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돈과 나 사이에

건강한 경계가 건강한 관계를 만든다

얼마 전 한 커뮤니티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내 딸(아들)이 예쁘지, 남의 아들(딸)이 왜 예뻐요? 어차피 이혼하면 남인데...: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이혼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생긴다. 하지만 자녀가 결혼도 하기 전에 시댁(처가) 어른이 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애초에 이런 부류의 사람들과는 사돈을 안 맺는 게 정답이다.

만일 이런 이유로 결혼을 깰 수 없다면 이 예비부부들은 경계경보를 감지함과 동시에 독하게 마음먹고 한편이 되어 똘똘 뭉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혼생활이 곧 폐허로 변할지도....

'내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하다'는 평범한 진리만 부모들이 가슴속에 새겨도 많은 부분 고부(장서) 갈등, 심지어 사돈 간의 갈등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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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부부의 천생연분 설

사위의 어머니는 나랑 동갑이다.

심지어 생일도 같다.

더 놀라운 것은 우연히 귀촌지를 마련하고 보니 사돈댁의 본가와 우리 집이 자동차로 딱 10분 거리라는 사실이다.

친정엄마와 시어머니 생신이 같은 날이라고 하면 다들 주변에서 우리 부부를 천생연분(나는 동의한 바 없다)라고들 한다. 그러나 사돈님과 나와의 이런 우연에는 명함도 못 내민다.

 딸 부부는 어떻게 이럴 수 있냐? 며 자신들의 '천생연분설'을 주장한다. 양가 아버지들의 자동차 종류부터 아버지들의 적은 말수까지 좋은 건 다 갖다 붙인다. 진짜 못 말리는 한 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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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없다.

우리가 너희의 천생연분 설을 완성해 주마.

어려운 사이라지만

사위의 어머니와 나는 무척 사이가 좋다. (현재까지는...ㅋ)

가끔 먼저 전화를 걸어 "사돈님~"하고 안부 전화를 거시는 명랑하고 붙임성 있는 사돈님 덕분이다.

33년의 직장 생활에 단련된 나는 겉보기에 매우  싹싹하지만 보기보다 낯가림이 심하다.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내게 최적화된 사돈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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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부부를 위한 사돈과 나의 암묵적 원칙 넷

제1원칙. 맞장구

사돈과 나는 둘 다 큰며느리다.

가부장제 그늘에서 고생하며 살았다

척하면 척이다.

말이 잘 통한다

그분은 가끔 속내 이야기도 하신다.

치매가 걸린 90세가 넘는 시부를 돌아가시는 날까지 집에서 모셨고, 여전히 제사에 온갖 집안 행사를 짊어지고 사신다. ㅠㅠ

(그 집 며느리가 된 내 딸도 제사 때면 함께 전을 부치고 설거지를 하지만 그 옆에는 항상 사위가 바퀴벌레처럼 붙어있다. 딸은 전혀 불만이 없다)

나는 나이 들며 불량 며느리가 되었다. 형식과 의무를 내려놓으니 삶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그러니 여태 고생하는 그분의 이야기를 주로 듣고 맞장구를 쳐 드린다. 그러나 중간중간 빵 터지는 유머가 섞인 그 이야기들은 구질구질하지 않고 듣는 내내 유쾌하다.

가끔 한 시간 가까이 전화가 계속될 때도 있다. 호호 깔깔 소리를 멀리서 들은 남편은 내가 친구와 수다를 떠는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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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원칙. 서로의 자식은 건드리지 않는다.

사돈의 단골 메뉴는 자기 아들 즉 딸의 남편에 대한 디스다.

 결국 맥락은 자기 아들은 항상 내 딸 편이라는 것이다. "엄마 없이는 살아도 00(딸이름)이 없이는 못 산다." 라며 딸이 자신의 자리를 밀쳐내고 아들을 꽉 쥐고 사는 일인자라는 사실을 항상 확인시켜 주신다.

일인자에서 밀려난 그녀는 지난번에 어찌나 아들이 아내 편만 들어서 서운했는지 결국 울었다는 둥, 하도 얄미워서 재산 한 푼도 안 주리라 생각했다 둥의 이야기를 깔깔깔 웃으며 늘어놓으신다.

이 지점에 이르면 친정엄마인 나는 정신줄을 잘 잡아야 한다.

나는 "그러게요. 너무했네요"라는 말과 함께 재빨리 내 전두엽을 스캔한다. 

나도 딸이 일방적으로 제 남편 편만 들어서 서운했던 이야기를 찾아 적당히 흉을 본다. 크게 어렵지 않다. 사례는 얼마든지 많다(하지만 딱 이 선까지다. 나중에 딸에게 흠으로 남을 흑역사 같은 건 거론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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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끔은 위기 경보!

