반항하는척 한다. 더 이상 흥분을 참지 못할 지점에 다다르면 결국 괴성을 지르며 가해자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즐긴다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즉 겉으로는 싫은 척 반항하지만, 속으로는 너(피해자)도 즐긴다는 논리다.
피해자가 느꼈을 미칠듯한 공포나 아픔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죄책감 따위도 느끼기 싫고, 도덕적 비난도 받고 싶지 않으면서 마음껏 사람을 휘두르고 싶은 성폭행 가해자가 꿈꾸는 면죄부가 음란물 스토리 안에 있다.
갑자기 2013년 영화 소원으로 개봉되었던, 2008년에 발생한 조두순 사건이 떠오른다.
가해자는 8세 아동을 성폭행해서 성기와 항문 기능의 80%를 상실시켜 영구 장애를 입혔다.
그가 검거 당시 했다는 말!
“어차피 나중에 다 경험하게 될 것 아니냐?”
“어차피 세상이 여자를 다 그렇게 한다.”
“나중에 크면 남자들 신체도 다 보고 할 거 아니냐?”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일말의 양심의 가책이라곤 없는 이 사이코패스의 논리와 음란물의 스토리가 놀랍도록 일치한다.
음란물을 반복해서 시청하면 결국 판단력 사고력 등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대뇌 작동에 문제가 생긴다.
판단력과 공감력이 떨어지고. 인간이 인간을 학대하는 폭력적 장면에 무뎌지면서 ‘폭력성’이 높아진다.
EBS와 전남대학교 심리학과 윤가현 교수 연구팀은 ‘포르노-공격성과 연관성 실험’을 통해 음란물 시청과 공격성 간의 연관성을 밝혔다.
남자 대학생 120명을 세 그룹으로 나눠 각각 자연 다큐멘터리, 일반 포르노, 폭력적 포르노 영상물을 15분 동안 시청시켰다. 이후 공격성 판단을 위해 다트 던지기 실험을 진행했다.
사람/사물 표적 가운데 사람 표적에 다트를 던지는 빈도를 분석했더니, 자연 다큐를 본 그룹은 사람 표적에 다트를 평균 0.3회 던진 반면, 일반 포르노를 본 그룹은 1.4회, 폭력적 포르노를 본 그룹은 2.4회를 던졌다(아무리 표적이라도 사람 얼굴에 다트를 던지는건 심리적으로 쉽지 않다).
자연 다큐를 본 그룹에 비해 폭력적인 포르노를 본 그룹이 여덟 배나 높은 공격성을 보인 것이다.
잦은 음란물 시청이 정상적인 인간관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여성 표적에 대한 공격성이 더 높게 나타나 음란물이 성폭력으로 이어지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시사점을 마련했다. (출처 2009년 EBS. ‘아이의 사생활Ⅱ)
대학생이 이럴진데 뇌가 한창 성장 중인 어린이와 청소년이 음란물의 폭력적 장면을 반복해서 보면 되면 어떻게 될까?
지금은 폭력 감수성이 낮은 사람들이 예전처럼 뻔뻔하게 잘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다.
긴 설명이 필요 없다.
미디어를 통해 사례들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으셨을 거다.
명문대생, 재벌, 연예인, 정치인...
갑질, 학교 폭력, 성폭력 , 미성년자 착취를 일삼다가 그 행적이 만천하에 폭로된 후 어떤 말로를 맞이 했는지.
인성도 실력인 시대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음란물이 내포한 폭력성을 미리 짚어 주셨으면 좋겠다. 음란물시청을 통과의례라 지나치지 말고 그 위험성에 대해 솔직한 대화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