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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가 Nov 10. 2024

나도 중간에서 힘들어! 배우자의 방관이 서운한 이유

건강한 경계가 건강한 관계를 만든다

장서 갈등으로 이혼?

브런치 작가 페르세우스 님의 글, 눈에 띄는 통계보인다.

한 결혼 정보 업체에서 조사한 배우자와 이혼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 사유 베스트 5위 중, 장서 갈등이 10.9% 3위를 차지했다는 내용이다.


결혼 후 친정 부모에게 살림과 육아를 의지하는 등 친정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사위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결과라고 한다.


흥미롭게도 조사 결과에 시댁과의 갈등은 순위 안에 없다.

설마 갈등이 사라져서?

아니면 느슨해진 가부장제 시스템을 이만하면 견딜 만해서?

아니면 진정 새로운 모계사회가 도래해서?




둘 사이의 문제가 아닌 상대방 부모 때문에 이혼을 결심하는 배우자의 속마음은 어떨까?

나는 장서 갈등으로 이혼하는 사위들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시댁과 갈등 끝에 이혼하는 며느리들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방관자의 최후

학교폭력이나 폭력 피해자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다. '가해자만큼이나 옆에서 거들거나 방관했던 사람에게 큰 상처를 받았다.'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갈등의 첫 시작은 장모(장인) 일지 몰라도, 중간에서 이를 어쩌지 못한 배우자의 행동은 결국 방관으로 비친다. 심지어 동조로 여겨질 때도 있다.


'믿었던 당신이 내 편이 아니었다'는 차곡차곡 쌓인 서운함은 결국 등을 돌리게 만든다.



하마터면 나도 같은 이유로 이혼할 뻔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사이의 문제가 아닌 시댁 갈등으로 어린 딸을 둘이나 두고 가정을 는 것이 억울했다. 무엇보다 나 하나 인생의 무게보다 두 아이 인생의 무게가 태산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가정을 깨거나 시댁과 발을 끊는 대신 '거리두기' 통해 위기를 넘겼다.

그리고 사는 김에 사이좋게 잘 살려고 정말 노력했다. 

잘했다고 두고두고 나를 칭찬한다.



어차피 함께 살아야 할 운명? 

결혼 당시 나는 평생 아들과 함께 살고 싶는 시부모를 뿌리치고 분가다.  

K 장남의 죄책감은 아~주컷다. 남편은 주말마다 시댁 가는 것으로 책감덜려고 했다. 시아버지는 갈 때마다 "언제 들어와 살 거냐?"라고 물으셨다. 너희는 결국 우와 끝까지 함께 살아야 할 운명이라는 뜻이다.


 태어났다.

세 살던 집주인 아주머니 딸주시기로 약속해 둔 상태지만, 어차피 시부모와 함께 살아야 할 운명이라면 육아라도 의지해야겠다 싶었다(운명! 그런 게 어디 있어? 인생 최대의 실수다). 결국 결혼 2년 만에 합가했다.




남의 편 당신

그날부터 남편은 여자 역할 정의 모든 집안일에서 손을 뗐다.

그는 건장한 체격을 자랑하는 튼튼한 대한민국 남자였고 나는 작고 마른, 저질 체력의 선두 주자였다.


다음 순서는 나 홀로 부엌에서 화기애애 시댁 모임을 빛내는 삼월이 노릇이다. 

구질구질한 내용들은 읽 피곤할 테니 이하 생략. ㅠㅠ


이어지는 남편의 방관!

사면초가에서 의지할 사람은 남편뿐인데  요즘 말로 남의 편이 되었다.


심지어 하소연하는 나에게 " 나도 중간에서 힘들어" "다른 여자들도 다 이렇게 살아"라고 화를 냈다.




당신도 아주 아팠구나

지금이야 결혼하면 거의 외며느리 아니면 큰며느리인 상황이지만, 그 시절 형제 여럿인 집에 큰며느리가 된다는 것은 제 발등 제가 찍는 소위 무덤을 파는 행위였다. 나 역시 그 자리가 무섭고 싫었다.


결혼주저하는 내게 남편은 말했다.

"나는 큰며느리가 아닌 너라는 사람과 결혼하는 거(후일 남편은 큰 며느릿감으로도 나를 찍었노라고 자백했다)".


그랬던 남편 "다른 여자도 다 그렇게 살아"라니.  말  심장아와 도장처럼 지직~ 상처를 남겼다.


얼마 전 남편에게 그때 했던 말을 기억하냐고 물었다(은퇴 후 시간이 남아도는 우리는 마주 앉아 온갖 이런저런 야기를 나눈다).


놀랍게도 남편은 35 전 어느 날, 자신이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말하면서도 '하면 안 될 말'이라 생각했었다고.... ㅠㅠ 

당신도 아주 아팠구나.


하지만 속마음과 달리 그는 대놓고  편이 되지 못했다.


당시 남편의 작전은 어느 한쪽 편을 들면 상황이 더 악화까 봐 차라리 모른척하기였다.

그러나 그 작전은 오히려 양쪽 모두의 원성을 샀을 뿐이다.




오히려 대놓고 한편

반면 그 시절 만만치 않은 성격의 엄마와 세 명의  형제를 보유한 외아들인 남동생은 시작부터 무조건 아내 편이었다.


