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즐거운가 Nov 02. 2024

가족이 되는데도 시간이 필요해요.

건강한 경계가 건강한

'사이가 좋다'는 말은 사람과 사람끼리 마음의 거리가 잘 지켜졌을 때 하는 말이다.



"00 서방은 우리 집에 오면 뭐든 맛있게 잘 먹고 뭘 해줘도 고마워하는 게  눈에 보여서 참 좋아.


그런데 00 서방은 뭘 사주면 이거 내가 꼭 먹어야 하나? 이런 표정이야. 입도 짧고.

00 서방도 성격이 00 서방 같았으면 좋겠어."



외식 중 식당에서 본의 아니게 엿들은 어느 노부부의 대화 내용이다. 지는 둘째 사위가 좀 더 싹싹했으면 좋겠다.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희망 사항이다.




아무리 잘해줘도 불편해

연년생 두 딸게 훌륭한 엄마 역할을 해내는 극히 정상적인 성인인 큰딸!


그러나 사위의 표현을 빌리자면 "ㅇㅇ이는 어머니 집 문턱을 넘는 순간 급 사춘기 소녀가 돼버려요"라고 말할 정도로 정만 오면 심각한 퇴행 현상을 보인다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내 손에 세끼 밥을 얻어먹는가 하면 온 집안에 애들 옷이며, 사용한 기저귀, 장난감을 여기저기 마구 던져놓는다. 흡사 집안이 융단 폭격을 맞은 것 같다.


'너희 집은 반짝반짝 정리도 잘해놓고 살면서 대체 왜 이러냐?'라고 물으면 "몰라! 엄마 집에만 오면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네!"라면서 막 웃는다.


그간 엄마 노릇하느라 아주 고단하고 힘들었구나 싶다. 그래! 며칠간 철없는 딸의 가면을 쓰고 살다 가도 좋겠다.


자기를 낳아준 부모의 역 안으로 들어온 딸의 모습은 한껏 안해 보이고 의기양양해 보인다.


반면 사위에게는 여전히 우리 집을 어려워하는 기색이 엿보인다.


사위는 잘 웃고, 싹싹하고, 예의 바르고, 배려심이 넘치는 사람이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자신의 부모님과도 두루두루 잘 지낸다.


예민 성향의 사람이 렇게 많은 사람들과 은 관계를 맺고 살려니 속으로 힘들 때가 있겠구나! 짐작 본다. 나를 대하는 모습 역시 어딘가 직장 상사를 대하는 느낌 들 때도 있다.



나 역시 사위처럼 결혼 초 낯을 많이 가렸다.


시부모님이 그렇게 어려울 수 없었다.


돌아가신 시아버지는  좋은 분이셨다.

합가하고 힘들어하는 며느리가 안타까우셨는지 가끔 조용히 불러 타이르곤 하셨다.


"얘야! 매번 시어머니랑 들 크는 이야기만 나누지 말고 네 마음속에 있는 말들도 다 하고 그래라. 그래야 친해지지."


한마디로 '리 집에서 편히 있어! 

하고 싶은 말 다 해'라는 말씀이다.


'정말요?

그래도 되나요?

그게 되면 진짜 부모 인정!'


내 속으로 낳은 자녀들에게 대개의 엄마 이런 행태를 감아준다.


퇴근하면 건어물처럼 늘어져 있기

휴일에는  이상 잠이 안 올 때까지

차려주는 밥 먹고 가락 까딱 안 하기

성질나면 교양 없이 대

아침저녁 문안 인사 생략 가능

더운 날 벗은 옷 입고 나와서 돌아다니기

(이 밖에도 셀 수 없이 많다)


물론 우 시어머니도 그런 어머니셨다.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부러운 것은 늦잠이었다. 주말면 남편 낮 1시까지 허리가 아파서 더 이상 누워있기 힘들 때까지 잤다.


당시 나는 왕복 네 시간을 출퇴근하는 맞벌이 직장인 임신부였지만 딸이 아니었기에 매 런 남편의 모습을 구경만 하며 부러움으로 치를 떨었다. 는 그때마다 생각했다. 워있는 남편의 저 몸과 내 몸을 바꿀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큰딸은 긍정의 아이콘이다.

싹싹하고 밝.

속상하거나 걱정되는 일도 툭툭 잘 털어낸다.


딸은 결혼 전부터 남친의 어머니와 무척 잘 맞았다. 심지어 결혼할 즈음엔 시어머니에게 홀딱 빠져서 엄마인 나보다 시어머니 감이 더 좋다는 말까지 했다.


난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시던지? 그래봐야 넌 내 딸이거든?'

나보다 시어머니가 더 좋다니 결국 내 딸이 행복한 거 아가? 나로서는 대환영할 일이다.


부디 죽을 때까지 그 맘 변치  길 바란다.'ㅋㅋㅋ


그러나 딸은 출산을 하고 바로 깨달았다.

아무리 좋아도 시어머니는 엄마가 될 수 없다는 걸... 엄마는 몸을 갈아 딸의 산후조리를 해주지만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위해 몸까지 갈 수는 없다.


