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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가 Oct 13. 2024

거절당해도 난 괜찮아.

건강한 경계가 건강한 관계를 만든다.

 오늘도 거절에 익숙해지려고 노력 중이다.


: 다음 주말에 할머니 뵈러 갈 건데 함께 가자. 시간 되니?


: 아니 안돼.

     (이미 목소리가 친절하지 않다)


: 왜?

    다음 주에 약속 있어?


: 아니 없어. (딸은 마음이 상하면 말이 짧아진다. 화를 참고 있다는 뜻이다)


:(톤이 살짝 높아진다)

    아무 약속이 없는데 왜 안 되는 건데?


: (드디어 폭발)

    엄마! 내가 지난번부터 계속 부탁했잖아.

   나랑 약속을 잡을 때는 한 달 전에 미리 말해달라고.

   그래야 나도 시간을 조율하고 마음의 준비도 하고 그럴 거 아니냐고요.


: 헐~! (속으로만 생각한다)

얘가 사회생활을 하더니 완전 회사 일처럼 가족 간의 일을 처리하려 드네?

아니 자기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데 마음의 준비가 왜 필요해?

(나중에 반성해 보니 나도 양가를 방문하기 전에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었다)


미리 말 안 한 건 내 실수지만 시어머니댁 방문은 며칠 전 갑자기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정된 건데.

아! 이 딸내미 정말 어렵네!


아무튼 그날 딸은 엄마가 미리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 부탁을 거절했다.

큰 딸은 동생이 안 가겠다고 하는 덕분에 패스! 하는 수 없이 결국 부부 둘만 시댁에 갔다.





안심하고 있었? 뒤늦게 사춘기...

둘째 딸은 어릴 때부터 범생이였다. 뭔가를 잘 흘리는 덜렁이 내 유전자가 섞여서 수시로 뭔가 '없어졌다'며 아빠에게 제 물건을 찾아내라고 부탁하곤 해서 곧잘 웃음을 자아냈지만, 숙제도 공부도 학교생활도 알아서 척척 잘 해냈다.


언니와 달리 중2병도 앓지 않았고 대학 입시 공부도 부모 속을 전혀 끓이지 않고 혼자 알아서 잘 해냈다. 고맙고 자랑스러운 딸이었다.


무엇보다 나랑 더없이 말이 잘 통했다. 그랬던 딸이 대학 입학 후 뒤늦게 사춘기가 왔다.


말이라면 어디 가서 밀리지 않는 편인데, 나는 지금까지 딸보다 더 조리 있게 말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어찌나 말을 잘하는지 딸과 맞붙으면 항상 참패다.


아무튼 대학교 때부터 시작된 뒤늦은 사춘기는 회사에 다니던 그 시절 절정에 달했다.

우리는 수시로  마음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내가 착각한 한 가지가 있다.

'이만하면 나는 좋은 부모'라는 생각이다.


하긴 그런 흐뭇한 착각마저 없었더라면 어떻게 그 긴 세월 지겨운 밥벌이를 견디며 자식에게 헌신할 힘을 낼 수 있었을까? '나 지금 잘하고 있나 봐'라는 긍정적인 착각은 부모에게 힘을 제공한다.



많은 경우 부모가 '내 생각이 착각일지 모른다'는 의심을 품는 첫 번째 순간이 바로 아이의 사춘기이다.


"우리 아이는 사춘기도 없이 컸어요"라고 흐뭇하게 말씀하시는 부모님을 가끔 만난다.


그러나 사람 일은 모른다.

관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다들 안심하지 마시라.


다들 지랄 총량의 법칙을 아실 것이다.

평생 해야 할 지랄을 보통은 사춘기에 하지만 이때 안 한 지랄은 죽기 전에 언젠가 꼭 하게 되어있다.


둘째 딸은 이 지랄을 대학교에 입학 후 시작 했다.


심지어 나는 오십이 가까운 나이에 늙은 엄마에게 지랄을 시작해서 울 엄마를 지치게 했다.

나이 들어서 하는 지랄이 더 무섭다.


그러니 어차피 겪어야 할 지랄이라면 남들 다하는 사춘기에 그나마 부모가 일 년이라도 젊어서 힘 있을 때 겪는 것이 좋다.ㅎㅎㅎ

자녀의 지랄을 허하라.