사실 사위(딸)가 자신들의 어머니에게 화를 낼 때도 있다. 대개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예를 들면, 딸은 사위의 요청으로 얼마간 시댁 바로 아래층에 산적이 있다. 아직 유아인 손녀들은 심하게 떼를 부리며 긴 시간을 울어댈 때가 있다

사돈은 결국 참다못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신다'라고 했다. 수시로 이런 일이 벌어지니 일관성 있는 훈육이 안된다. 손녀의 떼는 점점 심해졌고 참다못한 딸은 급기야 화가 나서 분가를 마음먹는다.

아무래도 가까운 곳에 살다 보면 가끔 이런 식으로 부모가 깜빡이 없이 훅 끼어들어 접촉 사고가 날 때가 있다. 그러면 항상 총대는 사위가 맨다. 딸 편에 서서 엄마의 간섭을 단호하게 저지하며 배우자를 지켜낸다(딸 역시 마찬가지다).

나 역시 갈등 상황에 끼어들거나 부추기지 않는다.

수습 과정에서 결국 부모 과실 100%로 처리되다 보니 사돈은 자주 아들에게 상처를 받고 서운한 눈물 바람을 하신다. 그러면 딸은 남편의 돌직구가 심했다며 어머니를 위로한다.

그러나 사돈의 아들에 대한 짝사랑은 못 말린다. 아들의 작은 화해의 손짓에도 금방 눈물이 마르신다. 언제 그랬냐는 듯 아들을 바라보는 눈에는 다시 하트가 쏟아진다.

 딸 부부의 이런 작전은 늘 성공이다. 

사위 역시 내가 딸로 인해 씩씩거리면 전화해서 "00 이가 너무 했다"며 내 편을 들어준다(주는 척한다).

사돈과 나는 '혹시라도 고부(장서) 갈등 요소가 불거질 낌새라도 보일라치면 둘이 똘똘 뭉쳐서 자신들의 결혼생활부터 보호하는 이 젊은이들이 대견하다.

동시에 사돈과 나의 남편들이 과거에 얼마나 시댁에서 방관자와 동조자 역할을 했는지 라때의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남편을 고발 조치한다. 그리고 이 시대에 사는 딸 부부를 엄청~ 부러워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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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원칙. 서로의 자식에 대한 좋은 점만 본다.

서로의 자식에 대한 디스가 끝나면 다음 코스는 상황 마무리다. 

사돈은 내 딸이 남편과 사이좋게 잘 살고, 심성이 곱고, 건강하고 예의 바르게 아이들을 사랑으로 잘 키운다고 칭찬한다, 한마디로 '댁의 따님이 예뻐 죽겠다(설마요)'는 맥락의 칭찬이다.

참고로 내 딸은 전업주부다. 연년생으로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이유로 시어머니 생신상 한 번 제대로 차려본 적이 없다. 내 눈에 보기엔 여기저기 구멍이 많다. 하지만 항상 요즘 보기 힘든 며느리라고 칭찬하신다. 며느리의 좋은 점에만 집중하시는 내공을 발휘하는 지혜로운 분이다.

딸에 대한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보답으로 사위에 대한 칭찬 릴레이를 이어간다. 심성 착하고 ,  바르고, 똑똑하고, 어른들을 위하는 속 깊은 마음을 가졌고(음~ 또 뭐가 있더라?)....

 결국 사돈은 "가끔 걔가 나에게 못되게 굴어도 속마음은 안 그렇다"라고 말씀하신다. 내 아들도 댁에 따님 못지않게 잘났음을 내 말을 수긍하는 돌려 까기 수법으로 자랑하신다. 나는 한마디로 요즘 보기 드문 참한 젊은이를 사위로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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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원칙. 갈등 대신 응원

사위는 가끔 직장 동료들에게 고부(장서)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나보다.

"저희 부부는 정말 운이 좋아요. 그런 고민 안 하게 해 주시는 양가 부모님들께 정말 감사해요."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렇게 여긴다니 참 다행이다.

양가 부모로 인한 갈등만 사라져도 자녀들이 결혼 생활 중 만나는 리스크의 많은 부분이 사라진다.

결혼한 자녀에게 부모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응원 아닐까? 이건 부자가 아니어도 가능하다. 완전 공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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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돈님! 너무 애쓰지 마세요.

요즘은 과거와 달리 시어머니들이 며느리에게 너무 잘하려고 애쓰다가 거꾸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있다고들 한다.

나는 사돈님이 내 딸에게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나 역시 사위에게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너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평생 지속 가능하기 힘들다는 것을 나는 경험해서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너무 잘하는 사람보다 한결같은 사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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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다.

사돈과 나는 약속한 적도 없는 무언의 약속을 지금까지 잘 지켜가고 있다.

얘들아, 아무래도 너희 부부!

천생연분 같아. ㅎㅎㅎ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