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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가 Nov 03. 2024

불길한 예감은 왜 틀리지 않을까?

건강한 경계가 건강한 관계를 만든다.

돌이켜보면 내가 경계 짓기에 고민하고 심을 기울이게 된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결혼 덕분이다.


당시 경계의 개념 따위는 랐지만, 무튼  행위는 경계 짓기였다. 

신기하다. 이론 따위는 몰라도 사람들은 본능으로 제 살길을 찾으며 산다. 나 같은 인간들의 행태를 연구해서 리학자들은 유식한 말 정리한다. 재미있는 직업이다. ㅎㅎㅎ



둘 사이 좋

우리 부부는 '서로 져주고 살자' 주의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둘 사이의 문제로 크게 다툰 적은 없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삐짐 들도 오래 못 간다. 짧게는 몇 분에서 길어야 몇 시간. 모두 하루 이내에 끝난다. 일단 둘 다 기질적으로 싸움에 큰 에너지가 소진되는 것을 견지 못한다.



시댁은 작부터 그게 안 됐다

대체 왜 안 될까?

걸 고민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한 덕분에 내 삶의 지평은 넓어졌다.


그러니 결혼이야말로 최고의 학교다.

물론 군대를 다시 가고 싶지 않은 남자들처럼 나도 그 코스를 꿈에도 다시 밟고 싶지 않다.


다들 경험해 봐서 안다.

부부, 부모와 자녀, 고부(장서), 형제 등 소위 가까운 사이일수록 경계를 지키기 어렵다는 걸. 


가깝다는 이유로 알고도 넘고, 모르고도 넘는다.

이들은 삶에 가장 큰 힘도 되지만 가장 큰 아픔도 준다.



이 사람과 결혼을 마음먹은 이유

나는 60년대생이다.

라때는 남자들이 청혼할 때 '평생 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 줄게'라는 거짓말이 전국을 유행했었다.

흥! 그게 말이 돼?


결혼은 꿈이 아닌 현실임을 '우당탕 '항상 시끄러웠던 우리 부모님 결혼 생활을 지켜보며 일찌감치 깨달았다. 애초에 결혼에 대한 헛된 망상 따위는 1도 없었다


내가 남편과 결혼을 마음먹은 이유는 딱 하나다.

"나랑 결혼하면 다른 건 몰라도 마음 하나만은 편하게 해 줄게"라는 약속 때문이다.


정말?

손에 물을 안 묻히는 버전은 딱 봐도 불가능하지만 어쩌면 이 버전은 가능할지도 몰라.


늘 싸우는 친정 부모님과 사는 것이 하루도 마음 편하지 않았던 나는(엄마는 지금도 내가 왜 그렇게 말리는 결혼을 서둘러했는지 모르신다) 그 말에 감동당했다. 


사람, 영리하기도 하지!

그 부분은 나의 가장 취약한 지점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 사람과 결혼하면 개고생 할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끝없이 드는 거다.


함께 있으면 세상에서 이토록 편안한 마음이 드는 사람을 만난 것은 남. 여를 통틀어서 이번 생애에 처음이다.


그런데도 내 마음은 '너 이 사람과 결혼하면 개고생 할 거야'라고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었다.


함께 있으면 편안하지만, 함께 살면 엄청난 고생을 하게 될 것 같다는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이 끝없이 마음속에서 싸웠다.


결국 전자를 택한 나는 여우 굴을 피하려다 범 굴로 들어갔다.





역시 불길한 느낌은 틀리지 않아

나는 이 사람과 사는 내내 궁금했다.

애초에 나는 왜 그런 불길한 느낌을 받았을까?


나이 들며 깨달았다.

이 사람 역시 나처럼 부모와 건강한 경계를 맺지 못한  같은 부류임을 직감했던 것이다. 


돌아보면 내가 시댁에서 크게 마상을 입은 까닭은 부모와 아주~ 허술한 경계를 맺고 있는 사람과 결혼했기 때문이다. 시댁에서 부당한 상황이 벌어져도 애초에 든든한 울타리가 돼 줄 수 없는 사람이었던 거다.


자신의 경계를 부모가 마구 넘나들어도 어쩌지 못하는 사람이 배우자의 경계까지 보호할 겨를이 있겠는가?


남편이 그날 내게 한 약속은 심이었겠만 결국 자신이 은 부모와의 허술한 경계 덕분에 본래 의도와 달리 결과적으로 내 마음에 큰 상처를 입혔다.


허술한 경계를 가진 허당이 더 허술한 경계를 맺고 있는 허당을 믿고 결혼한 거다.

두 허당의 결혼생활은 그렇게 마구 부모에게  휘둘리게 된다.


직감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의 총합을 기반으로 나온다. 그러니 다들 직감을 무시하지 말자.





결국은 성공한 결혼?

 결혼한 목적을 달성하기까지 정말 긴 세월이 걸렸다. 


나는 시작부터 시댁과 허술한 경계 설정을 하는 바람에 무수한 경계 침범을 받았다. 마음의 상처를 입고 나서 결국 경계를 다시 세웠다.


길고 긴 길을 돌고 난 후에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남편에 의해서가 아니라 결국은  스스로의 으로....


그 과정에서 나는 깨달았다.

내 마음의 평화는 남이 아닌 나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것을. 결국 인생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구원하며 살아내는 거다. 


단언컨대 나는 이 사람과 결혼한 이후 지금처럼 마음이 편안한 적이 없다.

늦었지만 결혼의 목적을 달성했다.


서프라이즈!

내 결혼은 대 성공?



우리재 35년째 함께 살고 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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