당시 내가 딸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안돼, 싫어, 하지 마세요" 삼 종 세트였다.

내가 저항이라도 할라치면 내 기를 꺾고야 말겠다는 듯 일부러 더 세게 나가곤 했다.


 


자식들의 지랄은 부모로부터 심리적 독립을 하고, 부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과정이다.


딸은 대학을 가고 회사에 다니면서 과거와는 다른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 자신을 키워 준 부모의 기준만이 아니라 세상에는 타인들의 다양한 기준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시야가 넓어진것이다.


딸은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어린 시절 나와 쌓은 낮고, 부드럽고, 익숙한 경계를 무효화하길 원한다. 나와 전보다 더 높고 견고한 경계를 재설정하며 제 삶의 주도권을 쥐려고 한다.


나는 부모를 뛰어넘으려는 딸의 시도가 반갑고 흐뭇하면서도 날카롭게 부딪힐 때마다 멍이 들고 아팠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어했던 부모들의 한탄,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말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그러나 딸은 결국 자신이 원하는 든든한 경계 쌓기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건강한 성인으로 다시 태어나 지금 일상을 잘 살아간다.


기쁘다.

무엇보다 나처럼 오십 즈음에 뒤늦게 지랄을 떨지 않아서 다행이다.

나이 들어 뒤늦게 딸들이 지랄하는 상상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



거절에 익숙해지는 연습

딸이 나와의 경계를 다시 쌓으니 원하지 않아도 나 역시 딸과의 경계를 다시 쌓을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소득은 거절에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딸의 거절에 힘들어할 때마다 딸은 힘주어 말하곤 했다.

"엄마! 엄마가 싫은 게 아니야.

엄마를 사랑하지만 이건 받아들일 수 없어요."


그렇다.

상대의 거절은 나라는 사람에 대한 거절이 아니다. 다만 이 상황에 대한 거절이다.


상대의 거절을 상처받지 않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상대방의 마음의 경계를 존중하고 잘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나는 오늘도 거절에 익숙해지려고 노력 중이다.

더불어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할 때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잠깐! 자녀의 지랄로 힘드신 부모님께...

마침 집에 다니러 온 글감 제공자에게 허락을 구하고자 이 글을 미리 읽어 보라고 했더니 "내가 정말 한 달 전에 미리 말해달라고 그랬어?"라고 묻는다.

"사실이야"라고 하니 "정~말 지랄을 했네!"라며 깔깔깔 웃는다.


다 지나간다.

그리고 이렇게 함께 웃는 날이 온다.

화이팅!



<당신의 경계는 안녕하신가요?>

인용: 나는 내가 먼저입니다 / 매일경제 신문사 / 네드라 글로버 타와브 지음


도서에 수록된 점검 질문 15개중에  글과 관련된 질문 만 일부 발췌했다. 점수를 따로 매기지 않으며,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건강한 경계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본문에는 경계를 바운더리로 표현하고 있다. 본문 표현 그대로 옮겼다.


* 나는 사람들이 내 부탁을 거절해도 괜찮다. 그리고 거절을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1. 그렇다.

2. 그렇지 않다. 나는 거절당하면 기분이 나빠진다

3. 나는 대체로 사람들에게 부탁하지 않는다.

   그들이 내 일을 제대로 해주리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1. 건강한 바운더리

2. 허술한 바운더리

3. 경직된 바운더리


* 나는 거절하고 싶을 때 거절하지 못한다.

1. 그렇다. 자주 있는 일이다.

2. 거절하는 동시에 더 요구하지 못하도록 거절의 이유를 밝힌다.

3. 나는 대체적으로 거절하는 것을 사과하지 않거나 이유를 거짓 포장하지 않고 바로 거절한다.


1. 허술한 바운더리

2. 경직된 바운더리

3. 건강한 바운더리



* 나는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할 때 죄책감이 든다

1. 그렇다

2. 그렇지 않다.

3.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뭔가를 부탁하면 난처하거나 화가 나거나 불만을 느낀다.


1. 허술한 바운더리

2. 건강한 바운더리

3. 경직된 바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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