딸은 여전히 다른 집 고부간과 비교할 수 없이 시어머니랑 사이가 좋다. 그러나 시어머니 앞에서는 내 앞에서처럼 개판 오 분 전 사춘기 멘붕 소녀의 모습으로 퇴행하지 못한다.


제 부모 앞에만 서면 자동 발생하는 퇴행 현상!

긍정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며느리(사위)들도 시댁(처가)에서 이만은 시전 하기 힘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많은 경우 배우자의 부모가 마음으로부터 진짜 가족이 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다행히 아이를 낳고 나면 부쩍 가까워진다.

거기에 해마다 시간이 쌓이고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조금씩 서먹함이 사라져 간다.


결혼 당시의 내 나이와 결혼 생활을 한 햇수가 비슷해질 즈음에야 는 비로소 시어머니가 마음으로부터 편안해졌다.


남편 역시 친정아버지 장례를 함께 치른 이후 마음으로부터 울 엄마가 편안해졌다고 했다.

무려 25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남편은 울 엄마의 남편이 멀리 떠나는 길을 가장 가까이에서 배웅해 드리면서 엄마와 더 가까워졌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결혼생활 30년이 넘어가자, 남편이 울 엄마를 대하는 모습이 확 달라졌다. 엄마가 억지를 부리면 농담인 척 말꼬리마다 잡고 늘어지며 마구마구 토를 단다.

전에 볼 수 없던 일이다.


작년에는 제발 뿌리지 말라고 몇 번을 말려도 들깨를 텃밭에 뿌리는 울 엄마에게 화를 버럭 내서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런 건 딸인 나나 하는 짓인데?(앞으로도 이건 나만 하겠다고 부탁했다)


급기야 돌아가신 정아버지와 똑같 짓도 해서

나에게 '당신이 00 씨 아들이세요?'라는 핀잔도 주 듣는다. 남편은 이제 엄마와 가족처럼 보인다.




똑같이 못 하니까 힘든 거다.

평소 자기 앞가림을 잘하는 정상적인 성인이 시댁(처가)에 와서 내 딸(아들)이랑 똑같이 퇴행할 수 있다면 거의(완전히 아님) 가족 맞다.

다들 그걸 못하니까 시댁(처가) 이 힘든 거다.


나는 결혼 선배 입장에서 사위의 행동이 전혀 서운하지 않다.


자신을 낳고, 키워주지도, 밥도, 빨래도, 학비도 안 대준 사람을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님 아버님으로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오히려 고맙다.


나는 신혼 초 어머님, 아버님이라는 호칭을 목구멍에서 끄집어낼 때마다 홍길동과 딱 정반대의 심정을 느꼈다.


어머니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어머니가 아니잖아.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아버지가 아니잖아(당시 남편 부모를 장인, 장모님으로 불렀다).


얼마 전 나는 심리학자 김경일(마음의 지혜/포레스트북스)님의 글을 읽다가 '배우자의 부모를 부모로 여기지 않는 나라도 있다'는 글귀를 만났다. 고부(장서) 갈등을 겪는 사람들이 읽으면 반색할 내용이다.


유전자가 섞이지 않았으니 엄밀히 말하면 가족이 아닌 게 맞고, 가족이 아라는 것을 인정해야 더욱 예의를 지키고 조심하며 불화도 적어질 것이라는


그러니 서로의 부모를 어머니, 아버지로 부르는 ' 결혼했으니 소중한 배우자의 부모도 앞으로 살아가면서 부모처럼 대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의미 정도로 부디 해석으면 겠다.




결혼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익숙한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경계를 쌓는 과정이다. 아내와 남편이 된 순간 둘 사이에는 양가 부모와 형제 등 새로운 관계가 끼어든다.


갑자기 오늘부터 우리는 가족 1일이다.

하지만 친밀감은 마음먹는다고 자기 샘솟는 감정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아이가 결혼하기까지 리는 얼마나 긴 시간을 함께 보냈던가?


새빨간 신생아가 어른이 되기까지 공유한 온갖 기쁨과 슬픔, 그 무섭다는 중2병, 가족 내의 한 갈등과 어려움을 함께 공유했다.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투입되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느 날 혼으로 맺어진 사위(며느리) 내 딸(아들)로 여겨진다?

그들에게 내 딸(아들)처럼 해주길 바란다? 어불성설이다.


진정 딸(아들)이 되길 원한다고? 그럼, 우선 아이들이 그간 내게 했던 골질과 진상짓부터 허해보자.


흔히 '우리가 남이가?'라 말한다.

그렇다.

우리는 남이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

차근차근 알아가면 된다. 

어색해서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쪽이 있다면 그쪽을 기준 삼고 그 뜻을 존중해 주면 된다.


나는 사위와 만날 때마다 우리 사이의 마음의 거리가 아주 조금씩 좁아지는 것에 만족한다. 사위의 어색한 모습사랑스럽다.


가족이 되는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관계의 강도를 설정할 때는 상대에게 별로 바라는 것이 없는 사람에게 맞춘다.

만약 상대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되면 이는 마치 압력을 행사하는 것과 다름없다.

균형은 두 사람 중 한쪽에서 뭔가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 무너진다.

예민함이라는 무기/ 롤프젤린. 유영미 옮김/ 나무생각


















 




이전 09화 거절당해도 난 괜찮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