남편이 순종적이고 착한 범생이과 효자 스타라면 동생은 자기주장이 강한 제멋대로 폭군 형 효자 스타일이.


아직기억난다. 생 부부는 결혼 첫 해 명절  저녁, 친구 모임 갔다. 시댁에서 죽어라 지지고 볶으며 명절 전야제를 치르던 나는 원군으로 출동하라 친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생댁에게 전화를 걸어 시누 값을 하라는 의미다.


이미 그 부작용체험 중인 나는 바로 선을 그었다. "엄마! 시누이가 끼어들면 상황이  꼬여. 엄마 일은 엄마가 알아서 하세요"(기 앞가림은 못하면서  일은 또 이렇게 끔하게 처리한다.).


결국 아들에게 질 밖에 없다는 것을 재빨리 간파영리한 친정엄마! 그날로 보들보들한 시어머니 길을 택했 둘은 평화로운 고부 사이가 되었다.


불편하고 시끄러워질 위험을 무릅쓰고 애초에 명확하게 선을 긋는 용기를 내면 오히려 문제가 더 크게 악화되는 걸 막을 수 있다.





산산조각 난 신뢰

구멍까지 괴로움이 차올랐을 때 나는 분가로 최악의 상황을 . 

정신을 차리고 나니 그간 방관자로 뒤에 물러서 있던 남편이 보였다.


고군분투했던 날들이 떠오르며 내 편이 되어주지 않은 내 편과 갈라서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들었다. 예상치 못한 다.


남편도 시댁도 몰랐다.

이후 몇 년간 나 혼자 그 충동을 참아내느라 얼마나 애썼는지....




부부에게 최고의 자산은 좋은 기억들

그나마 우리 부부는 운이 좋았다.

합가 하기 전 1년 동안 좋은 기억을 많이 쌓았기 때문이다.

시댁에서 사는 동안 그 기억을 조금씩 꺼내 먹으며 힘든 시간을 버텼다.

'이 사람의 본심은 이게 아니야'라고 나를 세뇌하며....


만약 1년 동안 좋은 기억을 저축하지 못한 채 바로 시댁에 들어가 그런 일을 겪었더라면 우리는 결국 헤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어머니는 모르신다.

그토록 서운해하셨던 분가가 아들 부부의 이혼을 막아준 일등 공신이라는 것을....


하지만, 이 사람과 겪은 나쁜 기억의 총량이 좋은 기억의 총량을 훨씬 넘어버리자, 내 마음은 마구 흔들렸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일은 그 일이 일어나기 전의 좋았던 남편에 대한 감정까지 모두 함께 증발해 버렸다는 것이다. 이후 아무리 노력해도 깨진 그릇은 다시 붙지 않았다.


저축하듯 부부가 평소에 차곡차곡 쌓은 일상의 좋은 기억들은 '살면서 만나는 어 수 없는 환란의 고통을 견디게 해주는 가장 큰 힘'이라는 걸 오랜 결혼 생활을 하면서 나는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러니 부부들이여.

좋은 기억 통장에 저축액이 줄거나 마이너스가 나지 않도록 잘 관리하자.

세월이 흐르면 복리에 복복리 이자가 붙는다.

황혼 이혼 걱정 없이 두 손 꼭 잡고 사이좋게 잘 늙어 갈 수 있다.


양가 부모님들이여

자녀 부부의 통장에서 좋은 기억이 대거 인출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부디 선을 잘 지켜주시기 바란다.


응원은 못 할망정 심술로 인해 자녀 부부 통장에서 예금이 몽땅 인출되고 심지어 마이너스를 찍는 사태를 부르는 부모님들이 안타깝게도 주변에는 꼭 있다.




부부는 무조건 한편 먹어야 계속 살 수 있다.

몇 년 전 나는 결혼을 앞둔 큰딸에게 당부했다.

'만약에 엄마, 아빠 때문에 남편과 갈등이 생기면 무조건 남편 편에 서!

나는 너를 낳았기에 너에 서운함이 쌓여도 어느 순간 다시 회복될 수 있지만, 배우자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남이야.

 한번 마음이 돌아서면 되돌릴 수 없어.

두 사람 모두 서로가 가장 우선인 결혼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

결국 부모도 배우자도 둘 다 지키는 길이야.'

경험에서 나온 조언이다.


다행히 딸 부부는 두 사돈이 서로 전화로 "이 부부 진짜 너무하지 않나요?"라고 뒷담 화할 만큼 눈에 불을 켜고 서로의 편을 든다. 때로는 차마 눈뜨고 못 봐줄 지경이다.


우리가 못한 것을 실천하며 사는 딸 부부를 보면 내 일인 듯 행복하다.




불행하게 장서(고부) 갈등을 막지 못했어도 배우자의 발 빠른 대처는 피해를 최소화하고 건강했던 부부의 삶으로 되돌릴 기회를 선물한다.


언제나 기억하자.

우리 결혼식장에서 약속하지 않았나?

어떤 상황에서도 로의 편이 돼주기로....


내 편이 아닌 남의 편과 평생 살고 싶은 사람은 세상에 없다.

남편도 아내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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